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생명신학은 죽어가는 한국교회 살릴 ‘생명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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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생명신학은 죽어가는 한국교회 살릴 ‘생명의 불씨’
  • 곽인섭 목사(서울백석대학교회담임, 백석대학교대학원 교목실장)
  • 승인 2022.08.23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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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풀어쓴 개혁주의생명신학 1. 개혁주의생명신학이란?

<개혁주의생명신학>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이라고 하니까, 신학교과목이나 학자들의 모임에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이 무엇일까요? 핵심만 설명하자면, <개혁주의신학>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불어 넣는 것입니다. 개혁주의신학은 역사상 가장 성경적인 신학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개혁주의신학입니다.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넓게 보면, 마틴 루터나 요한 칼빈 같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의 후예들이 개혁주의신학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간의 이성과 교회의 전통을 통해서 지나치게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보다는, 딱딱한 예식과 규정과 학문이 주인행세를 했습니다. 이 때,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경이 답이다”는 정신으로 교회를 새롭게 했던 사람들의 신학을 개혁주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혁주의신학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질되었습니다. 딱딱해져 갔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한국교회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개혁주의신학이 꽃을 피운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성경을 품고 일제의 압박을 견디어 냈습니다. 성경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전쟁과 가난을 통과했습니다. 이런 한국교회 가운데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을 여시고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서, 부유해지면서, 편해지면서, 교만해지면서 우리나라의 교회도 딱딱해져 갔습니다. 성경을 읽고, 믿고, 순종하면서, 고난과 설움 속에서도 눈물의 기도로 살아온 조국교회와 개혁주의신학이, 본래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말씀의 불이 사라져 갔고, 기도의 소리는 약해져만 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교회에 왔는데,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교회에 왔는데, 예수님이 없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볼 때,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백석학원과 백석총회의 설립자인 장종현 목사님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안타까움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개혁주의생명신학입니다. 성경적인 신학인 개혁주의신학, 그러나 딱딱해져가고, 변질되어 가는 개혁주의신학에, 예수님의 생명을 불어 넣자!, 조국교회 가운데 다시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자! 그래서 주께서 그 귀하신 피로 값주고 세우신 교회에 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자.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이 변하고, 예수님을 만나면 가정이 변하고, 나라가 변하는, 이 성경적이고, 당연한 일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하자는 것이 개혁주의생명신학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앞부분에 나오는 사데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성경적인 행위들이 있었지만,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장, 3장의 다른 교회들이 가진 교리적인 문제들, 즉 발람과 니골라당, 이세벨과 같은 표현들이 사데교회에 대한 말씀에는 안 나옵니다. 정통교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 있었습니다. 교리는 정통인데,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사데교회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정통적인데 죽어 있는 교회>.

오늘날 한국교회가 마치 사데교회와 같습니다. 살았다 하는 평판을 가지고 있지만, 교리적으로는 정통적이지만, 주님 보실 때는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생명신학>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그러면 이 사데교회를, 우리가 사랑하는 조국교회를 어떻게 살릴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오늘은 첫 번째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계 2: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일깨어, 즉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평안함의 잠에서 일어나라, 교만함의 잠에서 일어나라, 부유함 속에서 잠들어 있는 영혼아 일어나라, 여러 가지 종교적인 행위들 속에서 잠들어있는 영혼들아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어나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이 말씀이 은혜요, 소망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거의 죽게 되었지만, 아직은 죽지 않은 것, 그것을 견고하게 일으켜 세우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교회사의 거장이시고 백석대학교의 석좌교수님이셨던 민경배 박사님께 이렇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교수님, 한국교회가 이렇게 영적으로 약해져가는데, 만약 일제시대나 625처럼 신앙 때문에 순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 우리 앞에 생기면, 지금도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성도들이 있겠습니까?” 교수님께서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있다. 지금도 그런 성도들이 있을 거라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정말로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총과 칼 앞에서도 절대로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을 사람들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우리 속에도, 연약하고 부족한 저와 여러분 속에도, 남은 바 죽게 된 것이 있습니다. 거의 죽어 가는 것 같지만, 아직은 죽지 않은, 작은 생명의 불씨가 우리 속에도 남아 있어요. 이것을 굳건해야 합니다. 다시 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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