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의 인간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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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의 인간적인 모습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2.09.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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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김기창 장로
김기창 장로

 

지난 9월 28일은 유관순 열사가 순국하신 지 102년이 되는 날이다. 열사는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친 애국 소녀로 우리들 가슴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횃불인 그분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훌륭한 삶은 기독교 신앙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

필자가 책임자로 있었던 유관순연구소가 그동안 열사에 관한 각종 기록문과 관련 인사들의 증언, 현장 탐방 등을 통해 유 열사의 일생을 살펴 본 결과에 따르면 흔히 알려진 대로 초인성과 그에 따른 위업보다는 인간 유관순의 모습이 더 드러나 보였다.

유관순 열사와 이화학당에서 같이 생활하셨던 분으로 보각 스님(본명 이정수)이 계셨다. 1903년생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통일정사 주지 스님으로 계시다가 2006년에 입적하셨다. 그분은 이화학당 재학시절 기숙사에서 유관순, 유관순의 사촌언니인 유예도 등과 함께 같은 방을 5년 동안 사용하셨다고 한다. 2002년 우리 연구소 교수들은 두 차례 통일정사로 그분을 찾아뵙고, 그분과의 장시간 대담을 통해 인간 유관순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다.

“부지런하고,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고 그래서 별명이 ‘벼락대신’이야. 꽃을 심어도 관순이네하고 우리 반이 가장 잘했지.”

기숙사에서 저녁이면 공부를 다 마친 다음에, 자기 전에 기도 종을 치면 방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기도하는데 그 날은 유 열사의 차례였다. 기도 끝에 “예수 이름으로 빕니다” 하는 것을 “명태 이름으로 빕니다”라고 해서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 때 마침 기숙사 사감이 돌아다니다가 들어와서 심한 꾸중을 한 후에 문에 빨간 딱지를 붙였다. 그래서 “아이고 이 기집애, 왜 명태 이름으로 빈다고 했어. 예수 이름으로 빌어야지” 하니까 “며칠 전에 너의 어머니가 명태 반찬을 소포로 붙여주셨는데, 그게 하도 맛있어서 문득 그 생각이 나서 그랬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3·1절 만세 며칠 전이었지. 저녁밥을 먹고 나니 관순이가 무얼 한 보따리 싸들고 와 4층 강당으로 가자고 하더군. 그날 밤 촛불을 켜놓고 강당 한구석에서 찬 손을 불어가며 둘이서 태극기를 열심히 그렸지….”

유 열사는 거사에 쓸 태극기를 손수 그렸다. 태극기의 정확한 규격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태극은 밥공기를 엎어놓고 그렸고 팔괘는 정확히 알 수 없어 대충 흉내만 낸 태극기였다.
“이렇게 만든 태극기를 오후 10시 취침종이 울린 후 기숙사 36개 방문마다 붙였어. 다음날 발칵 소동이 났지.”

유 열사가 고향인 병천으로 내려가 만세 운동을 펼치고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이 기차 소리가 어떻게 들리니?” 그러니까 어떤 아이가 ‘동전 한 푼 동전 두 푼’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유 열사는 “내 귀에는 ‘대한 독립 대한 독립’이라고 들린다”라고 하여 같이 가던 친구들은 모두 손뼉을 치고 “대한 독립! 대한 독립!”을 크게 외쳤다. 그랬더니 차장이 와 “학생들, 나 좀 살려 줘. 이렇게 하면 차가 통과할 수가 없어. 제발 마음으로만 하고 입으로는 하지 마. 나 잡혀가면 어떡해”하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그 아저씨 가자마자 또 “대한 독립, 대한 독립”을 불렀다.

유 열사가 3년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 감형이 되어서 나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이 한 푼씩 모아 옷을 맞추고 핀도 사고 구두도 사고 환영회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어느 날, 기숙사 대문을 박차고 문을 열라는 소리가 들려와 문을 여니 썩은 내가 진동하는 시체를 두 사람이 들것에 가지고 들어왔다. 친구들은 밤새도록 운동장에서 통곡을 하며 잠을 못 잤다고 한다.

활발한 성품에 훤칠한 키(서대문 형무소 수형 기록표에 의하면 유 열사의 키는 5척 6촌으로 169cm였다고 함), 머리끝의 빨간 댕기,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와 가죽신을 신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하시며 끝을 맺으셨다.

이러한 증언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적인 체취가 느껴지는 유관순의 모습을 새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훌륭한 분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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