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진학·취업 등 이유로 한국 돌아왔지만 거주지 없어 방황
콤콤하우스 공간 턱없이 부족, ‘내집’ 같이 찾을 공간 절실해
바닥을 기는 달팽이도 제 한 몸 눕힐 집은 이고 산다. 한국인이 그토록 부동산에 목매고 집착하는 이유도 ‘집 없는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일 테다. 그런데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재입국 MK(선교사 자녀)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척박한 선교지 환경에서 헌신하다 고국으로 돌아와 누구보다 환영받아 마땅한 그들이지만 맘 편히 잠을 청할 집이 없어 친척집과 찜질방을 전전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MK들의 사정을 잘 아는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원장:김백석, KOMKED)은 MK를 위한 숙박공간 ‘콤콤하우스’를 만들었다. 서울 내에 회기, 마포, 경기도권에 가평과 평촌 등 4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MK들의 주거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 그래서 콤케드는 더 많은 MK들을 품기 위해 ‘MK 미션센터’ 설립을 준비 중이다. 지난달 20일 선교지에서 한국에 돌아와 콤콤하우스 거주하고 있는 강솔아(가명), 정희진(가명) 청년과 콤케드 김백석 원장, 강평강 팀장을 만나 재입국 MK들의 주거 현실을 들어봤다.
기댈 곳 없는 낯선 고향
사실 추억이 많지는 않은 고향이다. 강솔아 청년은 태어난 지 단 100일, 정희진 청년은 7살 때 각각 선교지로 넘어갔다. 자신이 선택한 삶은 아니었지만 묵묵히 받아들였다. 발붙인 날이 길지는 않아도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만은 품고 살았다. 하지만 돌아온 고국은 MK들에게 있어 선교지만큼이나 척박한 광야였다.
MK들은 주로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한국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한국보다 환경이 열악한 선교지에선 만족할 만한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 이밖에도 취직과 입대, 선교지에서의 추방이나 부모의 사역 철수 등 다양한 이유로 고국을 찾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한국은 이름만 고향일 뿐 몸도 맘도 기댈 언덕이 없다. 정희진 청년은 다시 돌아온 고국에서 만난 냉정한 현실을 토로했다.
“일단 내 집이 없었어요. 어딜 가나 손님 신세였고 언제 나가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야 했죠. MK들 중에선 일주일 단위로 친척집을 떠돌아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자리를 잡기 전까지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했던 친구도 있어요.”
학교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는 대학생의 경우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졸업이후부터 시작된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학사관도 대부분 대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기에 더 이상 기댈 수 없다. 학생이라는 안전벨트가 풀린 이들은 미처 마음을 다잡을 겨를도 없이 사회라는 바다에 던져진다.
이들을 위해 사회초년생 MK들을 위한 콤콤하우스가 4곳 출범했지만 재입국 MK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없어 언제 끝날지 모를 대기가 이어지는 상황. 강평강 팀장은 “지금 콤콤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는 MK는 15~20명 정도인데 10월 한 달에만 20통이 넘는 문의를 받았다”면서 “게다가 콤콤하우스는 공간을 후원해주신 분들이 따로 계시고 콤케드가 위탁운영하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혹시나 그분들의 사정이 어렵다고 하면 언제든 나와야 한다. 우리가 집주인이 아니다보니 MK에 맞게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싶어도 쉽지 않고 문제가 생겨도 관리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비단 주거문제뿐만이 아니다. 선교지 문화에 익숙했던 MK들에게는 한국이 사실상 외국과 다름없다. 강솔아 청년은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한국인들을 보며 도무지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도 부담이고 선교지에선 언어를 혼용하다보니 한국어가 서툰 경우도 많다.
‘을’이 익숙해진 MK들
사람에게 있어 집이란 단순히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 세상에서 지칠 때 잠시 돌아와 안식을 취하며 재도약을 준비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이들에게는 없다. 금전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도 결코 사소하진 않지만 MK들에게 있어 가장 큰 절실함은 ‘내 공간’에서 찾는 정서적 안정감이다. 한국에 돌아와 언제나 ‘을’로 살아왔다는 MK들의 발언은 가슴을 찌른다. 본인 스스로도 MK 출신인 강평강 팀장은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꼭 콤콤하우스가 아니더라도 주거문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통로는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MK가 도움을 받는 신세에 머무르고 을의 삶이 습관이 된다는 것에 있다고 봐요. 어딜 가든 내 집, 내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주눅들 수밖에 없죠. MK들이 앞으로 창의력이나 주도성을 발달시키는데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점이 콤케드가 MK 비전센터 설립에 도전하는 이유다. 선교사 자녀를 돕는 선교단체로서 넉넉지 않은 재정 상황이지만 너무나도 절실하기에 비전센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자 마음 모아 기도하고 있다. MK들이 ‘내 집’으로 여기고 맘 편히 쉬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간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 콤케드 김백석 원장의 간절한 소망이다.
“지금의 콤콤하우스는 주거 공간 자체도 부족하지만 MK들을 양육할 수 있는 교육 공간도 전무하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비전센터는 재입국 MK들을 위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들을 신앙으로 훈련시켜 다시 세상으로 파송시키는 예배 공동체의 역할도 맡게 될 겁니다. MK들이 언제든 내 집처럼 찾아와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해나갈 플랫폼 역할도 할 수 있고요.”
“MK 사역은 곧 선교의 완성”
누군가를 섬기고 돕는 일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있어서도 귀한 재정과 공간,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 결코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김백석 원장은 MK 사역에 대한 시선을 달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MK를 섬기는 일은 일방적인 ‘후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가는 ‘선교’라는 것이다.
“모든 부모에게 자녀 교육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고 선교사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선교사들이 사역을 중단하고 선교지를 떠나는 첫 번째 이유가 자녀교육 때문이라는 미국과 한국의 통계도 있어요. 만약 때에 맞는 교육과 돌봄을 통해 MK들이 정체성을 깨닫고 치유되어 성장한다면 부모 선교사는 사역에 더욱 전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MK들을 잘 양육하는 일이야말로 선교 중의 선교이고 선교의 완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나 한국교회가 MK 사역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교회가 아니면 MK들을 도울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NGO들이 적극적으로 광고해 후원자를 모집하고 실제로 많은 후원자와 후원기업이 동참합니다. 하지만 재입국 MK들의 열악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서 파송한 선교사 자녀에게 NGO의 도움의 손길이 닿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회 외에는 MK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후원과 도움을 전해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뜻이죠.”
MK 사역이 ‘선교’인 이유 또 하나는 선교지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부모의 선교 사역을 보고 자란 MK들이 누구보다 훌륭한 선교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부모의 사역을 이어받아 정식 선교사로 파송 받는 경우는 물론이고, 한국과 해외 어디에서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강점과 성경적 가치관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일상의 선교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콤케드는 MK 사역의 중요성과 비전센터 마련의 중요성을 호소하기 위한 미션콘서트를 11월부터 시작한다. “MK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와 신앙훈련으로 준비된 아이들입니다. 한국 선교 2기를 앞두고 MK만큼 준비된 적임자가 많지 않지만 한국교회가 MK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균형 잡힌 크리스천 리더로 자라갈 MK를 한 교회가 한 명씩 사랑으로 입양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필요를 채우고 격려해준다면 MK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고 부모인 선교사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선교가 될 겁니다. 이 귀한 일에 한국교회가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