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주역에서 사역자로, “춤추는 이유는 찬양하기 위해”
2006년 ‘프뉴마발레단’ 창단, 세계 곳곳 다니며 발레로 복음전파
“히브리 문화에서는 인간을 육체 안에 갇힌 영혼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영혼과 육체가 서로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믿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육체가 우리 마음의 모습을 비춘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 예배할 때 특별히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있다면 몸으로도 표현하게 된다.”
영국의 예배사역자 마이크 필라바치 목사는 그의 저서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예배’(규장)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의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경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춤추며 찬양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와 예배는 엄숙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익숙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신의 거룩함과 위대함을 기리고 높이는 행위로서 ‘몸짓’을 사용해왔다.
지난 2006년 창단된 ‘프뉴마발레단’은 춤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인 무용가들에 의해 시작됐다. 국내 정상급 발레리노였던 프뉴마발레단 김형민 단장(성복중앙교회 안수집사)은 “우리가 춤을 추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도, 자기 자신을 위함도 아닌 오직 주님만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라는 신앙고백으로 ‘선교발레단’을 시작했다. 춤의 수많은 장르 중에서도 ‘발레’라는 분야에서는 특히나 더 흔치 않은 행보였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그의 마음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레 동작으로 승화되어 지금도 향기로운 제물로 드려지고 있다.
복음 전하는 ‘선교발레단’
“발레에서 가장 기본이 되면서 가장 어렵기도 한 ‘풀업(Pull-up)’이라는 동작이 있습니다. 중력을 거부하고 하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토슈즈를 신고 이 동작을 계속 유지해야 하죠. 저는 이 동작이 하나님을 향한, 그분께 온전히 드려지기 원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몸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발레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김형민 단장은 타고난 무용수이자 탁월한 예배자다. 그의 뛰어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은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에만 쓰인다. 발레리노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성과 보상을 모두 포기하고 사역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만이 그에게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여 년 전 그는 주변의 수많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립발레단을 나와 선교발레단에 입단했다.
국내 기독교 발레의 현황을 분석한 한 논문에서는 ‘전문 발레무용수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발레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선교발레’라고 정의했다.(이은형·이주희, 2017)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선교발레’라는 용어는 1980년 국내 최초의 선교발레단인 ‘조승미발레단’을 통해 등장했는데, 한양대 무용과 제자였던 김형민 단장도 고 조승미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학 시절 조승미 교수님의 전도로 처음 복음을 듣게 됐습니다. 성경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로 만든 ‘탕아’라는 작품의 주인공을 맡겨주셨는데, 그때 춤을 추면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춤을 추는 것 같았죠. 교수님께서 입버릇처럼 건네시던 ‘형민아 너는 성령의 춤을 추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은 지금도 저의 소명이 되고 있습니다.”
조승미발레단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한 김형민 단장은 조승미 교수의 소천 이후 2006년 5월 새로운 발레단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대학 후배였던 아내와 다른 한 명의 동료까지 셋이서 교회 지하실에 모여 창단 예배를 드렸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읽고선 ‘성령, 호흡, 창조, 바람’이라는 뜻이 담긴 헬라어를 붙여 ‘프뉴마(Pneuma)발레단’이라고 이름 지었다.
창단 초기엔 ‘발레단’을 초청했는데 세 명밖에 오지 않아서 당황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단원들이 늘어났다. 대부분 동문 위주로 모이게 되는 일반 발레단의 특성과 달리 다양한 배경을 가진 무용수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김 단장과 프뉴마발레단 단원들은 ‘발레라는 전문적인 달란트로 복음을 전파하는 초교파적 선교단체’를 표방하며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성령의 춤을 추고 있다.
만나와 메추라기
“어린 시절 유난히 말썽을 많이 피웠던 제게 어머니께서 발레를 해 볼 것을 권유하셨어요. 그때부터 제 꿈은 줄곧 국립발레단의 주인공이 되는 거였죠. 친구들이 남자가 발레를 한다고 심하게 놀려댔지만 꿈을 바라보며 견뎌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진짜로 이뤄진 거예요. 열심히 노력했고 칭찬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국립발레단에 입단하자마자 주역을 맡은 건 제가 처음이었고 관객들의 반응도 엄청났죠. 그런데 막상 꿈을 이루고 나니 이상했어요.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 느낀 건 기쁨이 아니라 공허함이었거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춤을 출 때만큼 기뻤던 순간이 없었다는 것을요.”
