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간헐적으로 하복부가 약간의 통증과 함께 불편했다. 식사 후 바로 허기지기도 하고……. 5년 전 터키에서 맹장 수술 했던 곳에 이상이 있는지도 걱정이 되었다. 매사 ‘가불하는 걱정’을 하는 내 성격에 더 참을 수 없어 영상의학과에 가서 복부 CT 검사를 받기로 했다. 가기 전 별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나라 가는 건 그리 섭섭하지 않는데 가기 전 병상에서 오래 있을까 봐, 아내와 자식들에게 누를 끼칠 봐 그게 늘 걱정이다.
구름이 잔뜩 끼어 마음까지 어두워진 날, 후배 장로가 소개해 준 의원에 9시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일찍 도착하여 혹시나 하고 들여다보니 벌써 환자들이 서너 명이 있었다. 20여 분 정도 검사를 받는 동안 내 시선은 검사 의사의 표정 읽기에 바빴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를 했다. ‘하나님! 당신의 아들, 이 못난 녀석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원장 의사의 호명 소리를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인자하고 온화한 모습의 의사였다. 그분의 큰 책상 옆 벽에 부착된 ‘주님의 심장으로!’란 글과 함께 예쁜 삽화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 사이 방을 휙 둘러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도 보였다. 순간 은혜가 충만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적이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영상 자료를 한참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갸웃하신다. 순간 걱정이 앞서며 숨이 멎는 듯했다. 얼마 후 그 분이 엷은 미소를 띠며 하는 첫 마디 말씀이다.
“이렇게 깨끗한데 오시면 내가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가 자동적으로 급하게 나왔다.
“어디 이상한 데가 있어야 보험 처리를 할 수 있는데…….”
“네?”
그 말의 뜻을 내가 헤아리지 못했다.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이상한 데가 있어서 왔을 테니 초음파 검사와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세 가지 검사 결과를 놓고 자세하게, 정말 쉽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CT 검사에서 정상보다 훨씬 크게 늘어난 요관이 초음파 검사에서는 정상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시고는 말을 이어가셨다.
“하루에도 감정의 기복이 심하신가요?”
옆에서 아내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응대했다.
“아~ 네. 그래요. 제가 눈치 보느라고 힘들어요.”
원장 선생님이 허허 웃으시며
“더러는 마음가짐이 병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내 성격까지 그렇게 잘 알아맞히는지?’
날보고 ‘건강 염려증 환자’라고 늘 놀리는 제자 의사의 말이 떠올려졌다. 원래 기록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원장의 말씀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메모를 했더니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듣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하며 계속 ‘노후의 건강관리’에 대한 특강으로 이어 나갔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을 환자에게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원장실을 나와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원장님, 크리스천이세요?”
“네 천안 c 교회 장로님이세요.”
빙긋이 웃으며 크게 대답한다.
‘그러면 그렇지.’ 검사 담당 의사, 간호사, 접수처 직원, 모두가 친절하고 자상했다.
병원 문을 나서니 날씨도 내 마음처럼 활짝 개어 있었다. 내 몸에 별 이상이 없다니 좋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크리스천 의사를 만나서 아주 흐뭇했다. 신앙의 내면화와 외향화의 교직(交織)이 매우 아름답게 이루어진 분. ‘작은 예수’. 이런 분이 도처에 필요하다. 각자가 삶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일 그게 우리에겐 가장 중요하리라.
그분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할까 생각하다 내가 쓴 책 두어 권을 드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