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들의 글쓰기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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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들의 글쓰기 공부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2.11.1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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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김기창 장로

“교수님!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제 글을 보고 많은 사람이 잘 썼다며 댓글도 몇 개  달아 주었어요.”

강의실 입구에서 만난 87세의 L 장로님이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기뻐하신다. 장로님은 요즘 뒤늦게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 교회 SNS에 가끔 ‘신앙 수상’을 투고할 정도로 글쓰기에 열정이 넘치신다.

작년 연말부터 시내에서 주 1회 ‘시니어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퇴임한 동료 교수 한 분이 장소를 제공하면서 이를 부탁하여 응한 것이다. 수강 대상은 나와 띠동갑이신 87세의 은퇴장로님 두 분 등 우연히도 모두 신앙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래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신앙’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 글문을 연다. 앞으로 ‘신앙 수상’의 성격을 띤 글들이 많이 나올 성 싶다.

이분들은 글쓰기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시작은 했지만 ‘과연 이 나이에 글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많아 보였다. ‘열심히 쓴다고 해도 내 생각을 잘 나타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든다고 했다. 아무래도 연세가 드셔서(수강생 막내가 1953년생임) 통찰력, 감수성, 표현 능력 등이 문제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그동안의 삶의 농축된 경험들이 훌륭한 소재가 되어 강점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

“내가 살아온 날을 글로 쓰면 책 몇 권은 낸다.” 노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뜻일 게다. 각자의 삶 속에 녹아있는 수많은 체험과 경륜은 소중한 글감이 되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과 깨우침을 줄 수 있으리라. 일정 기간 글 쓰는 방법만 익힌다면, ‘달콤한 몸부림’을 계속 하신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을 드렸다.

먼저, 기본적으로 필요한 다독(多讀), 다습(多習), 다상량(多商量)에 다록(多錄)을 강조하며, 그리 어렵지 않은, 좋은 수필을 소개하여 많이 읽도록 했다. 강의를 시작하며 두어 달은 문장 쓰기 공부를 했다. 우선은 비문(非文)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문장 훈련을 하고나서 꼭 단락 설계를 한 다음, 생각나는 대로 그 생각을 모두 써 나가도록 했다.

제임스 서버의 말-제대로 쓰려 말고 무조건 써라-을 믿고. 일단 쓰고, 마구 쏟아놓은 낱말들을 자르고, 옮기고, 붙이고 꿰매보는 방법을 소개했다. 한 동안 이 방법을 쓴 후, 어느 정도 작품이 된 다음에는 합평하는 과정을 통해 글들을 다듬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작품이 ‘되어감’을 스스로 깨닫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실 때 참 보기 좋았다.

그러나 한두 분은 중간에 포기하려는 듯하였다. 짧은 시간에 좋은 글을 쓰려고 하는 욕심이 문제였다. 또, 애써 잘 쓰려는 의식이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너무 앞서서, 글을 치장하고 수식하는 일에 마음을 더 쓰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분들에게 한때 내가 겪었던 글쓰기의 좌절과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토로하는 글쓰기 고충을 소개했다.

나도 수필계의 중견 작가 C 선생의 ‘문학적 자전’을 읽고 나서 포기하려 했던 마음을 접고 계속 쓸 용기를 갖게 되었다. C 선생 같은 분들은 아침 식사 후 커피를 드시며, 슬슬 쓰시기 시작하면 누에고치에서 비단 실이 줄줄 나오듯이, 글이 되어 바로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하시는 줄 알았는데, 대단한 산고(産苦)를 겪는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마음 자락 한 끄트머리를 수필이라는 고삐에 매어 두고 난 뒤부터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단순함의 즐거움과 느리게 사는 여유로움을 잃어버렸다’는 부분에서 어쩌면 그렇게 당시의 내 마음을 잘 나타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분들도 그 정도라면 이제 초보자인 우리는 아무 소리 말고 한참을, 정말 한참을 애써야 된다고 말씀드렸다.

모두 열심히 참여하신다. 공부하는 시간이 매우 즐겁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신다. 서너 달이 지난 요즈음 신실한 신앙과 삶의 심오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보인다. 완성 작품이 쌓일 때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기쁨이 자못 크다. 욕심으로는 올해 연말쯤 아담한 <신앙 수상집>이 세상에 나왔으면 한다. 상상은 현실이 되리라 믿는다.

강의가 끝나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한 장로님이 고백을 하신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글쓰기는 치매나 우울증과 같은 것도 예방할 수 있고, 무엇보다 문우들과 친목을 다지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살아온 흔적을 반추하고 멋진 2막의 인생을 준비하는 최고의 수단인 글쓰기. 시니어들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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