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년이 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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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년이 준 교훈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2.06.2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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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전 백석대학교 교수

오래 전 우리 교회의 해외 단기 선교 계획에 따라 14명이 팀을 이루어 두 주 동안 네팔로 선교활동을 하러 갔다. 수도인 카투만두의 한 학교에서 60명을 대상으로 찬양과 예배, 사영리 전도, 풍선 아트, 종이 접기, 영어와 컴퓨터 교육 등의 사역을 마치고 그 다음 사역지인 다란으로 옮겼다.

네팔은 힌두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있던 유일한 국가로서 인도와 함께 대표적인 힌두교 국가이었다. 2008년 6월부터 신헌법이 발효되어 국교를 폐지했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고 있으며 그 밖의 소수종교로는 불교가 있다. 이슬람교(4%), 기독교(1%)도 공존한다. 그런데 다란 시에 있는 엘로힘 교회는 규모가 상당히 컸고, 교인 수도 꽤 많았다. 용병제도로 영국을 다녀온 이곳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 되면서 교회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 교회에서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점심 식사 후, 주일학교 5, 6학년 아이들 30명을 대상으로 분야별 활동을 했다. 우리 조는 색종이로 연필꽂이를 만들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만드는 방법을 천천히 시범을 보여주며 그곳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완성하였다. 아이들은 완성된 작품을 내게 보여 주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성취감에 만족해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도 마냥 행복했다.

분야별 활동을 끝내고 미용팀이 활동하는 곳으로 갔다. 동네 어른들까지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미용팀장이 나에게 질서지킴이 역할을 부탁하여 손등에 순번을 써 주었다. 우리들은 더 부지런히 움직였으나 워낙 많이 모여들어 그들의 머리를 모두 깎아줄 수가 없었다. 해가 져 어둑어둑해지자 하나 밖에 없는 전등 밑에서는 작업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사람은 내일 깎아 주겠다고 약속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10살 정도의 남자 아이(옆에 가기도 꺼려질 정도로 불결했지만 그 눈동자만은 까만 산머루같이 빛났다)는 가지 않고 계속 졸라댔다. 야단을 쳐도 소용없었다. 해가 거의 져서 이용 기구를 정리하고 돌아서려는데 그 아이가 분무기를 가져가 자기 머리에다 마구 물을 뿌려댔다. 이미 자기가 시작을 했으니 깎아달라는 뜻이다. 천진난만한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아이도 계면쩍게 웃고 있었다. 그 아이의 간절함에 하는 수 없이 이용 기구를 다시 풀고 그 아이를 밝은 곳으로 데려가 머리를 깎아 주었다. 아주 밝은 표정으로 만면에 웃음 짓고 뛰어가는 그 아이. 세상에 있는 행복을 모두 다 가져가는 듯했다.

‘그래. 사람끼리도 간절히 바라는 바를 저렇게 강청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사랑의 하나님께 우리가 원하는 바를 간절히 부르짖으면 들어주실 수밖에 없으리라.’ 그 아이한테서 큰 교훈 하나를 얻었다. ‘강청함’이 갖는 큰 힘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해외 선교를 나갈 때마다 약간의 두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큰 은혜를 받고, 선교의 사명감을 더욱 갖게 된다. 그 뒤로도 우리 교회 선교팀은 네팔에 가서 훌륭한 선교활동을 펴고 왔다. 현지의 박 선교사님은 메일을 통해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군데군데에서 예쁘게 싹트고 자라는 중이라며 흐뭇해 하셨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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