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은혜’로 달려온 60년… 한국을 넘어 세계 선교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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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로 달려온 60년… 한국을 넘어 세계 선교의 중심으로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2.08.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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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 베다니교회로 시작해 중곡동으로, 소외된 이들과 동행
“진짜 부흥은 하나님의 뜻 이루는 것… 섬김의 60주년 만들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한국중앙교회 담임 임석순 목사는 교회가 걸어온 60년의 역사를 이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어쩌면 진부할지 모르는 표현이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임 목사의 눈빛에 담긴 진심 때문이리라. 1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저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한 단어 한 단어 신중하게 골라 교회의 지나온 길을 되짚는 그의 이야기 곳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 역사의 순간들이 새겨져 있었다.

한국중앙이라는 당찬 이름이 말하듯 이제 한국중앙교회는 교단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발돋움하고 있다.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세계 선교의 중앙에 서기 위한 출발점이다. 지난 5일 임석순 목사를 만나 한국중앙교회의 지나온 60년과 다가올 60년을 그려봤다.

 

베다니에서 한국중앙까지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했다. 가난이 일상이었던 60년대라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외면받았던 곳이 한국중앙교회의 전신, 베다니교회가 세워진 금호동이었다. 음산한 공동묘지만이 마을의 상징이었고 거리마다 굶주린 이들이 배를 움켜쥐었다. 교회를 개척한 최복규 원로목사는 평탄한 목회 생활을 마다하고 가장 그리스도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리를 폈다.

원로목사님은 원래 개척에 뜻이 있진 않으셨습니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데 기도 중에 환상으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해요. 올라와 보니 너무나도 어려운 이들이 많았고 7명의 사람들이 모여 교회가 시작됐습니다. 교회의 시작부터가 인간의 기획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였던 거죠.”

교회와 함께 배우지 못한 이들을 위한 야학도 시작했다. 심령이 가난한 이들이 모인 교회에는 많은 은사가 나타났다. 주변의 시기도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만 바라봤던 목회자와 성도들에게는 작은 돌부리에 불과했다. 은혜로운 말씀과 순전한 헌신의 파도를 탄 교회는 나날이 부흥을 거듭했다. 성도들의 체험적 신앙은 교회의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손수 벽돌을 쌓아 7층 대성전을 세우게 했다.

지금의 한국중앙이라는 이름이 교회에 새겨진 것은 1979년 중곡동으로 터를 옮긴 이후부터다. 이후 부교역자로 교회에 왔던 임석순 목사는 처음엔 한국중앙이라는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성경에서 베다니는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이 가득했던 곳입니다. 베다니교회라는 이름엔 그런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교회의 확고한 가치가 담겨있다고 봤어요. 그에 반해 한국중앙이라는 이름은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습니다. 베다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한국중앙은 세상의 마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그런데 원로목사님께 여쭤보니 본인이 지은 이름이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성도들에게 어떤 이름이 좋을지 공모했고 입을 맞춘 듯 한국중앙교회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던 겁니다.”

그 이후로 임석순 목사도 교회에 내걸린 한국중앙교회 팻말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중앙이라는 이름처럼 복음의 중심, 선교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불리는 대로 살아간다고 했던가. 시야가 달라지자 지향점도 분명해졌다. 교회는 지역에서, 나라에서, 열방에서 선교의 중앙으로 차근차근 우직한 걷기 시작했다.

 

위기 통해 교회와 성도 단단해져

광진구를 대표하는 교회로 60년을 지키고 있는 한국중앙교회지만 중곡동 성전이 위태로운 적도 있었다. 교인 중 한 명이 선거에 출마하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교회를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버린 것이다. 교회의 도장과 서류를 몰래 도용해 아무도 모르게 벌인 일이었다.

하마터면 영문도 모른 채 교회를 잃을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건 산업은행 이사로 근무했던 교인 한 분이 서류를 처리하다가 우리 교회가 경매에 넘어온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였죠. 그분은 즉시 최복규 목사님께 사실을 알렸습니다. 원로목사님은 교회가 여기서 끝나는구나라는 생각까지 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위기는 오히려 교회를 한데 똘똘 뭉치게 했다. 어쩌면 교회의 존폐가 걸린 위기였지만 교인 누구도 담임목사를 원망하는 이가 없었다. 아무 잘못이 없었음에도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하나 된 마음으로 헌금을 모았다. 발 벗고 나선 교인들의 정성 덕택에 결국 경매에서 다시 교회를 낙찰받을 수 있었다.

성전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어서일까. 한국중앙교회는 예배드릴 장소가 절실했던 주변 교회들에게 아낌없이 공간을 내어줬다.

