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 선호한 기독교인, 매장지 부족하자 ‘지하묘지’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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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선호한 기독교인, 매장지 부족하자 ‘지하묘지’ 조성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2.10.11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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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카타콤과 기독교 신앙의 상징(2)

카타콤(Catacomb)은 지하 갱으로 이루어진 로마의 전형적인 묘지인데, 기원전 1세기부터 형성된 로마 서민들을 위한 묘지였다. 많은 이들이 카타콤은 기독교인들이 만들었거나 기독교인들만의 묘지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있던 지하 묘지에 그리스도인들이 비밀리 회집하거나 그리스도인들이 묻히게 되면서 카타콤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카타콤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카타(kata) 쿰바스(kumbas)에서 유래했는데, 라틴어로는 카타툼바스(ad Catacumbas)라고 불렀다. ‘움푹 파인 곳에서’ 혹은 ‘무덤 가운데’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앞에서 소개했듯이, 이곳을 코메테리아(coemeteria), 곧 영면지(永眠地, places of repose)라고 불렀다. 부활에 대한 기대 때문에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카타콤은 원래 로마는 귀족이든 시민이든 화장을 한 후 뼈를 석관이나 단지에 담아 가족 산소에 모셨으나, 이후에는 매장률이 높아졌고, 인구가 많아지자 매장지가 부족하게 되어 지하에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대 이교도들은 화장을 선호했으나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절대적으로 매장을 선호했다. 육체적 부활을 믿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자를 정중하게 매장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한 것이다. 가족이나 신앙공동체의 경우 더욱 그러했다. 만일 죽은 자들의 시체가 매장되지 않는다면 가족이나 공동체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로마사회에는 여러 조직 사회이나 클럽, 혹은 연합체(societas)가 있었는데, 심지어 장례 클럽도 있었을 정도였다. 매장지를 확보하고 죽은 자를 매장해 주는 일을 상호부조하기 위한 클럽이었다. 가난한 자들은 매장되지 못했기 때문에 계(契)를 하듯이 이런 클럽까지 생겨난 것이다. 당시 기독교회가 신자들의 매장은 물론이고 가난한 자들을 매장해 주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테르툴리아누스가 197년경에 쓴 ‘변증론’(Apology)을 보면, 매달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이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장례 치르는데 사용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4세기 말의 암브로시우스의 글에 보면, 성도들의 장례를 위해서는 심지어는 교회의 용품이나 성배들을 깨거나 녹이거나 판매하는 것을 허락하는 글을 남겨주고 있는데, 성도들의 장례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면 스데반이 순교 당했을 때 “경건한 사람들이 그의 장례를 치렀다(행 8:2)”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매장을 선호했고 순교자들을 매장했다. 로마법은 매장을 허락하고 있었다. 매장을 못하게 하기 위해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을 불태워 죽이기도 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매장을 선호했고, 따라서 매장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있던 카타콤을 그리스도인들의 매장지로 사용한 것이다.

로마시를 둘러 싼 넓은 지역은 화산폭발에 의해 생긴 축적물로 이루어진 응회암(凝灰巖, tuff)지대였기 때문에 흙이 부드러워 지하 무덤을 조성하기가 쉬웠다. 따라서 특별한 기계나 연장이 없어도 쉽게 땅을 파 들어 갈수 있었고, 파낸 흙이 공기와 접촉하면 바로 굳어지는 성질 때문에 단단하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지하묘지가 확장되어 로마에 있는 카타콤의 총 길이가 약 1천 Km가 넘는다고 한다. 카타콤(The Catacombs)이라는 책을 쓴 제임스 스티븐슨(James Stevenson) 교수에 의하면 로마와 그 인근에서 발견된 카타콤이 42개에 달한다며 그 지도까지 소개하고 있다. 카타콤은 로마만이 아니라 나폴리, 시라쿠사, 몰타 등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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