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사모는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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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사모는 싫어요!”
  • 임문혁 장로
  • 승인 2022.06.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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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혁 장로/서울 아현교회 원로장로·시인·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딸 바보인 나도 딸을 시집보내야 할 때가 가까워지자 눈에 띄는 청년들마다 사윗감으로 저울질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주위에서 은근히 내 딸을 마음에 두고 자기 아들 자랑을 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생겨났다. 겉으로는 기분 상하지 않게 딸 아이 핑계를 대면서 적당히 넘기지만 속으로는 재빨리 평가를 내리고 낙제점을 주곤 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렇게 저렇게 연을 대오는 신랑감 중에 장로 아들 또는 목사 아들이면서 목사 지망생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장로이고 딸 아이가 청년부 회장, 부회장을 도맡은 리더이며 성가대 솔리스트이다 보니 아는 목사님, 장로님, 목사 지망생들이 며느리 감, 사모 감으로 눈독을 들이지 않았겠는가. 그럴 때마다 딸애는 목사 사모가 될 생각이 없으며, 우리도 딸의 생각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무늬만 장로고 권사지, 제 자식 문제 앞에선 안 믿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닌 척하면서 교만이 가득하였다. 딸애는 제법 괜찮은 대학의 성악과를 졸업하였고 석사 학위를 가진 중등학교의 음악 교사였으니, 웬만한 가정 웬만한 청년은 눈에 차지도 않았던 것이다. 가문 따지고, 재산 따지고, 직업 따지고, 게다가 외모까지 따졌으니, 다른 신자들이 볼 때 저 사람들이 장로, 권사가 맞나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아이는 제법 좋은 조건의 여러 청년을 다 마다하고 가문도, 재산도, 학벌도, 직업도, 게다가 외모까지도 어느 것 하나 평균점 이상을 줄 수 없는 우리 교회 청년을 그것도 몇 살이나 나이가 어린 후배를 신랑감이라고, 결혼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마음 하나는 참 바르고 신앙심이 깊은 청년이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고, 나도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딸과 다른 교인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가 없어 속만 태우고 있었다. 지루한 전쟁이 계속되었고 언제 어떻게 끝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 아시지 않는가.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나는 예정된 백기를 들었고, 아내는 인정할 수 없는 패배에 주름살을 펴지 않았다.

결혼 이듬해에 하나님은 드디어 우리의 교만을 꺾는 매를 드셨다. 딸이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증세가 생겨 진찰한 결과 뇌에 종양이 생겨 크게 자랐다고 했다. 그 종양이 청각 신경을 눌러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당장 수술을 할 수가 없어 출산 후에야 열 시간 넘는 대수술을 하게 되었다. 종양이 암이 아니라서 생명은 건졌으나, 완전히 회복되어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리라던 기대는 몇 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워낙 큰 수술이라서 일부 뇌신경이 손상을 입었고, 종양이 위험한 곳에까지 파고들어 자라서 다 제거할 수가 없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몸의 균형을 잘 잡을 수가 없어 집 안에서의 간단한 보행 정도는 가능하나 정상적인 활발한 활동은 힘들게 되었다. 

더구나 그렇게 자랑하던 음대 출신의 소프라노 음은 고저장단에 맞춰 자연스럽게 낼 수가 없으니 성가대 찬양은 이제 더 이상 할 수도 없게 되었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다니던 사위는 사표를 내고 딸애의 수술과 입원에 병간호에 전념하였고 그렇게 백수가 되었다. 그 후 사위는 온 가족의 기도와 담임 목사님의 인도로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그렇게 목사 사모는 싫다고 거부했던 딸은 빙 돌아서 결국은 목사 사모가 되었고,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교만했던 우리 부부는 코가 납작해지고, 결혼을 반대했던 사위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가정은 아들 목사, 며느리 선교사, 사위 목사, 딸 사모, 우리 부부 장로 권사 가정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그런 우리 부부를 보고 칭찬하며 부러워한다. 세상에 하나님이 얼마나 장로님 권사님 가정을 사랑하시면 당신의 일꾼으로 들어 쓰시겠느냐고, 얼마나 복 받은 가정이냐고 말이다.

그래요 하나님! 목사 사모는 싫다고 한 말 취소할게요. 하나님, 하나님은 정말 못 말리는 분이십니다. 주님 뜻이 옳습니다. 순종하고 따르겠습니다. 부족하고 어리석은 종들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지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늘 함께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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