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이고 성공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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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이고 성공의 비결
  • 유선명 교수(백석대)
  • 승인 2022.08.1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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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곤경에 처한 동족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여러 차례 고뇌에 찬 탄식을 남겨 ‘눈물의 예언자’라는 호칭을 얻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렘 9:1) 자신의 머리 전부가 우물이 되고 눈은 온통 눈물샘이 되어 자기 백성들을 위해 밤낮없이 울고 싶다니, 백성의 죄악을 꾸짖고 권력자를 준엄하게 규탄하는 ‘투사형’ 예언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참된 예언자는 거룩한 분노와 절절한 애통을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입’이 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는 전령, 메신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우리에게 무겁고 아프더라도 가감 없이 전하는 이는 참된 예언자, 사람들 눈치를 살펴 좋아하는 말, 듣고 싶은 말만 골라 하는 자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의 시대 유다는 파국적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거듭되는 경고에도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백성, 묵을 대로 묵은 죄로 무너져가는 동족들에게 값싼 위로와 희망을 말하고 재담이나 던지는 ‘예언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예언한 자,’ ‘내가 보낸 적 없는 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임박한 재난을 알리는 예레미야의 호소를 비관주의라고 비난하며 희망의 예언자를 자처했던 하나냐같은 이들이 바로 대표적인 거짓 예언자들입니다(렘 28장).

그러나 예레미야의 눈에 눈물이 그치지 않은 것은 몇몇 직업적인 예언자들의 일탈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마다 행하는 거짓과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백성]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9:3~4) 진실 대신 거짓이 가득하고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3절), 알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6절).

유다 구성원들 중 몇 퍼센트가 악인이요 거짓말쟁이인지 따질 수는 없겠지만, 소수의 의인을 보아 유다를 구원하시겠다는 말씀마저 하지 않으실 정도로 ‘구제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유다에게 최후경고를 내리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7절) 예레미야의 눈물은 절대로 감정과잉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살 길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한 뒤, 뉘우쳐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렇게 할 ‘지혜’가 없었습니다.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12절)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지혜는 자신의 곤경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게 만드는 영적 깨달음이었는데, 그들은 인간적인 꾀와 힘을 믿고 자랑하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용맹, 재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삶입니다(23절). 세상에서 유능한 자가 되는 대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했더라면 그들의 미래가 있었을 것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4절)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참된 지혜이고 성공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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