제가 9112월 한국중앙교회에 처음 왔을 때 신기한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세 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독특한 장면이었죠. 주변에 있는 동성교회, 성수교회가 동시에 건축을 시작해 예배당을 공유해줬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공유교회라는 개념도 있지만 당시는 낯선 일이에요. 그땐 네 교회 내 교회가 따로 없었고 옆 교회가 집회하면 도와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뛰어갔습니다.”

원로목사 및 위임목사 추대 예배에서 함께한 최복규 목사(왼쪽)과 임석순 목사.
원로목사 및 위임목사 추대 예배에서 함께한 최복규 목사(왼쪽)과 임석순 목사.

 

본이 되는 세대교체

아이러니하게도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문제가 커진다.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가 물러날 때가 되어 후계자를 찾아야 할 때의 얘기다. 교회를 개척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1대 담임목사의 임기가 끝나고 승계 과정에서 분쟁과 갈등을 겪는 사례를 한국교회에서 숱하게 목격해왔다. 후임 청빙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원로와 담임 사이 암암리에 알력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한국중앙교회에서는 공식의 풀이가 달라진다. 원로 최복규 목사는 교계의 존경을 받는 어른이자 교회를 개척한 1대 담임목사였지만 갈등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한국중앙교회의 최복규 목사와 임석순 목사는 바람직한 세대교체의 훌륭한 사례이자 청빙 이후에도 원로와 담임 사이 표본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끈을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묻자 임석순 목사는 또 한 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처음엔 최복규 목사님도 후임으로 저를 생각하지 않으셨고 저도 한국중앙교회 담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일산에서 교회를 개척해 교인도 700명이 넘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새벽기도에서 3번이나 한국중앙교회 담임으로 가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이었죠. 그것을 최 목사님께 말씀드렸고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하셨습니다. 사실 세상의 시선으로는 있을 수 없는 청빙 과정이었죠.”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이니 청빙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후임 교체 과정을 겪으며 최복규 목사와 임석순 목사, 그리고 교인 모두는 절로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후임을 위해 누구보다 뜨겁게 기도했던 성도들이었다. 갑작스런 청빙 과정을 두고 시기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모든 것을 이기게 하셨다.

제가 개척한 교회에 계속 있었다면 저는 제가 왕인 줄 알았을 겁니다. 또 학교에서 교수로 가르치다 보니 다른 목회자들이 형편없어 보이기도 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선 그것을 원치 않으셨어요. 이곳으로 보내셔서 하나님께 철저히 엎드려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고는 원로목사님이 훌륭하게 40년을 이끌어오신 목회를 이어갈 수가 없었어요.”

 

부흥의 중심에 설 60주년

60년의 세월 동안 한국중앙교회가 펼쳐온 사역들을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지역 복음화의 요람으로 전도에 힘쓴 것은 물론 미자립교회 자원봉사, 취약지 의료봉사, 위기가정 구제 봉사, 복지사업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섬겨왔다. 청년 선교의 핵심 전장인 군 선교부터 북한을 벗어나 이 땅을 찾은 새터민들을 복음 통일의 주역이 되도록 성장시키는 새터민 선교까지 한국중앙교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60주년을 준비하는 기간엔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찾았다. 금방 수그러들 거란 주변의 안일한 예측과는 달리 한국중앙교회는 초기부터 3년은 지속되리란 각오로 팬데믹 시대를 준비했다. 코로나 이후 약 2년 반에 달하는 시간 동안 매일 새벽과 저녁 2차례씩 유튜브로 예배를 중계했다. 목장 모임은 스마트폰과 줌(Zoom)을 활용해 말씀을 나눴다. 든든한 방파제를 쌓아둔 덕에 코로나의 파도도 큰 타격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코로나의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는 시기. ‘뉴노멀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교회가 60주년을 맞이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60주년을 맞아 여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교회, 비전센터를 짓자거나 리모델링을 하자는 얘기도 있었죠.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편안함과 외적인 치장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진정 교회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고민했어요. 그래서 이번 60주년엔 교단 원로목사님들을 모두 초청해 섬기고 광진구청, 이랜드와 연계해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백석총회 45주년 행사에서 선교사님들을 후원하는 일에도 재정을 쓰기로 했어요. 우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고 오직 섬김의 발자취만 남는 60주년 이었으면 합니다.”

한국중앙교회는 60주년을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회복을 넘어 부흥과 선교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이때 회복은 코로나 이전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동안 교회가 상실했던 복음의 본질,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의 회복이다.

우리가 꿈꾸는 부흥은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진짜 부흥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는 것,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가 기쁘게 무릎 꿇어지는 것입니다. 진짜 부흥이 일어나고 성도가 변화된다면 그 다음은 땅 끝으로 나가야 해요. 부흥의 결과는 반드시 선교로 이어지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진짜 부흥의 중심에 한국중앙교회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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