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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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아내의 길
  • 최운식 장로
  • 승인 2022.08.2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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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식 장로/서울장위감리교회 원로장로,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목사는 복음을 전파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교인의 신앙생활을 보살피는 성직자로, 세상 사람들처럼 물질적 풍요를 좆지 아니한다. 그래서 개척교회나 소형교회를 담임한 목사의 아내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교인들의 마음까지 살펴서 다독여야 하니,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처녀들의 대부분은 어렵고 힘든 역할을 해야 하는 목사의 아내가 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그런데 처녀 시절의 내 여동생은 목사의 아내가 되겠다고 하는 별난 아가씨였다.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혼인 이야기가 나오자, 여동생은 목사와 결혼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어머니께서 개척교회 담임 전도사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리고 목사 사모님이 아주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시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여동생에게 그 생각을 바꿀 것을 종용하며 설득하였다. 그러자, 여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체육시간에 남자 아이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의식을 잃었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여동생은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입원하여 15일 만에 깨어났다. 그 때 자기가 하얀 비둘기가 되어 날개를 치면서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고 의식을 잃었던 일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날 문병 오셨던 손흥구 목사님께서 여동생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셔서, ‘여자 목사가 되어 널리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손 목사님은 네가 의식을 잃을 때 하나님이 네 영혼을 불러가셨다. 그런데 보름 뒤에 다시 보내준 것을 보니, 너를 크게 쓰시려는가 보다.”라고 하셨다. 그 뒤에 여동생은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목사와 혼인하여 남편을 도우며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니 더 이상 자기 뜻을 꺾으려 하지 말고 도와달라고 하였다.

여동생은 여러 혼처를 다 마다하고 경기도 농촌의 작은 교회를 담임한 목사와 혼인하였다. 그런데 그 교회를 개척한 전도사를 시어머니로 모시고, 남편 목사를 섬기는 일은 참으로 힘겹고, 어려웠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날이 많았다. 교인들은 농촌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서울댁 사모님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러면서 개인의 신상 문제, 가정의 일, 진로 문제 등을 상담해 왔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공부한 상담학 실력을 활용하여 상담한 뒤에 격려하며 함께 기도하였다. 어려운 문제는 아는 사람들을 움직여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남편 목사는 그 교회를 부흥시킨 뒤에 성남시로, 다시 고양시로 담임지를 옮겼다. 여동생은 남편을 내조하고 성도를 위해 일하겠다는 결심을 묵묵히 실천하였다. 교인들 사이의 일, 다른 교회와 관련된 일, 목회자 사이에 생긴 일 등을 해결하였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에는 목사는 뒤로 물러나 있게 하고, 앞에 나서서 해결하였다.

고양시로 옮긴 뒤에 생활비 걱정은 겨우 면하였으나, 3남매를 공부시킬 일이 막막하였다. 생각 끝에 학원에 다니며 공부하여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어린이집 교사로 취직하여 몇 년 경험을 쌓은 뒤에 어린이집을 개설하여 직접 운영하였다.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보니, 경제적인 면에서는 도움이 되었지만, 매우 바쁘고 힘들었다. 낮에는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교인들을 만나 상담하고, 기도하였다. 새벽기도회가 끝난 뒤에 방문하여 상담하고, 기도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제때에 저녁식사를 못하는 날도 많았고, 수면 시간도 부족하였다.

이렇게 바쁘고 힘들게 지내다 보니, 피로가 쌓이고 지쳤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식도암이 심하여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니, 널리 복음을 전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고 죽을 일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짧은 기간이라도 남편의 그늘을 벗어나 단독목회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여자에게도 목사 안수를 해 준다는 교단 총회장의 안내로 특별교육을 받으며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였다. 그러는 중에 식도암은 시나브로 좋아졌다. 그 뒤에 목사 안수는 받았지만, 단독목회는 하지 않고, 아내의 자리에서 일하다가 남편 목사의 은퇴를 맞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셔서 아들 딸 3남매를 대학,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게 해 주셨다.

여동생은 목사의 아내 노릇을 하면서 교인들과 함께 아파하며 기도하면, 교인들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어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 크게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남편 목사는 아내의 덕으로 대과 없이 은퇴하게 된 것을 고마워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나는 여동생이 목사의 아내 역할을 잘 할 역량을 타고난 것을 모르고 반대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길이면서 영광의 길이란 목사 아내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여동생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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