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주 하늘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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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둘째주 하늘문을 여는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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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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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만섭 백대현 이우철 홍승훈 조성호 최선 목사

월요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이사야 2:1~4 / 찬송: 495장

사람은 평화를 원하고 평화로운 삶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는 다툼과 분쟁, 전쟁 등으로 세상이 불안한 열차를 타고 공포의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이렇듯 혼란하고 불안한 세대를 살아갈 때는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역할이 본문 3절의 말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 전에 이르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이 위태로울수록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죄악의 길을 걷는 발걸음, 세상의 탐욕과 타락과 방종함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던 모든 것들의 드라빔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또한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멀어진 것만큼 하나님과 멀어지며 사탄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며 주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주님 앞에 아뢰고 그 능력으로 이 땅을 다스려 주시며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 가운데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화요일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주소서
사무엘상 8:4~9 / 찬송: 23장

우리도 우리의 삶을 안락함으로 인도해줄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왕에 대한 필요를 절실하게 원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손에 만져지고 쥐어지는 확실한 것을 붙잡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있고, 물질일 수도 있고, 권력과 성공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자신의 절대적인 왕으로 의지하며 우상으로 숭배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크나 큰 죄악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아닌 나의 절대 왕으로 삼고 의지하며 따르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진정한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것은 이 세상 천지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에 마음이 빼앗겨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돌아서 우리가 우상 삼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철저히 무너뜨리시고 산산이 깨트려 흩어버리십니다.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는 호세아 13장 10절~11절의 이 말씀을 이 시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으로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나라로 가는 그날까지 왕이신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수요일 
참된 예배자
누가복음 2:41~51 / 찬송: 38장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먼저 예배가 삶의 첫 번째 우선순위라고 가르치십니다. 

소년 시절 예수님은 유월절 예배를 맞이하여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방문합니다. 12세의 소년 예수께서 요셉, 마리아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왔던 길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도착하여 찾아 헤매던 부모는 뜻밖의 장소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바로 성전 안입니다. 

반가움과 함께 화가 난 부모는 질문합니다. “놀라며” “아이야!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부모가 근심하며 찾았노라” 예수께서 답변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는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는가?” 이것을 다시 해석한다면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은 평생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순위의 거룩한 습관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입니다. 이것이 흔들린다면 인생의 기초가 흔들리고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본문은 오직 나를 위해 죄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만을 주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양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 전심으로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삶의 최고의 가치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모든 걸 바쳐 주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목요일
상식의 눈에서 믿음의 눈으로
마태복음 14:22~33 / 찬송: 450장

살다보면 절망의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좌절하게 됩니다. 그런데 좌절의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의 시선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상식을 바라보며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제자들도 지극히 상식적인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보면서 유령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고난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셨을 때 아무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용기를 내서 예수님께 요청하기를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만 믿고 행동했을 때 정말로 물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이 주님이 아닌 주변 환경을 바라보자 의심이 생겨 물속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위기의 순간,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건지십니다.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베푸셨을 뿐 아니라 그가 물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어 건져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놀라운 능력을 가진 분이며 동시에 그 능력을 모나고 연약한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푸시는 분입니다.

우리도 좌절과 절망 앞에서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의심을 버리고 주님만 바라봅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금요일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려면
에베소서 6:1~4 / 찬송: 559장

본문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가정의 주인이 ‘주님’이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왜 가정의 주인을 주님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 가정을 이끌어가는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서로 마땅히 순종하는 생활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특히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원한다면 참된 가정의 모습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자녀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동시에 부모들을 향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자녀에게 순종을 요구하듯이 부모는 자녀를 말씀 안에서 잘 양육하는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신의 가정을 말씀으로 잘 세워가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가정으로 세워주신 교회도 신앙의 힘으로 든든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육신의 가정뿐 아니라 영적인 가정인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게 하옵소서.

 

토요일
나의 비틀어진 생각을 버리자
창세기 4:5 / 찬송: 461장

사건 사고가 나면 반드시 그 이면에는 가해자가 있으며 피해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가인과 아벨이라는 형제를 낳게 됩니다. 그 인물들 중에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가 등장합니다. 

가인은 히브리어로 ‘카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카인은 하나님과 단절되고 관계를 끊어 비틀어진 사역을 한다는 상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인이 자신을 살피고 바른 제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았음을 매우 분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것이 사건의 원인입니다.

또한 가인과 하나님의 관계에도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의 비틀어진 생각이 결국 동생 아벨을 죽였고 가인은 인류의 첫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름의 의미처럼 가인은 하나님과 회복할 수 없는 틀어진 신앙으로 천국백성이 되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인은 결국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했고 저주 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에서 벗어나면 자신의 생각대로 예배를 드리려는 잘못된 방법에 종종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거룩한 성도들이 온 마음을 다해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꺼이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제사처럼 정성으로 예배드리는 진실한 성도들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회개하게 하시고 신령과 진리로 예배 드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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