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목회 하프타임, 끝까지 충성된 종으로 남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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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목회 하프타임, 끝까지 충성된 종으로 남고파”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06.23 0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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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사명선언문] 좋은교회 백낙천 목사

깨어진 가정 너머 목회로 부르신 하나님
환갑까지 일년에 10독, 성경 100독 목표

“작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신앙을 물려받았습니다. 일찍 부모님이 헤어지시고 외가 친지 손에 자랐어요. 불평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아픔이 희석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쓴뿌리’에 대한 히브리서 설교 말씀을 듣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요.”

좋은교회 백낙천 목사는 일반적인 가정환경이 아니었던 탓에 곁길로 빠질 위험이 컸다고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새벽예배까지 다녔던 그에게는 단단한 신앙이 있었다. 청소년기에는 기도해주는 목회자들마다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막연히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돈을 벌고 싶었다. 은행 취업에 도전한 그는 부모님의 이혼에 발목 잡혔다.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좌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백낙천 목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의 일부였다. 

좋은교회 백낙천 목사는 목회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면서 더욱 말씀을 붙잡고 목회의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각오다.
좋은교회 백낙천 목사는 목회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면서 더욱 말씀을 붙잡고 목회의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각오다.

인정하시고 세워주신 하나님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서울신탁은행 면접을 보면서 가정환경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했는데, 분명하게 그 이유 때문에 불합격했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욕을 듣고 따귀까지 맞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했다고 혼났는데 억울했습니다. 그 때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목회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백석대 학부와 신학대학원에서 7년 동안 성실하게 공부하고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부교역자에서 담임목회자로 걸어오는 동안 힘들다고 어렵다고 다른 길로 나가본 적이 없다. 신학부 동기였던 아내 김영 사모를 만나, 기도 가운데 결혼에 골인한 것도 은혜라고 그는 고백한다. 좋아한다는 그의 고백에 김영 사모는 매번 거절로 응답했다. 두 사람은 40일 동안 작정 기도를 해보기로 했고, 당시 백 목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내려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아내의 마음이 바뀐 겁니다. 로마서 14장 4절에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을 받고는 결단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 내세울 것 없던 저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세워주시는 기분이었습니다.”

백낙천 목사가 목회를 감당해오는 동안 김 영 사모와 이제 26살, 24살로 장성한 두 딸은 든든한 기도 후원자이자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태어나기도 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킬레스건과 같았던 아버지와 만나기도 했다. 15년 전 ‘아버지학교’ 교육을 받던 중 아버지에게 편지쓰기 시간이 난망했던 그는 기왕 아버지라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자식 키워봤자 아버지에게 간다는 말이 듣기 싫어 일부러 찾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동사무소를 갔는데 단 1분 만에 아버지가 찾아지는 겁니다. 너무 빨리 주소까지 확인돼서 놀랐습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죠. 어머니는 혼자 살며 저를 키우셨어요. 아버지는 재혼하시고 어렵게 살고 계셨는데, 다행히 신앙을 갖고 계셨습니다.”

끝까지 목회의 자리 지켜내면
백낙천 목사는 1998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전도사 시절부터 하면 11년 동안 부교역자로 사역하며 훈련을 받았다. 한 교회에서 3~4년씩 시무할 정도로 성실한 교역자였다. 그리고 2002년, 부목사직을 사임한 이후 단 일주일도 쉬지 않은 채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목사로서 보면 지금이 하프타임 같습니다. 사실 목회로 보면 내세울 것 없지만, 본질을 추구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자립 목회가 어려워 경제적으로 크게 곤란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목회 이외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목회에 대한 마음가짐은 흔들림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 때가 있었다. 자녀 입학을 위해 교복 한 벌 살 수 없을 때도 있었고, 전세보증금이 사라져버리는 위기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다른 일을 해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주객전도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목회에 더 몰두하려고 노력했다. 

“하나님께서 기적처럼 이끌어주시고 먹여주셨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가야 하는지 기도하며 물어보긴 했었죠. 하지만 하나님은 금방 아니라는 사인을 주셨습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백 목사는 위기가 닥치더라도 곁눈질하지 않고 목회의 자리를 지켜내면 하나님께서 지키신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경험했다. 지금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포기하지 말자고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목회 후반기, 더욱 말씀의 본질”
백낙천 목사가 개척한 이래 ‘좋은교회’는 절기헌금을 지역 사회와 교회 주변 주민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지금 섬기지 못하면 나중에도 못한다는 생각에서 선교와 구제를 위해 재정을 나누고 있다. 임대료를 내기 힘들 때도 있었는데, 오히려 10만원 봉투 10개를 만들어 ‘작은 돈이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의 메시지만 남긴 채 동네 작은 교회들을 찾아가 조용히 두고 오기도 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 제 모토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서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습니다. 충성된 종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제 목회 후반전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실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필요는 구하지만, 제 기도는 ‘하나님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있었는데도 요나를 들어 쓰신 것처럼, 자신을 세상으로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하다고 백 목사는 생각하고 있다.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금식하고 기도할 때 더 분명하게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을 그는 매번 경험하고 있다. 그가 묵묵히 버티며 목회의 본질을 좇으며 이 길을 걷는 이유다.

이제 50대 중반에 접어들며 목회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백 목사는 더 깊이 말씀을 전하고자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환갑이 될 때까지 100독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지난해에 이미 10독을 마치고 올해도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다. 

“말씀을 붙잡고 정면 돌파해서 목회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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