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릴 편지…사랑을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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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릴 편지…사랑을 번역합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2.09.07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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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국컴패션 박요한 후원편지 번역봉사자
한의사인 요한 씨는 코로나19에 감염돼 병원문을 닫고 재택치료를 받는 가운데서도 번역봉사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혹시 길을 가다가 새의 노래 소리를 듣는다면 저를 생각해 주세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들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으니까요.” 여기,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편지가 있다. 귀여움에 미소가 지어지는 이 편지는 사실 해외 결연아동이 국내 후원자에게 보낸 러브레터다. 여기서 당신이란 글자를 후원자님으로 바꿔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질 테다.

NGO단체를 통해 해외 아동과 일대일 결연을 맺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후원편지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꼬불꼬불한 아프리카어로 가득했을 손편지는 먼저 현지에서 영어로 번역된다. 이후 한국에 발송된 편지는 또 한 번 우리말로 옮겨진다.

박요한(36·부산 장전제일교회) 씨는 바로 이 같은 작업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다. 현재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에서 세계 각국의 아이들이 보내온 영문편지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그의 임무. 후원자와 결연자 간 언어장벽을 허물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인 셈이다.

그가 처음 사랑의 메신저를 자처한 것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TV를 통해 우연히 컴패션의 사역을 접한 요한 씨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감동을 받았다. 때마침 컴패션은 후원편지를 번역할 봉사자를 한창 모집 중이었다. 그의 재능나눔은 이렇게 운명처럼 시작됐다.


사실, 고등학생 시절 캄보디아로 봉사를 간 적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힘든 여건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산다면 하나님이 언제 나를 데려가셔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작 돌아와서는 제 삶을 살기 바빴고 그런 스스로가 부끄러웠어요. 더는 봉사를 미루지 말자 싶었죠.”

그날로 일주일에 세 통씩, 지난 10년간 요한 씨가 번역한 편지만도 대략 1,500통이다. 후원편지 번역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영어실력에 방점을 두겠지만 요한 씨는 무엇보다 결연아동과 후원자를 생각하는 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의역을 할 때는 물론이고 단어 하나하나도 신중히 고르는 그다.

그의 진심은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본업이 한의사인 요한 씨는 코로나19에 감염돼 병원문을 닫고 재택치료를 받는 가운데서도 번역봉사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매주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편지들을 하나씩 번역하다 보면 오늘도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고 말한다.


제가 번역하는 편지는 어떻게 보면 후원자와 결연아동 간 유일한 소통창구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일이 생명을 살리는 길인 것 같아요. 결연아동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전함으로써 후원자 역시 큰 기쁨을 느끼죠. 후원편지로 인해 서로의 영혼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는 요한 씨. 그가 마주하는 어린이들의 편지 가운데는 평범한 일상 말고도 간혹 가슴 아픈 소식들이 적혀있다. 최근에도 코로나19로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접했단다. 자연스레 각 나라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알게 된다는 그는 번역하는 편지 하나하나에 기도를 함께 싣는다.


감사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후원자의 사랑으로 이 아이들의 삶이 행복하게 바뀌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는 거예요. 저보다 더 힘든 환경 가운데서도 불평 대신 믿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제게 도전도 되고요. 덕분에 저의 마음도 매주 한 뼘씩 자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번역봉사가 요한 씨에게 주는 가장 귀한 선물은 중보기도. 그는 편지를 번역하다 보면 자칫 또 한 명의 후원자가 선하고 훌륭한 일을 했다고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야말로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수혜자란 걸 깨닫는다고 말한다.


제가 번역하는 편지들의 사연은 다 제각각이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후원자님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는 아이들의 고백이에요. 내가 누리는 평범한 하루도 사실은 그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란 걸 잊지 않고, 앞으로도 주는 기쁨뿐만 아니라 받는 은혜를 더 생각하며 겸손하게 나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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