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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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기술
  •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 승인 2022.09.1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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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깊은 철학을 말하는 한 유튜버가 최근 이런 내용의 영상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A : “유럽 여행 가서 식사할 때, 돈 아끼느라 술을 시키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원래 유럽의 음식은 식전과 식후의 술을 모두 포함해 구성이 되어 있는데 돈을 아낀다고 이것을 즐기지 못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싶다”

취지는 알겠지만, 무언가 불쾌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마다 여행의 목적도 다양하고 사정도 다양한데 술을 주문하지 않는 것을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술이 옳고 그르냐는 잠깐 논외로 두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 창을 열어보았더니 역시 마른 장작을 넣은 화로처럼 불타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이유로 내렸던 자신의 선택이 조롱되고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는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난의 말을 쏟았습니다.

만약 그 유튜버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B : “넉넉지 않은 사정에 해외를 나가려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보통 식사비를 절감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곁들일 술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비용을 아껴서라도 술을 한 번 주문해보길 바란다. 그래야 유럽의 온전한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은 다른 어떤 것보다 머리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말했더라면 사람들의 반발이 지금보다 많이 줄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떤 현실에 아쉬움을 느끼고 새로운 대안을 제안하고 싶을 때 ‘비판’을 하게 됩니다. 세상은 이런 비판이 불러오는 정반합을 통해 발전했기 때문에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비판은 현재의 방향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불쾌감을 불러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불쾌감은 반발로 이어져 비판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성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비판에는 ‘비판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글 서두에 예로 들었던 유튜버의 발언 A와 제가 제시한 대안 B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A와 B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재에 대한 평가입니다. A는 현재를 부정하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지금은 틀려! 저기로 가야 돼!” 하지만 B는 현재를 어느 정도 긍정하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여기로 가보면 더 좋을 거야” 둘이 만드는 거부감의 차이는 상당합니다.

세상의 어떤 현상이든 그 현상이 만들어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가 담겨 있고, 더러는 어쩔 수 없는 사정도 포함이 되어 있지요. 그런데 그 현상을 모두 부정적으로 언급하게 되면 그 선택을 내린 사람들의 필요, 요구, 사정까지도 부정한다는 뉘앙스를 품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감정이 자극되지요.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인정할 정도로 그 안에 죄악과 욕망만이 가득한 현상이라면 강하게 부정해야겠지만, 세상에 그런 일은 많지 않습니다.

청년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어 주실 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청년 세대는 불안한 요소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30대 중반에 이르지도 못한 제가 보기에도 말이죠. 이들이 벗어던졌으면 하는 문화가 많이 있지만, 그들이 그 문화를 이불처럼 두르고 있는 데는 그들의 필요와 요구와 사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관찰과 배려를 담지 않으면 이들의 마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요즘 청년들 말이야. 인터넷으로만 소통하려고 하고,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심지어 전화도 두려워하고. 그래가지고 어떻게 사람을 이해하겠어? 그러니까 다들 더 고집만 심해지고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않지. 사람을 만나야 변화가 있는 거야.”

“사람을 대하기 참 어려운 세상이지? 다들 자기 유리한 대로 인간관계를 하려고 하니까 말야. 거기에 다들 어려서부터 학교, 학원에 갇혀 있다 보니 사람들을 원활히 대한 경험이나 있나? 그러니까 아무래도 인터넷 관계가 더 편하지. 그런데, 역시 사람은 사람끼리 부딪혔을 때 알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 대화하고, 웃음소리를 직접 듣고, 악수하고, 미묘한 표정을 주고 받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을 느끼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상대방의 현재에 대한 관찰과 이해.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비판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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