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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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호 목사
  • 승인 2022.09.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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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
김한호 목사.
김한호 목사.

필자는 추석을 앞두고 2주간의 일정으로 독일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일정들을 소화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지에서의 일정은 피곤하고 힘든 시간들이 있었지만 나름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저를 더 흥분시킨 것은 1991년 유학으로 처음 고국을 떠나 떨리는 마음으로 독일에 도착했던 그 때도 추석을 며칠 앞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더욱 많은 생각이 났습니다. 독일은 큰 변화가 없는 나라임에도 시간은 붙잡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변화를 길거리의 젊은이들에게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공중전화를 통하여 고국에 전화를 하는데 너무나도 전화비가 부담이 되어 공중전화 박스에서 동전을 넣고 그것만큼만 전화하던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추석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후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는데 고국의 명절이 되면 성도들과 음식을 만들어 나누며 먼 곳에서나마 고향을 그리워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좋은 추억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추석날, 제가 살던 독일 비스바덴에서 자동차로 7시간 정도 떨어진 프랑스를 찾았습니다. 송편을 만들기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방앗간을 찾아간 것입니다. 나중에는 1시간쯤 떨어진 근처 프랑크푸르트에 방앗간이 생겨 프랑스까지 갈 필요가 없었지만, 송편을 빚을 떡쌀을 만들기 위해 국경까지 넘는 수고는 도리어 큰 설렘과 기쁨이었습니다.

교회에서 함께 떡을 만들 때면 언제나 시끌벅적 요란합니다. 남자 분들은 솔잎을 따오고 여자 분들은 떡을 만들었는데, 문제는 반죽을 할 때마다 어떤 분들은 찬물에 해야 한다, 또 어떤 분들은 더운 물에 해야 한다며 교우들이 반으로 나누어집니다. 모두들 한국에서 부모님이 송편 만들던 모습을 떠올리며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고국을 떠난 지 30여년도 넘는 세월에 방법도 송편 모양도 지역과 집안마다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정성스레 빚은 송편을 교우들은 먼저 먹지 않습니다. 송편을 포장용기에 10개씩 가지런히 담고, 그 안에 전도지를 만들어 같이 넣습니다. 그리고는 교민들 집을 찾아다니며 떡을 나눕니다. 150여명이 살고 있는 우리 지역뿐 아니라 인근 동네까지 다니며 떡을 나누었습니다. 한해에는 송편이 모자랐는지 몇 가정에 송편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떡을 받지 못한 교민이 교회로 찾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송편을 기다렸는데 송편이 안 와서 찾아왔어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송편을 받은 지 5년 만에 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오곡이 풍성하여 음식도 다양하고 풍성하게 장만했던 추석을 맞을 때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일 년 동안 농사지은 햇곡식과 햇과일로 맛있게 떡과 음식들을 만들어 이웃과도 서로 나누며 즐겁게 보냈던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추석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했고, 배부른 여유 속에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꿈꾸었습니다. ‘화(和)’자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데서 생긴 말입니다. ‘쌀(禾)’을, ‘입(口)’에 넣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화평(和平)’이고 ‘화목(和睦)’입니다. 찬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고 함께 먹고 마실 때 화목해집니다.

추석을 맞아 우리 주변에 고국을 떠나 생활하는 이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비록 남의 나라 명절이지만 이들에게도 기쁨을 주고 싶습니다. 떡은 혼자 먹으면 맛이 덜하지만, 같이 먹으면 신기하게도 더 맛이 납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지만 이런 나눔의 정신은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해마다 맞는 우리의 명절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이런 명절이기를 기도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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