​​​​​​​남편 순교에도 기도로 지킨 선교지… 모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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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순교에도 기도로 지킨 선교지… 모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2.12.07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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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풍종 선교사 지난해 10월 코로나19로 순교
아내 김호리 선교사 홀로 선교지 남아 사역 이어가
교회 건축과 교육 사역, 고아원·장애인 사역 위해 기도

여기저기서 위험하다며 경고 신호를 보냈다. 실제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어쩔 수 없이 선교지를 떠나 한국행을 선택한 선교사들도 많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의 일이다. 하지만 고 이풍종 선교사는 사명을 감당하며 선교지를 지켰다.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했던 그는 결국 지난해 10월 코로나19에 감염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불굴의 사명자 이풍종 선교사가 세상을 떠난 지도 1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내 김호리 선교사는 여전히 사역지인 필리핀 두마게티를 지키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겨 한국으로 돌아온다 해도 누구 하나 탓할 사람은 없을 텐데 왜 그는 선교지에 남아있을까. 김호리 선교사에게 17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던 부부의 선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 이풍종 선교사의 순교 이후에도 1년 넘게 선교지에 홀로 남아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김호리 선교사를 예장 백석 세계선교위원장 임인기 목사가 방문해 만났다.
남편 이풍종 선교사의 순교 이후에도 1년 넘게 선교지에 홀로 남아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김호리 선교사를 예장 백석 세계선교위원장 임인기 목사가 방문해 만났다.

 

17년 목회 내려놓고 선교지로

경북 봉화군 상운면 설매리. 산 좋고 물 맑은 작은 마을에서 유교의 입김이 아주 강했던 믿지 않는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던 중 담임목사님의 큰 딸에게 마음을 뺏겼다. 이풍종 선교사와 김호리 선교사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했던 그는 처음엔 지역교회 목회로 시작했다. 교회를 개척했던 큰 처남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교인수 130명 정도의 교회를 맡게 된 것. 17년 동안 목회하며 성도들을 믿음의 용사로 길러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부의 지경을 세계로 넓히셨다.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선교사로 나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됐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선교의 마음을 부어주시기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담임목사직을 내려놨어요. 200510월에 노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받았고 친정 아버지께서 선교하시던 중국으로 사역지를 결정했습니다. 20064월 중국 훈춘으로 떠나면서 선교의 길이 시작됐죠.”

첫 사역지는 희망 외국어 학교였다. 그곳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며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마음 놓고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중국이었지만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 마음을 열고 조심스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소개했다. 보람이 컸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4년 뒤 학교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에는 훈춘에서 국수공장과 빵공장을 세웠다. 굶주린 북한 동포들에게 빵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9년간 지속했지만 공장 사역도 중국 당국의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선교 사역을 한다는 이유로 강제추방을 당하고 만 것이다. 20184,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받은 지 13년 만에 겪은 일이었다.

이풍종·김호리 선교사가 중국에 있던 당시 운영했던 국수공장의 모습.
이풍종·김호리 선교사가 중국에 있던 당시 운영했던 국수공장의 모습.

 

피할 수 없었던 코로나라는 시련

수많은 시련에도 부부는 부르심을 받은 선교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잠깐 쉬어가는 시간도 없이 곧장 다음 선교지를 물색했다. 정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국에서 1991년 목회를 시작했을 때부터 꾸준히 후원하며 선교하던 필리핀 네그로스섬 두마게티가 눈에 들어왔고 즉시 짐을 꾸렸다. 중국에서 추방당한지 단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부부는 이미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필리핀에서도 교육분야에서 사역을 시작했어요. 두마게티에 있는 필리핀 장로회신학대학 평생교육훈련원 사무총장 자리를 맡게 됐습니다. 그때 공부했던 학생들 11명은 올해 9월 목사 안수를 받고 열매를 맺게 됐죠.”

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자리에서 학생들만 가르치기엔 현지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양부모가 없이 7남매만 남겨진 아이들이 눈에 밟혀 고아 사역을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도 도왔다. 교회 사역도 맡겨졌다. 한국에 계신 여집사님 두 분이 네그로스섬 빈도이 바닷가에 교회를 세우셨는데 목회자가 없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부는 바쁜 일정에도 기꺼이 바닷가까지 가서 길 잃은 양처럼 목회자 없이 남겨졌던 성도들을 섬겼다.

교회 사역을 시작하고 지금은 3곳을 개척해 섬기고 있습니다. 티나오간교회에는 장년 60명 어린이 70. 아용온교회는 장년 60, 어린이 40, 다야산교회에는 장년 40, 어린이 30명이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나가고 있어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땀을 흘리며 사역에 매진하던 부부 선교사에게 추방보다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사망자를 낳았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침공이었다. 당시 이풍종 선교사는 신학교 위층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10월 코로나에 걸린 교수와 학생들이 마땅한 격리장소가 없어 바로 아래층으로 들어왔다.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작은 틈을 뚫고 층의 경계를 넘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이 설사만 지속돼서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가운데 1031일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가 찾아왔죠. 엠뷸런스를 불러 긴급히 후송했지만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어요. 필리핀 정부의 방역지침에 의해 가족들이 시신도 보지 못한 채 화장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풍종·김호리 선교사는 교육 사역으로 11명의 필리핀 현지 목회자를 길러냈다.
이풍종·김호리 선교사는 교육 사역으로 11명의 필리핀 현지 목회자를 길러냈다.

 

선교 계획은 오직 기도뿐

이풍종 선교사는 열정적인 선교사이자 따뜻한 남편이었다. 매사 기도로 하나님께 물었고 자기를 돌보지 않으며 주의 일이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에게는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어떤 일이든 아니라는 말을 입에 담는 법이 없었다. 항상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남편이었으며 신앙으로 본을 보인 존경받는 아버지였다.

거목같이 든든하게 버텨주었던 그였기에 떠난 빈자리는 훨씬 허전했을 터. 하지만 김호리 선교사는 남편의 순교에도 불구하고 선교지를 지키는 길을 택했다.

처음 저희 부부가 선교사로 파송을 받을 때 힘이 있을 때까지 선교를 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약속했어요. 남편 선교사님이 돌아가신 후 그 생각이 떠올랐고 하나님께서 이곳에 남아 사역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주셨죠. 장례식 날 저도 모르게 이곳에서 선교를 이어가겠다고 얘기했는데 주변 모두가 놀랐고 저조차도 놀랐습니다.”

이풍종 선교사가 순교한지 1년이 지난 시간. 김호리 선교사는 하나님과 했던 약속대로 꿋꿋이 선교지를 지키고 있다. 비록 남편은 떠났지만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신다고 고백하는 김 선교사는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선교의 길을 걷는다.

사역하고 있는 3곳의 교회 중 2곳은 여전히 교회 건물이 없어 교인들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곳들의 교회건축과 PHM Mission 센터 건물, 고아원 건물과 장애인들을 위한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어요. 교인들의 양육과 교육 사역도 놓치지 않고 이어갈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목회로 시작했지만 17년 섬긴 교회를 뒤로하고 선교지로 떠났던 결단부터 예기치 않은 중국에서의 추방과 남편 선교사의 순교까지. 결코 평범하고 순탄한 길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다고 김호리 선교사는 고백한다.

앞으로의 선교계획은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날마다 기도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제가 하는 것이 아니기에 오직 주님께 기도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부족한 종을 도구로 삼아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도록, 교육사역을 통해 많은 목회자가 세워지고 필리핀 땅에 부흥의 역사가 시작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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