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크리스천이 일어날 시간, 중국인 스스로 복음 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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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크리스천이 일어날 시간, 중국인 스스로 복음 전할 때”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10.05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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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복음화의 비전 품은 한족 출신 장계위 전도사

“사업 실패 후 만난 하나님, 한국행 이끄셨다”
유학생 사역 위해 ‘차이나 리턴 크로스’ 만들어
백석대 신대원 수학 중…“목사안수 후 고국으로”

올해 나이 마흔의 늦깎이 신학생 장계위 전도사는 중국에서 온 한족 출신이다. 그는 하루 일분일초를 아끼며 살아야 한다. 천안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4년을 졸업하고 올해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장 전도사. 이제 일상 대화와 글을 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신학공부는 차원이 다르다. 시간을 아끼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회학교 사역, 중국인 유학생 사역까지 감당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다. 

지난달 30일 서울 방배동 백석대 신대원에서 이날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온 장계위 전도사를 만났다. 중국어 억양이 있지만 대화하고 설명하는 데 능숙하다. 그는 “쉼이 없는 시간이고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영적으로 너무나 기쁘다”고 고백했다. 무엇이 그를 기쁘게 하고 있는 것일까?

올해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장계위 전도사는 교회 사역과 중국인 유학생 사역을 위해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주를 처음 만난 날…”
중국 허난성 출신 장계위 전도사는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본 적이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신앙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여느 중국 청년들처럼 부자가 되겠다는 꿈이 앞섰다. 젊은 나이에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제 삶은 엉망이었습니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도박에 빠졌고 마약에까지 손대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즐기는 것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방탕한 삶이었습니다.”

죄를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창업에 실패하고 신앙이 있는 누나가 그를 교회에 인도했다. 당시 복음을 전해 듣고 영접기도를 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였다. 시작은 중국에서 사역하던 한인 선교사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어머니와 누나가 출석하는 교회를 갔는데 한국인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관심이 없었지만 훌륭한 사람 같아서 마음이 갔죠. 어떻게 편안한 조국을 떠나 중국까지 와서 힘들게 살까 궁금했습니다. 삶을 지켜보면서도 너무 감동이 됐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살았던 거죠. 다시 교회에 갔다가 청년집회에 참석해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장 전도사 본인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 위로의 눈물이었다. 죄인 줄 몰랐던 죄까지 회개가 쏟아져 나왔다. 그 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성령께서 그를 만져주신 순간이었다. 이후 삶이 변해갔다. 그는 모든 예배에 참석했고, 교회 안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예수를 믿기 시작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는 그에게 한인 선교사는 뜻밖에 제안을 했다. 한국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천안 백석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 출신 기독 유학생들은 매주 토요일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고 있다. 

유학생 동아리 ‘차이나 리턴 크로스’
“그 때 제 나이가 35세였습니다. 한국어도 몰랐고 한국에 가고 싶지도 않았고, 공부를 할 엄두도 안 났습니다. 처음에는 거절을 못해 기도해보겠다고만 했는데, 선교사님께서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려 한다는 마음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 때부터 저도 기도해보았는데, 오히려 기대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생활 초창기, 그의 기대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 2016년 4월 한국에 들어와 일년 동안 어학당에서 언어를 익히고 2017년 3월 총신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당시 총신대는 학내 갈등으로 분규가 벌어져 심각한 상황이었다.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설상가상 출입국관리소에서 비자 발급이 어려워졌다. 결국 그는 짐을 싸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장 전도사는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막 와서는 신앙생활을 한 지 얼마 안돼 술과 담배도 끊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교회에서 양육을 받으며 완전히 끊게 됐습니다. 그리곤 천안에 있는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물론 한국어가 부족해 공부부터 힘들었다. 외롭고 힘겨운 시간, 기도하면서 돌파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 2학년이 됐을 때는 중국 유학생들을 위한 기독교 동아리를 세웠다. 백석대 내 150여명 중국인 유학생들이 있는데, 그 중 30~40명은 크리스천 학생들이다. 방치되어 있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품은 생각이었다. 그는 유학생을 만나며 “우리가 모여서 기도하자”고 이야기했다. 

“백석대 국제교류처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기독교 대학이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죠. 제 꿈은 신대원을 졸업한 후 목사안수를 받고 중국으로 돌아가 사역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그저 그렇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기는 유학생들에겐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 유학생들에게 동아리 ‘차이나 리턴 크로스’(China Return Cross)는 신앙으로 버틸 수 있는 둥지 같은 곳이었다. 동아리에는 늘 맏형, 큰오빠 같은 장계위 전도사가 있었다. 유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 바로 장 전도사다.  

그는 목사안수를 받은 후 고국에서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중국 다음세대를 세울 겁니다”
‘차이나 리턴 크로스’는 중국으로 돌아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전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조선족교회 목사님의 후원으로 동아리방도 학교 밖에 얻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청년집회를 열고,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초청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전도하기 참 어려워요. 속상한 일도 많았습니다. 몇 개월 동안 복음을 전하고 양육과 교제를 했는데 결정적일 때 복음을 거절하면 마음이 상합니다. 그래도 복음을 전해야죠. 열매를 거둘 때가 있으니까요.”

동아리 정기모임은 원래는 매주 월요일 저녁이었는데, 장 전도사가 신대원에 진학하면서 토요일로 바꿨다. 장 전도사는 최근 본지에 소개된 경기도 군포 참사랑교회에서 초등부 교육전도사로 사역하고 있다. 그는 토요일이면 교회 승합차를 몰고 천안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유학생들을 만나 기도하고 말씀을 전한다. 교제하고 함께 동아리방에서 잠을 잔 다음날 주일, 유학생들을 태우고 군포 교회로 올라온다. 보통 15인승 승합차 가득이다. 다시 교회 사역을 마치면 중국인 유학생들을 다시 천안으로 태워다 주고 돌아오면 그의 주일사역은 마무리 된다. 누구보다 바쁜 일상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교인들과 후배들이 좋아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그는 말한다. 

“신대원 공부를 하면서 깊이는 더해졌지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더 커졌습니다. 다행히 같이 수업 듣는 반 분위기가 좋고 교수님들과 전도사님들이 많이 도와주십니다. 학교에서 배려도 많이 받고 있고요. 특히 아침마다 수업 전에 전도사님들과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큰 힘이 됩니다. 지금은 구약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장계위 전도사는 신대원을 졸업한 후 목사안수를 받으면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을 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가족은 큰 고난 없이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권유하고 있지만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선교사님들이 추방당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중국의 크리스천들이 일어날 시간입니다. 스스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고난을 당할 수는 있죠.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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