그 무렵의 김형민 단장은 발레리노로서 이룰 수 있는 정점에 이른 ‘엘리트’였다. 국립발레단 주역이라는 타이틀은 부와 명예,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줬으며, 한국무용협회 주관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군입대를 면제받을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선택한 길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예배와 복음전파 사역에 헌신한 선교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적은 사례비에 개인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부와 명예는커녕 사역지와 교회에서조차 ‘선교발레’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 단장은 단 한 번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왔던 지난 모든 순간이 은혜였음을 고백했다.
“국립발레단은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만두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표를 들고 지도위원, 선생님, 발레단장님, 극장장님까지 차례로 면담을 해야 했는데, 다들 너무 심하게 저를 말리셨거든요. 사역을 시작하고 가정을 이루고 난 후엔 더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가끔씩 대학이나 고교 시간강사 자리가 연결되기도 했는데, 언제든지 잘릴 수도 있는 ‘파리목숨’ 같았죠. 12월 초에 학기가 끝나면 다음 해 3월까지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고 학부모가 레슨을 중단하겠다고 하면 당장 아이 분윳값을 걱정해야 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주님께서 늘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처럼 말이죠.”
땅끝까지 가서
프뉴마발레단은 절기예배, 새신자초청예배 같은 교회집회나 행사에 초청을 받아서 공연예배를 드리거나 학교, 병원, 군부대, 교도소 등을 방문하는 사역을 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5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쳤고 극장을 빌려 공연 사역을 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인 ‘新비아 돌로로사’, ‘말썽꾸러기 바냐’, ‘구속’ 등의 레퍼토리는 김형민 단장과 아내 박미정 원장이 직접 제작·연출·안무를 맡았다. ‘복음전파’를 사명으로 하는 프뉴마발레단이 가장 집중하는 사역은 바로 선교. 홍대나 대학로에서 ‘무용 버스킹(거리공연)’을 하며 복음을 전하거나, 선교지의 초청을 받아 중국, 대만, 라오스, 필리핀, 인도, 요르단,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 수차례 해외 사역을 다녀왔다. 김 단장이 자신과 단원들을 ‘춤추는 선교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발레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몸짓만으로 주제와 줄거리를 전달하는 예술입니다. 그래서 특히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문화권 선교지에서 다양하게 쓰임 받을 수 있죠. 전 세계 어떤 곳에서도 발레 공연을 거부하거나 중단하는 사람들은 없거든요. 공연 사역을 통해 영적인 분위기가 바뀌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사랑 같은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정말 많이 목격했습니다.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촌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저희를 향해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고맙다’고 했던 건 평생 잊지 못하죠. 주님께서 부르시면 땅끝까지 가서 우리가 가진 모든 재능으로 복음을 선포할 겁니다.”
코로나19로 해외 사역은 물론이고 기존의 모든 사역들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지만, 김형민 단장과 단원들은 잠잠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께서는 프뉴마발레단을 새로운 사역으로 인도하셨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추진하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복지 사업인 ‘신나는 예술여행’ 공모에 당선돼 전국의 장애인 시설을 돌며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일상에서 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문화 소외 계층을 찾아가 우수한 공연과 전시를 펼치는 사업에서 유일한 발레 공연으로 프뉴마발레단의 작품이 선정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전국의 장애인 복지관 10곳을 다니며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프뉴마발레단은 우수한 사업평가를 받아 올해 12개 장애인 학교에 추가로 방문하게 됐다.
“‘신나는 예술여행’에 당선된 ‘말썽꾸러기 바냐’는 십자가와 구속에 대한 내용을 재미있는 우화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양 한 마리가 세상이 궁금해서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가 고양이의 유혹에 빠지고, 양을 구하러 갔던 목자가 결국 양을 대신해 죽는 이야기죠. 성경과 복음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뜨거운 반응을 불러 모으고 우수작품으로까지 선정돼 저희도 놀랐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러 간 것이니 당연히 매 공연마다 정말 열심히 했고, 그래서 사업 관계자나 평가단들도 높게 평가한 것 같아요.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춤추는 자로 불러주셨으니까, 내 몸 다 닳아질 때까지 주님을 위해 춤추다가 그렇게 주님을 만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