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자주 많이 모이면 건강한 공동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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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자주 많이 모이면 건강한 공동체일까?
  • 이의용 교수
  • 승인 2022.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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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용의 감사행전⑮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모래를 한 움큼 손에 쥐고 있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다. 그러나 진흙은 더 오래 남아 있다. 점도(粘度)가 달라서다. 점도란 껌처럼 끈끈한 정도를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 ‘공동체’ 안에 속해 산다. 그중 가장 끈끈한 공동체는 가정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이 생겼다. 혈연 중심의 대가족제가 핵가족제로 바뀌더니 이제는 1인 가구 형태로 더 분화되고 있다. 가정뿐 아니라 마을, 학교, 군대, 기업, 나라 전체의 점도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 메주 같던 공동체들이 ‘콩가루’ 집안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를 분해하는 주된 요인은 ‘세대’와 ‘성(性)’이다. 투표나 여론조사에서 이런 성향은 매우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대남’, ‘이대녀’가 그 한 예다. 이러한 다름(異)은 도를 넘어 다른 상대를 적대시하거나 혐오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교인들을 지체로 하는 신앙 공동체(몸)다. 몸은 활동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그동안 교회는 예배, 교제, 선교, 봉사, 교육 등을 활발히 해옴으로써 건강하고 커다란 공동체를 이뤄왔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거의 모든 활동을 멈추거나 축소, 대체하게 되었다. 2년 반 넘게 그렇게 운영돼오다 보니 ‘정상(正常)이 비정상(非正常)이,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콩은 푹 익혀서 절구로 찧어야 점도가 강한 메주가 된다. 교회 공동체의 점도는 교우들 간의 진한 만남을 통해 이뤄지는데, 그 끈끈함이 와해되고 있으니 목회자나 교인 모두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공동체의 와해 현상은 목회방식에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복부 뱃살도 빼고, 필요한 근력도 기르는 재활의 과정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첫째, 교인들 간의 점도를 더 강화해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목회자와 교인 간의 점도 강화에만 신경을 써오지 않았는지 성찰해봐야 한다. 교인들 간의 점도 강화를 경계하는 목회자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소그룹 활동을 주창하는 이들은 목회자가 주도하는 예배와 설교 모임을 줄이는 대신, 교인들이 주도하는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러한 소그룹 모임이 교회 공동체의 뿌리와 줄기 역할을 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강한 공동체를 유지해가고 있다.

둘째, 무리한 모임과 사역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신앙의 현장은 교회가 아니라 가정, 일터, 사회여야 한다. 교회는 충전소나 주유소 역할을 해야 한다. 교인들이 ‘교회 중심의 삶’이 아니라 ‘가정 중심의 삶’을 이뤄나가도록 목회가 도와야 한다. 목회자도 자신의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배우자와 자녀들의 삶을 뒤로 한 채, 목회에만 전념하는 목회자는 교인들에게도 그런 삶을 강요하기 쉽다. 이들은 교회와 세상 사이에 굵은 경계선을 긋고, 교인들을 방주(교회) 안으로 동원해 가두려 한다. 교회의 규모 키우기를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교회는 목회자 개인의 성공을 이루는 공동체가 아니며, 교인들은 그 수단이 결코 아니다. 목회는 교인들을 온전하게 하고, 그들의 삶을 돌보는 일이다.

셋째, 목회자가 교회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도와야 한다. 우리 목회자나 교인들은 교인들의 성숙보다는 교인 수에 관심이 많다. 사실 교인 수가 적을수록 신앙 성장이 쉽고 공동체 의식도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자와 교인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교인 수 늘리기를 멈출 수 없는 건 자신들의 생계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회의 70~80%는 자립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교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다. 또는 목회자가 다른 직업을 겸하면서 교회를 지켜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직업을 겸하는 겸직 목회는 하나의 대안이라고 본다. 겸직 목회를 제대로 하면 바른 목회를 시도해볼 여유가 생긴다. 교우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니 설교도 달라질 것이고, 교회 운영보다 교우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교인들을 교회 일에 자주 동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교회는 여러 요인들 때문에 기초 체력과 중요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불필요한 복부 뱃살도 빼고, 체중도 줄이고, 마비된 기능도 되살리고, 필요한 근력을 기르는 재활과정이 필요한 때다. 목회자나 교인이나 그저 자주, 많이 모이면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는 인식부터 바꿨으면 한다. 교인 수보다 중요한 건 공동체 의식이고, 성도의 ‘삶’이다.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이의용 / 아름다운 동행 감사학교 교장, 전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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