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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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응답하라
  •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 승인 2022.07.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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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큰 관심사 중 하나는 '환경'입니다. 유튜브에서 기후 변화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 관련 기사를 유심히 읽어봅니다. 하지만 원래 저는 환경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태어나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내 노년기 때 오는 위기 정도야 눈 딱 감고 어찌어찌 보낼 수 있다만, 이 친구들은 그 때 한창인 청장년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제 아래 세대들에게 부채의식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후손들의 자원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었구나.'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생각은 보다 급박하게 바뀌었습니다.

'과연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가 내 노년기에 올까? 이대로라면 10년 내에 올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최근 지표들을 보면 그야말로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례로 2035년쯤에는 부산과 같은 항구도시의 상당부분이 물에 잠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예측합니다. 2035년을 전후로 달의 인력이 강해지는 주기가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기온이 상승하는 상태에서 그 시기를 맞는다면, 해수면이 아주 빠르게 높아질 거라는 이야기지요. 당장에 코로나와 대형 전쟁이 겹친 2022년은 기후 재앙 원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하게 됩니다.

지금 전세계 각지에서 가뭄과 폭염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 오고 있고, 그 와중에 식량 생산량에 큰 타격이 있어 식량과 사료의 주 재료인 밀 값이 폭등할 거라고 합니다. 기후 재앙에서 사람은 기후로 죽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로 줄어든 식량 생산량 때문에 사람들이 전쟁을 하며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지요. 제가 어렸을 때 과학책에서 봤던 이야기들이 뉴스로 하나 둘 들려오는 상황들입니다. 

이상의 뉴스들을 보고 있다보면 숨이 턱턱 막힙니다. 

'과연 희망은 있을까?'
더 나아가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낳지 말았어야 하나? 너무 험난한 시대에 아이를 태어나게 한 건 아닐까?' 
그래서 실제로 비출산 원인 중에 '환경 비출산'이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순수하게 '환경 문제' 때문에 출산을 포기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기후 위기에 대해 청년들은 크게 두려워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러한 염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걱정하지 마라. 그 분이 우리를 보호하신다.' 라는 말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물론 이 말에 대해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정말 인류가 어찌할 수 없는 정도의 수준까지 온다면, 하나님이 무언가 주권적인 개입을 하시거나 아니면 예수님의 재림이 오시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는 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환경을 함부로 대한 인류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앙과는 무관하게 환경을 함부로 대하는 교회의 모습에서 젊은 크리스챤 세대들은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환경 문제는 세대 갈등과 많이 이어지곤 합니다.

'윗 세대가 함부로 환경을 대했는데, 댓가를 치루는 건 왜 우리냐' 하는 젊은 세대들의 반발심이지요. 그런데, 사실 윗 세대도 억울합니다. 그들 중 환경 정책을 결정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젊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윗 세대도 역사의 흐름에 떠 밀려온 개인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부채의식은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윗 세대가 그동안 배출했던 환경적 폐해가 지금 기후 위기에 일조한 것도 맞으니까요.

때문에 교회는 마땅히 이러한 '부채의식'을 공유하며 환경 문제 해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로 기후 위기 변화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그 노력 자체가 '우리는 사회와 다음 세대를 위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교회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운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교회마다 사례는 다양합니다. 교회 내 카페에서 일회용 컵을 전면 금지 한다든가, 주보의 발행 부수외 횟수를 조절하거나 아예 없앤다거나,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모든 방법들은 소정의 '불편함'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불편함 또한 이웃 사랑의 발로임을 가르친다면, 아마 교회 구성원은 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 계명을 다시금 되새길 것이고, 사회는 그 모습을 보며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반가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는 각 지역 교회가 환경 문제에 응답해야 할 때 입니다.

차성진 목사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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