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의 눈물, 예수님의 사랑으로 닦으면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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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청소년의 눈물, 예수님의 사랑으로 닦으면 ‘희망’이 됩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2.09.21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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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들 돕는 ‘소년희망공장’ 설립자 조호진 권사

위기청소년의 자립 돕는 ‘소년희망공장’…6년새 7호점 확장
온라인에 ‘소년은 희망이다’ 연재로 위기청소년 편견 허물어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선뜻 ‘신장기증’ 결단
▲ 2016년 경기도 부천에 '소년희망공장' 1호점을 설립한 조호진 권사.

경기도 부천시청역 인근, 고소한 원두 향이 풍겨오는 카페 컴포즈커피의 또 다른 이름은 소년희망공장이다. 6년 전 처음 기지개를 켠 이곳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앳된 얼굴의 종업원들이 교복 대신 앞치마를 두른 학교 밖 청소년들이란 점과 더불어 한쪽 벽면에 빼곡히 새겨진 후원자 2,600여 명의 이름 때문이다. 모두 카페가 문을 여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다.

지금은 어느새 7호점까지 몸집을 키운 소년희망공장의 설립자 조호진(청파교회·62) 권사는 사회에서 사고뭉치, 문제아로 낙인찍힌 위기청소년들을 품는 자칭 소년희망배달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소년의 죄는 비단 소년에게만 있지 않다고. 눈물 흘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어른들의 무정함도 죄라면 죄라고 호소하는 그를 직접 만나봤다.

최고의 복지는 안정된 일자리

소년은 희망입니다. 소년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이어야 합니다. 소년에게 희망이 없는 나라는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20169월 부천에 1호점이 둥지를 튼 후 2022년 서울·용인 등지 일곱 군데서 운영되고 있는 소년희망공장의 캐치프레이즈다.

소년희망공장은 겉보기엔 여느 카페나 베이커리와 다를 바 없는 자영업 장()이다.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의 이혼이나 빈곤 등으로 고통받고 좌절한 위기청소년들을 일으켜 세우는 사역지. 조 권사는 이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가정·진로 상담을 통해 대학입학이나 사회진출을 돕는 등 자립을 위한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소년희망공장 1호점의 포문은 조 권사와 그의 아내 최승주 권사가 열었지만 2호점부터 7호점은 위기청소년 사역에 뜻을 모은 6명의 목사·권사, 찬양사역자가 이끌어가고 있다. 현재 1~7호점에 고용된 직원들은 평균 연령 스무 살의 위기청소년들과 미혼모들로 총 30명에 이른다. 그동안 소년희망공장을 거쳐간 위기청소년들의 수를 다 합치면 족히 수백 명은 될 것이다.

위기청소년들은 우울증이나 품행장애 등 많은 아픔을 갖고 있어요. 이런 그들에게 최고의 복지는 안정된 일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통해 아이들은 물질적인 도움을 받을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가거든요.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준 것 같이 아이들의 잘못을 안아주고 그들이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돌보는 게 저의 사명이자 소년희망공장의 임무입니다.”

그렇다면 장사의 장자도 모르던 조 권사가 위기청소년들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 계기는 언제였을까? 때는 2012, 당시 이주민 선교단체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연쇄 방화를 저질러 구치소에 수감된 한 소년범을 만났다. 러시아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릴적 부모와 이별하고 내내 왕따를 당했다는 아이를 위해 조 권사는 탄원서를 받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을 보살피는 일이 곧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 권사 역시 평탄치 않은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 위기청소년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판자촌에서 나고 자란 그는 상한 가정에서 늘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다. 부모의 부재 속에서 급기야 그의 친형이 밤낮으로 소년원을 드나들며 방황을 일삼았던 것이다.


