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찬송의 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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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찬송의 큰 힘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2.12.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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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김기창 장로
김기창 장로

1994년 2월 마지막 주일예배 시간. 목사님의 설교 후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부르게 되었다. 2절 끝부분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를 부를 때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토록 원했던 대학 교수 임용을 앞두고 28년 동안 섬겨 온 교회를 떠나 새 둥지로 옮기게 되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예배 시간을 맞고 보니 영적 어버이이신 목사님과 교회, 그동안 사랑을 나눈 성도들 곁을 떠난다는 게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니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물론 ‘감사’가 주종을 이루고 떠나는 섭섭함과 새 둥지에서의 삶에 대한 설렘이었을 것이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예배 중 밖으로 나와 실컷 울었다.

몇 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주일을 맞게 되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일행은 이동 중 관광버스 안에서 내가 준비해 간 예배 순서지에 의해 예배를 드렸다. 내가 대표기도를 한 후, 예고 없이 여행 가이드에게 특송을 부탁했다. 그 분이 성악을 전공하는 유학생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분은 주저하지 않고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불렀다. 가사의 내용이 그 가이드분이 늘 기도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멘트와 함께 눈가에 촉촉이 젖은 눈물을 보이며 은혜롭게 불렀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찬송에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찬송을 부르거나 듣는 것이 때로는 가장 훌륭한 설교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생각을 해 온 동료 Y씨는 그 찬송을 들으며 왠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그 후 Y씨는 하나님을 가장 열심히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찬송가 413장을 부를 때마다 그 여행 때 아름다웠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 곡의 작사자는 19세기의 욥이라고 불리는 미국인 변호사 스팻포드이다. 1871년에 그의 첫째 아들이 네 살 때 성홍열(猩紅熱)로 사망하고, 몇 달 후엔 시카고에 커다란 화재가 발생하여 그의 전 재산을 잃고 말았다. 엄청난 시련 앞에서 스팻포드와 그의 가족은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2년 후, 병약한 아내와 남은 네 딸과 함께 유럽여행을 위해 프랑스 여객선 빌르 드 아브르호에 승선하는 과정에서 스팻포드는 급한 일이 생겨서 배에서 내렸다. 그래서 가족들만 먼저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 해 11월 22일, 유람선은 영국 철갑선 로첸호와 정면 충돌, 침몰하여 단 30분만에 대서양에 가라앉고 22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스팻포드의 딸들은 모두 배와 함께 잠기고 아내만 물 위로 떠올라 구명정에 의해 구조되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그의 아내가 남긴 전보는 ‘Saved alone(혼자만 살아남았음)’.

충격 속에 아내를 만나기 위해 유럽으로 향하던 중 네 딸을 앗아간 비극의 사고지역을 지날 때 선장은 스팻포드에게 말했다.

“지금 이 배는 당신의 딸들이 잠긴 물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애써 잔잔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스팻포드의 마음에 커다란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깊은 그곳에 잠들어 있을 딸들을 생각하니 너무나 괴로웠다. 그는 선실로 돌아와 아픔과 슬픔으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신다면 어찌 그리도 가혹한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그는 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믿음이 혹시라도 실족할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절망하며 탄원하며 기도하던 스팻포드에게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평안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서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평안을 고백하고 있었다.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리이다.” 그는 두 손을 불끈 쥐고 중얼거렸다. “내 영혼아, 괜찮아. 괜찮아!”

그러고는 아침이 되자 그는 주님이 주시는 참되고 영원한, 그리고 사탄이 범접할 수 없는 평화 가운데 갑판에 앉아 시를 짓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내 평생에 가는 길’이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었기에 그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 평안은 실로 환경을 초월하는 평안이다.

그 후, 작사자의 이런 사연을 알고 부르니 더욱 은혜가 되었다. 우리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위로와 평화와 기쁨과 소망, 세상 그 어떤 것으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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