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티아고’ 12사도 순례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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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티아고’ 12사도 순례길을 가다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2.06.0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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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전 백석대학교 교수

재작년 4월, 따사로운 봄의 절정기에 ㅎ교수 부부와 전남 신안군 증도면에 있는 ‘12사도 순례자의 섬’을 찾았다. 목포 북항에서 하루를 숙박하고 그 이튿날 압해도 송공여객선터미널에서 기점·소악도행 여객선을 탔다. 약 1시간 정도 가니 대기점도 선착장이 보였다.

기점·소악도는 2018년에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본뜬 ‘섬티아고’로 다시 태어났다. 주민 대다수(80%)가 기독교인이고, 이웃에 있는 증도가 한국 기독교 최초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란 데에서 착안하여 순례길을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와 프랑스, 스페인의 건축·미술가 10여 명이 열두 제자를 모티프로 삼아, 한두 명의 순례자들이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게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 아담한 예술적 건축물이다. 울타리도 없고, 문이 늘 열려 있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까지 이어지는 순례자의 길은 총 12km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800Km)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거리지만, 각 예배당의 건축미를 감상하며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 만나는 집이 ‘건강의 집(베드로)’이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둥근 푸른 지붕의 이미지로 흰 회벽으로 거칠게 마감했다. 바다와 잘 어울리는 산뜻한 색감이다. 순례길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종이 있다. 우리는 이 종을 치면서 끝까지 무사하게 순례하며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했다. 순례의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길 주변엔 바다와 갯벌, 야트막한 언덕뿐이라 싸목싸목 걷다 보면 곳곳의 작은 둠벙도 만나고 갯벌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짱뚱어, 농게, 칠게 무리도 보인다. 길가에 곱게 핀 들풀도 수줍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어느 새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자연스럽게 순례자가 된다.

섬 사이에는 다리도 없다. 대신 ‘노둣길’이 있다. 섬사람이 오랜 세월 지게를 지고 돌을 날라 이은 길이다. 지금이야 시멘트로 포장되어 차량이 다니지만, 이마저도 밀물이 들어오면 무용지물이다. 하루 두 번 만조 때면 3시간가량 완전히 길이 사라져버린다. 이 노둣길을 따라 순례길이 이어진다.

대기점도에서 다섯 개의 예배당을 둘러보고 소기점도로 갔다. 아직 미완성인 ‘감사의 집(바르돌로메오)’을 지나 언덕을 배경으로 단정한 사각형의 흰색 집인 ‘인연의 집(토마스)’까지 순례하며 준비한 기도를 차례로 드렸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들렀다. 무공해 채소로 만든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가장 마음을 끈 곳은 소악도에 있는 ‘소원의 집(작은 야고보)’이었다. 프로방스풍의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고목재를 사용한 동양의 곡선과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지막 열두 번째 ‘지혜의 집(가롯 유다, 사진)’을 찾아 솔밭 사이로 난 모래밭 길을 따라 운치 있게 걸었다. 확 트인 바다 건너 작은 섬에 예쁜 벽돌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불행히도 물때가 맞지 않아 건너 가 볼 수 없어 매우 아쉬웠다. 멀리서 보니 오히려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몽생미셸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뾰족지붕과 붉은 벽돌, 둥근 첨탑이 눈길을 확 끌어당긴다. 진섬 옆에 딸린 무인도 ‘딴섬’에 있다. 예수를 배반한 제자라서 이런 외딴 섬에 배치했는가 보다.

가롯 유다는 예수를 배반한 사람이다. 그런데 작가가 이 예배당을 <지혜의 집>이라 한 이유가 궁금하다. 작가는 유다는 배신을 했지만 이후 잘못을 뉘우치는 제자라며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라 반성의 아이콘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한다. 비틀어져 있는 종탑을 보면서 뒤틀리고 꼬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일상으로 지혜롭게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혜의 집’이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여행객들은 쉽게 이해가 안 된다고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았다.

언젠가(2022년 3월) 신문을 보니 S 목사님은 시무하는 교회 내 100m 옹벽을 한 페이지짜리 성경의 벽으로 꾸밀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1753페이지의 성경을 훈민정음체로 새겨 넣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이 연상된다. 일본 안도 다다오의 ‘물의 교회’, 브라질의 거대한 ‘구세주 그리스도 상’과 같이 이 ‘섬티아고’ 12사도 순례길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리라 기대한다.

종교와 예술이 어우러진 순례자의 섬. 종교가 있든 없든 아무려면 어떤가? 교인들에게는 예배당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성당으로, 불자들은 작은 암자로 여기면 되리라. 복잡한 도시를 떠나 아직 때 묻지 않은 이 섬들을 찾아 기도와 묵상, 휴식을 통해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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