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3> 마태복음의 보편적 특징
흔히 공관복음의 특징을 언급할 때, 마가·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 즉 마가복음은 로마인, 누가복음은 헬라인을 위한 복음서로 소개하면서,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라고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관한 한 이런 소개는 약간의 수정이 요청된다. 마태복음을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복음서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보인다. 그 근거의 단서를 우리는 1장의 족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족보에 여자들의 이름이 등재된 것은 유대적이 아니다. 마 1장의 족보에는 모두 네 명의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다말(3절), 라합, 룻(5절), 우리야의 아내(6절). 주님 당시의 유대 관습에 따르면 족보에 여자들의 이름은 오를 수 없었다. 여자를 노예 및 어린 아이와 거의 동일시하며 2급 인간으로 취급하면서 무시·멸시하는 풍조가 있었다(마 14:21). 그리고 여자들을 남자의 재산의 일부로 간주했다(출 20:17; 참고, 마 18:25).
둘째, 족보에 소개된 네 명의 여인들이 이방인이라는 것 역시 유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말은 창 38장의 문맥에 의하면 가나안 여자였을 가능성이 높고, 라합은 수 2장에 의하면 역시 이스라엘 여자가 아니었고, 룻은 모압 여자였고(룻 2:6), 밧세바는 헷 족속이었던 남편 우리야를 따라 헷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혈통을 중시해 이방인들과 피를 섞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으로 간주하며 멸시했던 유대인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눅 17:11~19), 메시아의 족보에 이방인이 포함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방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된 것은 마태복음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포용하는 포괄적 복음서임을 가리키는 증거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네 여인들이 부적절한 성관계를 통해 세인(世人)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인물들이라는 것 역시 마태복음의 보편성을 시사하는 증거다. 라합은 기생, 다말은 그 시부인 유다와 부적절한 관계, 룻은 보아스와 재혼, 밧세바는 강제로 다윗 왕과 동침했던 인물이었다. 특히 저자 마태가 밧세바를 우리야의 아내라고 소개한 것은 다윗의 죄를 기억나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족보가 깨끗한 사람들만의 족보가 아니라 흠이 있고 실수가 많은 보통 사람들을 포용하는 복음과 복음의 내용인 구원의 보편성을 가리키는 증거로 이해할 수 있다.
만일 마태복음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복음서라면, 예수님의 족보에 2급 인간인 여자들의 이름이 함께 등재됐다는 점, 특히 그들이 이방인이었다는 점, 더 나아가 그들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참작할 때, 이러한 요소들은 사실 유대인들의 정서에 반대되는 것으로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비유대적 요소들은 마태복음이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인 복음서가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복음서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박종수의 구약 읽기
모세오경<3> 선악과의 교훈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흙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러기에 최초의 인간이라 불리는 아담과 이브는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살며 최초의 정원지기가 된다. 동방의 에덴은 지상에 있는 낙원(Paradise)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만난다.
그곳이 지상의 어디인지 우리는 알지도 못하며 알 필요도 없다. 에덴은 에덴으로 족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순박한 농부들이 사는 곳이다. 고대의 성소(聖所)들은 오늘날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신이 거하는 곳이며 신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로 이해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에덴은 성소의 상징(symbol)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두번째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불러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동산지기로 삼고 첫번째 계명을 주신다. 그것은 동산의 어떤 과일도 따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따먹는 날에는 아담은 죽게 된다(창 2:16~17).
하나님은 각종 동물들 역시 흙으로 지으시고, 아담이 각 동물과 새들의 이름을 지어준다. 아담이 잠든 사이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 하나로 이브를 만들어 그의 아내로 주신다. 성서는 비록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속한다는 뜻은 아니다. 남성에 의해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기록된 구약성서임에도 불구하고 창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아담과 이브가 종속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 관계에 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창 2:20).
인간의 갈비뼈는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부위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보고(寶庫)이다. 이 생명의 보고는 남자 혼자만 가질 수 없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룰 때 가능해진다. 히브리인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담의 갈비뼈와 이브의 갈비뼈가 만날 때 인간은 온전해진다.
문제는 선악과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선악과는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르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동시에 선악과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한다. 사람은 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선악과만은 따먹을 수 없다. 인간에겐 무한대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사회와 이웃에 피해를 준다면 문제가 된다. 그것은 곧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선악과는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도구이다. 선악과 근처에 가면 하나님의 금령을 기억한다. 해서는 안 될 일, 그것이 곧 선악과이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말렸던 선악과를 따먹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다.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귀가 얇어 남의 말 듣기를 좋아하며 책임전가에 열을 올린다. 우리는 선악과의 교훈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다 봐야 한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자.
/교수·강남대 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