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산책] 기독교인 잡던 로마 장군은 어쩌다 신자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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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산책] 기독교인 잡던 로마 장군은 어쩌다 신자가 됐을까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2.11.0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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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과 기독교 신앙의 상징(4)
로마에만 50여개인 카타콤,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의 흔적

로마에는 50여 개의 카타콤이 있지만,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 도미틸라 카타콤, 성 칼리스토 카타콤이 대표적인 지하묘소로 알려져 있다. 

아래에서 이런 카타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Catacombe di San Sebastiano): 갈리아 출신인 세바스티아노(San Sebastiano, ?~287)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당시의 군 장교로서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당시 황제는 기독교를 가장 엄하게 처벌했던 박해자였다. 그가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카타콤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큰 감동을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신자가 된 점을 숨기고 2년 간 카타콤의 신자들을 위해 은밀하게 양식을 공급하는 등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 자신의 신분으로 볼 때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국가로 볼 때는 반역적 행동이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동료에 의해 발각되어 287년 기둥에 묶여 화살을 맞고 죽도록 버려졌다. 그의 유해를 찾아 다시 묻힌 곳을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곳은 로마시 외곽에 있는 아피안 가도 밑에 위치하고 있다. 아피안 가도는 바울이 걸어간 길이었고, 베드로가 걸어간 도로였을 것으로도 보이는 곳인데 이곳 지하가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으로 불렸다.

도미틸라 카타콤(Catacombe di Domitilla): 플라비아 도미틸라는 티투스 베스파시안 황제의 조카딸이자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플라비아 클레멘스의 아내로 알려져 있는데,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모독죄(sacrilege)라는 이름으로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가에타(Gaeta)만(灣)으로부터 멀지 않는 판데테리아(Pandeteria)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의 모든 재산은 몰수되었다. 그리고 그의 두 몸종도 주인의 뒤를 따라 신앙을 고백했기 때문에 순교 당했다. 그의 사촌이었던 클레멘스(Titus Flavius Clements)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들이 묻혀 있기에 도미틸라 카타콤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성 칼리스토 카타콤(Catacombe di San Callisto): 아피아 가도 부근에는 크고 작은 25개의 카타콤이 있는데 이들의 지하통로 길이를 합치면 500Km나 된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간주 되는 산 칼리스토 카타콤은 5층 구조로 되어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는 20Km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3세기의 교황 유골이 안장되어 있는데, 1559년에 농부들이 땅을 파다가 우연히 이 카타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카타콤은 로마의 지하 묘지 중 최대크기인데, 4세기 동안 이곳에 묻힌 기독교인 중 발굴된 무덤만 50만이 넘는다고 한다.

카타콤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기구나 유품들이 발굴되었다. 가장 흔한 것이 개인용품들이었는데, 반지 인장 거울 팔찌 목걸이 허리띠 등이었고 여러 기구들도 발견되었다. 흙으로나 청동으로 만든 등잔과 기름통, 병이나 잔, 그리고 아이들의 장남감도 있었다. 물론 이런 유품들은 지금은 카타콤에 남아 있지 않고 박물관으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또 많은 비문(碑文)이 발견되었다. 비문에는 사람의 이름이나 생몰 연대가 기록되거나 가족관계 신앙 등을 보여주는 정보가 매우 중요한 유품으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 사랑과 슬픔, 소망과 위로, 영원에 대한 동경과 기대 등이 드러나 있다. 카타콤에서 발견된 비명(碑銘)이나 신앙의 상징은 두 가지 언어, 곧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고, 글씨 또한 기록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비록 서툴고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비명만큼 아름다운 글도 많지 않다. 거기에는 가족의 애절한 사랑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비문의 발견이 로마시대 비명 연구를 촉진시켰을 것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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