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출현, 정경의 집성 촉진하고 신앙고백 재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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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출현, 정경의 집성 촉진하고 신앙고백 재정비
  • 이상규 교수(백석대 석좌교수)
  • 승인 2022.08.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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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이단과 이단 집단은 기독교회에 상당한 위협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물리적인 박해 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이단의 거짓된 가르침은 교회의 기초를 허물고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거나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박해는 교회를 순수하게 하거나 내부적 결속을 강화시켜 주지만 이단은 교회의 순수성을 파괴하게 내부 분열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단이 출현했을 때 교회는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유스토 곤잘레스 등이 지적한 바처럼, 교회는 정경(正經)의 집성과 신경(信經)의 제정에 힘쓰고, 감독의 권위를 강화하고 사도적 전통의 계승(傳承)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에 대하여 차례로 살펴보자.

첫째, 정경의 집성을 촉진하게 되었다. 이단들의 잘못된 정경관에 대처하기 위해 교회는 받아드려야 할 책과 버려야 할 책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와 사도들의 비밀한 가르침이 수록되었다고 주장하는 책들을 저술하기도 했고, 마르키온은 자의적으로 정경의 범위를 제시하고 잘못된 정경관을 제시하였다. 또 몬타누스 이단은 사적 계시를 하나님의 계시인양 정대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이 참된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의 말씀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관심이 오늘 우리가 받아들이는 66권의 정경을 집성하게 된 것이다. 

최초의 신약성경 목록이 작성된 것은 190년 경의 ‘무라토리아 정경’(Muratorian Canon)이라고 할 수 있는데, 18세기 발견되었다. 이 문서는 초두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지만 이 문서에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사도행전, 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로마서, 빌레몬서, 디도서, 디모데전후서, 유다서, 요한1, 2서, 요한계시록, 베드로계시록,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서를 정경 목록으로 제시하였다.

이 문건을 처음 발견하여 1740년에 출판하였던 무라토리(L. A. Muratori)의 이름을 따라 이 문건을 ‘무라토리아 정경’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후 논란이 있었지만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동일한 정경목록이 처음 제시된 것은 367년 알렉산드리아 감독 아다나시우스(Athanasius)가 쓴 부활절 편지에서였고, 북아프리카의 히포(393), 칼타고회의(397)에서도 같은 목록이 제시되어 이 책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단의 출현이 정경 목록을 확증하고 집성하도록 자극을 준 것이다.

둘째, 신앙고백(서)의 제정에 영향을 주었다. 신조 혹은 신앙고백이란 개인이나 집단, 혹은 교회공동체가 그 믿는 바를 일정한 형식의 문서로 표현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문서는 그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교회가 외부적인 도전, 특히 그 믿는 바에 대한 공격을 받게 될 때 교회가 믿는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고백문서가 필요하게 된다. 그 첫 결실이 사도신경이었다. 

서방교회는 오랫동안 사도신경은 열 두 사도가 한마디씩 고백한 것이 모아져서 지금의 사도신경이 되었다고 믿어 왔으나 15세기의 문헌학자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 1406~1457)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증명됐다. 사도신경은 이단, 특히 영지주의 이단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부인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교회가 믿는 바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오늘의 신경으로 확정 된 것이다. 화란의 조직신학자 베르코프(H. Berkhof)는 사도신경 형성 과정을 설명하면서, 분명한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사도신경은 어떤 한 사람이나 공의회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2세기로부터 교회 지도자들과 교회 회의에서 가르쳐진 것이 수합되고 정리되어 5세기경에는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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