저의 형처럼 위기청소년의 70%는 결손·극빈가정 출신입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방치되면서 상처 입고 거리로 내몰린 이들에게 세상은 약육강식의 밀림이죠. 하지만 무자비한 어른들은 위기청소년들을 보면 밥과 잠자리를 주기보다 신고부터 해요. 가출청소년들까지도 먹이고 재우고 돌보는 게 어른의 책임인데 우리는 냉대와 거절, 제 자식만 챙기는 이기주의라는 돌만 던지기 바쁩니다. 길 잃은 양을 외면한다면 교회가 말하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소년들의 아픔을 들어주세요
위기청소년들의 문제는 1차로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원가정과 무한경쟁 구조의 사회서 기인한다고 여긴 조 권사는 결국 2014년 직접 사법형 그룹홈을 열였다. 절도·폭행 등의 죄로 소년재판을 받고 위탁된 아이들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 이를 통해 조 권사는 위기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이 소년범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개중에는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해 우울증을 앓는 등 실로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다만, 조 권사는 사법형 그룹홈을 오래 지속하진 못했다. 그룹홈은 아이들의 일탈을 통제하고 비행을 막을 근본적 대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 시기 위기청소년들과의 만남은 그가 2015~2016카카오 다음 스토리펀딩 오마이뉴스 국민일보 등에 소년의 눈물소년이 희망이다란 제목의 글을 연재한 도화선이 됐다. 여기에는 빵을 얻는 것보다 훔치는 게 더 쉬웠다고 고백하는 위기청소년들의 가슴 아픈 속사정이 속속들이 담겼다.


사실 소년의 눈물’(소년이 희망이다)은 우리 형제를 비롯해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경찰과 법원은 소년의 를 바라보지만 엄마 없이 자란 저는 세상과 부모에게 외면당한 소년의 눈물에 주목한 거죠. 법정에서 피고인이라고 위기청소년들에게 무조건 수갑만 채운다면, 그들은 더 큰 괴물로 변할 수 있어요. 이에 소년의 눈물은 적어도 학교 밖 아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초지종이라도 들어보자는 저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하지만 연재 초기 반응은 싸늘했다. 많게는 한 편에 악플이 300개씩 달렸다. 좋게 말해 위기청소년이지 결국은 일진을 미화한다는 댓글부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보호한다는 비난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점차 위기청소년들도 버림받기 위해서가 아닌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

무엇보다 위기청소년의 아픔에 공감한 수천 명의 독자들이 후원의 손길을 보내온 건, 그야말로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로밖엔 설명이 안 됐다. 거짓말처럼 2015소년의 눈물을 통해선 약 7천만 원, 2016소년이 희망이다를 통해선 약 11천만 원이 모이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소중한 후원금은 바로 소년희망공장 제1호점의 건립을 이룬 종잣돈이 됐다.


사랑이 빚어낸 기적
조 권사의 철칙 중 하나는 소년희망공장을 해고 없는 일터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위기청소년들은 매장에서 밝은 웃음으로 손님을 응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뿐더러 지각과 무단결근도 잦았다. 그럴 때면 그와 그의 아내가 전부 일을 메꿔야했기에 육체적으로 끙끙 앓아 누울 때도 허다했다. 때로는 아이들이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학교 밖 청소년의 자립이란 콘셉트는 경영에도 별 도움이 못 됐다. 안 그래도 생애 첫 장사인데다 카페는 열에 아홉은 문을 닫는다는 레드오션이었다. 기본 운영비조차 감당이 안 됐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생계가 달린 일을 쉽게 내려놓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매달 적자에 허덕이던 조 권사의 유일한 돌파구는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는 것 뿐이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제 몫을 다 챙겨갈 수 있겠어요. 저와 제 아내는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괜찮았습니다. 다만 아이들 월급은 줘야하니까 장사 초창기엔 하루하루 피가 말랐죠. 그래서 아내와 새벽마다 눈물의 기도를 올렸는데 하나님은 그때마다 정말 신실하게 응답해주셨어요. 누가 갑자기 소년의 눈물을 읽고 감동이 왔다며 후원을 하고, 그렇게 한고비씩 넘기고. 무엇 하나 제 힘으로 된 게 아닌, 모두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통 큰 선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 권사가 운영하는 소년희망공장 1호점은 2019JTBC 프로그램 나도 CEO’에 소개되면서 전문가의 솔루션을 받게 됐고, 결국 카페 매출이 두배가량 늘어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등 기막힌 반전이 찾아왔다.

