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이 가득한 이 땅에 감사의 계절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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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이 가득한 이 땅에 감사의 계절이 오길”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2.10.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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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20)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다. 추수감사절은 1621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미국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의 한 만찬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식민지 개척자들(청교도)과 왐파노그(Wampanoag) 인디언 부족은 가을 추수를 끝낸 후에 같이 모여서 만찬을 즐겼다. 이것이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와 미 대륙 토착 원주민 간의 우정과 협력의 상징이자,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휴일로 선포했고, 1941년에야 합법적인 국경일이 되었다. 추수감사절은 출신 배경과 종교를 넘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세속적인’ 휴일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이를 따라서 11월에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미국처럼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왔지만 너무 추워서 11월 첫째 주로 당겨서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전통적인 추수감사절이 있다. 바로 ‘한가위’다. 전 국민이 한가위라는 ‘감사’의 명절을 지낸 후, 찬 바람 몰아치는 초겨울에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따로 지내는 건 참 생뚱맞지 않나? 더구나 농작물에 물 한 번 줘보지 않은 도시인들이 대형마트에서 냉동 보관해두었던 배추, 무 같은 채소나 사과, 감 같은 과일을 사다가 강단에 전시해놓고 드리는 추수감사절 예배가 좀 어색하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가 미국처럼 11월에 추수감사절을 지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래서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 시기를 한가위 전후로 조정하면 좋겠다는 제안해왔다. 아울러 ‘추수감사절’을 더 넓은 뜻을 지닌 ‘감사절’로 이름을 바꾸자고도. 그래서 ‘감사’를 ‘추수’로 제한하지 말고 우리의 삶 전체로 확대하면 어떻겠느냐고.

우리는 매년 4월 경에 부활절을 지낸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일만에, 안식일(토요일) 후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을 ‘작은 부활절’로 지낸다. 그리고 그날을 ‘주일(主日)’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 부활 신앙을 주일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지키며 삶을 통해 구현해나가야 한다. 추수감사절도 감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감사를 삶으로 실천하는 ‘감사절’이 돼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의 추수 감사절은 감사헌금 차원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이 ‘추수감사절’이라는 틀, ‘감사헌금’이라는 봉투에서 나와 감사를 일상의 삶으로 구현해야 하지 않을까?

 

‘추수감사절’을 ‘감사절’로! 감사절을 감사행전(感謝行傳)의 출발점으로!

예수님께서 나병 열 명을 고쳐주셨는데 그 은혜에 피드백한 이는 그 중 단 한 사람이었다(누가복음 17장). 그것도 사마리아인. 예수님은 그를 크게 칭찬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지만, 나머지 아홉 사람은 크게 책망하셨다. 필자는 이 사례를 ‘감사 10%론’이라 부르는데, 실제 은혜를 입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건 10%에 불과한 것 같다. 

많은 교회들이 주일예배 시간에 대표기도를 한다. 그러나 대표기도는 예배 참석자 개인의 기도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회개하는 기도를 하도록 잠시 시간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목회자는 회개 기도에 앞서 감사 기도를 하는 시간도 준다. 성도들이 평소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균형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엄청난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을 입으며 하루 하루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웃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은총의 통로가 돼준 이웃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감사’는 교회 바깥 사회에서도 매우 중시하는 덕목이다. 감사를 잊고 저버리는 것을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고 하는데, 이보다 더 큰 욕도 없을 듯하다. 그런 만큼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성품이다. 그러니 ‘감사’는 교회가 사회의 비신자들과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좋은 키워드라 생각한다. 청교도들과 인디언 부족들이 추수를 마친 후 한 자리에 앉아 만찬을 함께 한 것처럼. 

김준곤 목사님은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고 외쳤다. 이 칼럼의 제목이 ‘감사행전(感謝行傳)’인데, 이는 감사를 삶(行)으로 전하자는 뜻이다.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비신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감사를 실천함으로써, 이 땅에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기를 기도한다. 이번 감사절이 연례행사가 아니라, 본격적인 감사행전의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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