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말씀을 따를 때, ‘영적’ 건강과 부를 누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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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을 따를 때, ‘영적’ 건강과 부를 누를 수 있어
  • 유선명 교수(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 승인 2022.10.11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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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

학력고사 수석을 한 분들이 공부의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 “예습복습을 꾸준히 했다” 같은 대답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비범한 방법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맥없이 들리지만, 사실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도,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도 특별한 비결보다는 당연한 일들을 꾸준히 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영적 ‘건강’과 ‘부’를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따르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발을 딛기 전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도 바로 그것입니다.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신 4:40) 신명기에 여러 번 반복되는 ‘성공의 원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이, 불순종하면 화가 임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기계적인 보상원리 즉 인과응보의 도덕률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율법의 순종은 그 율법을 주신 분에 대한 믿음과 인격적 교제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신앙을 잘 요약했다고 하는 ‘쉐마’의 가르침에 이 사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말씀을 지키고 전수하는 일은 그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제로 합니다. 이스라엘의 성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장로교 신앙고백의 완성이라고 하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근거한 ‘소요리문답’의 첫 질문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 답한 것 역시 동일한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단순한 원리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자신들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은 내버리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더 나쁜 것은, 자신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시인하고 안타까워하는 대신 변명과 이론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창 3:12)를 탓했던 아담의 후손답게 거짓을 지어냈고(7절),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이 선포될 때조차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면 될 것을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이 있기는 하냐고 대들며 예언자를 박해했습니다(15~18절).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1절) 아무도 모른다, 우리만 무덤까지 가져가면 된다… 그런 죄는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기록되고, 속죄단에 기록됩니다. 우리 머리털까지 헤아리시고(눅 12:7) 우리 눈물을 당신의 병에 담으시는(시 56:8)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스쳐가기만 한 생각도 놓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이 두려워 도망칠 필요도, 그분을 속이려 종교적 언행으로 스스로를 꾸밀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자유를 얻습니다. 가식과 위선을 벗고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만큼 우리를 홀가분하게 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이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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