마냥 사고뭉치였던 위기청소년들도 점차 변화됐다. 삶을 끝내고 싶다던 친구들이 하나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와 대입에 합격하거나 당당히 사회에 진출했다. 그가 아이들의 근무시간을 조정해주고 학원비를 지원해준 게 큰 도움이 됐다. 이렇듯 위기청소년들에게 조 권사는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소년희망공장은 인생의 정류장이었다.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연 건 제 진심이 통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위기청소년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산전수전 다 겪어서 눈칫밥이 장난 아니거든요. 그런 친구들이 조 권사는 우리를 이용해서 자기 잇속을 채우려는게 아니구나를 깨닫고 믿어줬어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번지르르한 설교가 아닌, 내가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낼 때 가능함을 또 한번 느낍니다.”

▲ 조호진 권사는 2007년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신장 하나를 선뜻 기증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끔 주위에선 조 권사에게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손사레를 친단다. “틀린 말도 아닙니다. 인간은 은혜를 원수로 갚을 때가 많죠. 하지만 저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잘 섬기라는 성경 말씀에 순종하려 합니다. 주님은 착한 고아 나쁜 고아를 구분짓지 않으셨잖아요. 물론 위기청소년들이 다 제가 원하는 삶을 살아주지 않죠. 그렇지만 아이들이 먼 훗날 지금을 돌아봤을 때 저와 하나님의 사랑을 따뜻하게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조 권사는 오늘도 이른 나이에 미혼모가 된 위기청소년들을 위해 수시로 분유와 기저귀를 배달하고, 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조촐한 돌잔치까지 열어주는 정성을 들인다. 그리고 미혼모들을 비롯한 다양한 위기청소년들과 이들을 돕는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년희망편지를 연재하며, 이들이 자립할 토대가 되어줄 귀중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한편, 그는 2007년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신장 하나를 선뜻 기증했다. 이처럼 생명을 나눈 고귀한 결단의 배경에는 그 또한 한 없이 누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30대 중반 한 차례 이혼과 파산의 아픔을 겪고 벼랑 끝에서 신음하는 조 권사를 건 진 건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이었다. 이후 주님이 보내신 인생 최고의 반려자, 지금의 아내와 재혼하면서 조 권사 내외는 결단코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 살지 말자고 서원한 것이다.


지옥을 살던 제게 천국을 경험케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혹자는 제게 훌륭한 일을 한다고 칭찬하지만 언감생신이죠. 실패한 인생을 일으켜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공치사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못난 제 인생이 그나마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도 가난과 상처로 얼룩진 위기청소년들 덕분입니다. 살면서 기쁘고 감사한 순간들 역시 아이들 덕분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조 권사. 끝으로 그는 중도입국청소년을 향한 계획도 귀띔했다. 중도입국청소년은 그들의 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다 한국에 정착한 부모의 부름으로 이주한 청소년을 일컫는다. 조 권사는 내년에 이들을 위한 국제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도입국청소년들은 사실 한국사회의 귀중한 손님을 넘어 구성원이 돼야하는데, 언어부터 통하지 않아서 공교육에서 교육을 받는데 한계가 큽니다. 그만큼 차별과 왕따 등 사회의 따가운 시선도 견뎌야 하죠. 이는 위기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위기청소년이든 중도입국청소년이든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음 아픈 아이들이 다시 살아갈 희망과 꿈을 갖도록 돕는 것. 이것이 주께서 제게 맡긴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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