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아버지는 이번에도 “선하신 하나님”을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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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아버지는 이번에도 “선하신 하나님”을 고백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2.11.08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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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태국 단기선교 떠난 아들 잃고 두 번째 책 펴내
서원 지키기 위해 백석신대원에서 신학 공부 마치고 목회자로
18년 지났지만 그리움 여전…“신앙은 상처를 은혜로 바꾸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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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번째 책 <사랑한다 현진아 토브>를 펴낸 장기옥 목사. 장 목사는 주로 새벽 시간에 글을 쓴다. 그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하지만 선하게 이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고 했다.

2004년 1월 한국에서 온 단기선교팀이 태국 동북부 쌍아오마을의 메콩강을 순회하다 사고가 났다. 선교팀이 단체로 카누를 타는 과정에서 배가 전복됐는데, 이 사고로 두 명의 귀한 생명이 숨을 거뒀다. 당시 나이 14살. 불과 중학교 1학년이던 장현진 군도 그중 한 명이었다. 장 군의 아버지(당시 한신교회 집사)는 강에서 아들을 찾아 헤매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 현진이만 찾게 해주신다면 신학을 공부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걸어가겠다”고 서원했다. 수색이 길어지고 이제 포기해야 한다고 하던 그때 거짓말처럼 아들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후 무사히 서울로 돌아와 장례를 치렀다.

서울의 백석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아버지 장기옥 목사는 2007년 11월 일련의 과정을 담은 책 <사랑한다 현진아>를 펴낸다. 이 책의 서문에는 아들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말 못할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구도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놀라움과 고통으로 모든 소망이 사라진 아버지는 죽기만을 간구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순교지를 헤매면서 겪은 이야기를 하나님 앞에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도 짧은 삶을 살다간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아버지의 가슴 시린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선하게 이끄시는 하나님

첫 번째 책이 나오고 벌써 15년이 흘렀다. 아들이 살다간 14년에 1년을 더 얹은 짧지 않은 시간이건만 애끓는 부정은 풍화되지 않았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버지는 다시 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주로 새벽. 자다 일어나 차분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글쓰기지만 이내 눈물을 쏟고 만다. 인간의 마음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기도 한다. 새벽기도를 가려고 일어난 아내는 퉁퉁 불어 있는 장 목사의 눈을 보며 “또 책을 쓰고 있었군요” 하며 위로한다.

장 목사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듯 내뱉는 문장에는 슬픔과 울분 설움 그리움 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다. 울며 기도하며 써내려가다 보면 감정들은 이내 하나님의 마음에 가닿는다.

책에는 1편 <사랑한다 현진아> 발간 이후 진행된 일들을 기록했다. 책의 제목은 <사랑한다 현진아 토브>라고 지었다. ‘토브’는 히브리어로 ‘좋은’ 혹은 ‘선한’이라는 의미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라고 했던 바로 그 ‘선’이 토브다.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인도하신 가운데 나타난 일들이 생각납니다. 매년 진행한 태국 쌍아오마을 방문은 순례자의 길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작은 일들이 이뤄지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쌍아오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강가에서 기도하며 마을 사람들과 교제하였고, 쌍아오교회의 새벽기도는 하나님께 소망을 간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한다 현진아 토브>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무엇보다 아들의 순교를 퇴색시키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장 목사는 “훗날 하늘나라에서 아들을 만나면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의 흔적은 책을 통해 고스란히 남았다.

“대나무는 매년 마디가 쌓이면서 튼튼해진다고 합니다. 외형적으로 대나무는 마디를 드러내며 자신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첫 편의 마디 위에 새로운 한 편이 쌓였습니다. 바라기는 이 책이 개인의 노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선교지에 의미 있는 기록으로 남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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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장 목사는 신대원 졸업사진에 아들의 사진을 합성해 넣었다. 이렇게라도 그리움을 달래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상처 입은 치유자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장 목사는 법무법인 컨설턴트로 일했다. 아들을 잃고 난 뒤 그는 직장을 다니며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너무 힘든 나머지 체중까지 확 줄었다. 처음에는 그저 ‘졸업이나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산소를 찾은 그는 적어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목사안수’까지 받겠다고 약속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목회자의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쓰고자 하시니 막힘이 없었다. 목사 안수를 받던 당시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어린 나귀같이 약하고 볼품없으나,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며 주님의 인도 아래 그리스도의 진실한 증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장 목사를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다. 공부를 더 해 신학박사 학위까지 받게 하셨다. 장 목사는 “신학을 배우고 연구하는 과정은 신앙의 깊이를 쌓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그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다”고 회상했다. 현재도 장 목사는 백석 교단 소속 목회자로 협동목회를 하고 있으며, 여러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식을 앞세우는 일은 사람이 경험하는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다. 장 목사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앞에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픔을 딛고 하나님의 선한 것으로 승화시켰다. 두 번째 책 ‘토브’를 펴낸 후 장 목사는 종종 ‘하나님의 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다. 창세기 50장에 등장하는 요셉에 대한 설교다.

“총리가 된 요셉은 자신을 버린 형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모든 일이 어려움 없이 진행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지금 힘드신가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간다면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종래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끄셨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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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태국 단기선교 당시의 장현진 군.

 

순교의 열매

한편 올해 초 <사랑한다 현진아 토브> 원고를 마무리 지으려던 차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교회가 순교지에 세웠던 선교관이 낡아 고민하던 차에 선교관 신축이 추진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선교관 2층에 쌍아오교회가 이전해 들어오기로 했다는 말에 장 목사와 아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껏 쌍아오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순교자를 기억하며 매년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다. 장 목사는 “쌍아오교회가 선교관 2층에 들어오게 되면 그곳이 곧 기념교회가 되는 것”이라며 “그동안 ‘순교자 기념교회’를 세우려고 했는데 이제 그 교회가 세워지는 셈이다. 이 일이 조금만 늦었어도 책에 담길 수 없었을텐데 하나님께서 제 책의 모양새까지 완성해 주시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장 목사는 새롭게 지어지는 선교관과 기념교회를 통해 순교의 역사가 이어지고 선교의 귀한 열매가 계속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일들은 세 번째 책에 오롯이 담길 예정이다.

장 목사는 “이 책을 기록하면서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며 “지난 일들은 분명히 긴 과정이었으며 어떻게 한 방향으로 진행됐는지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이 내 영혼을 부요하게 하셔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장 목사는 끝으로 “하나님께서 소망을 갖게 하셨고 그 소망이 저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진행된 것 가운데 당연한 것은 없었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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