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석 군 사건’ 당사자인 대광고, 과감한 변화 ‘눈길’
학생들 ‘스스로’ 기독 정신 지켜나가도록 돕는 동산고
“큰 인물이 되려는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알아야 된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5년 8월 배제학당을 세우면서 성경적 교훈을 바탕으로 봉사하는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이같은 ‘학당훈’을 세웠다. 요즘 말하는 학교의 설립 정신인 셈이다. 배제학당을 시작으로 선교사들과 교회, 기독인들이 세운 미션스쿨들이 점차 많아졌다. 현재 한국기독교학교교육연맹에 회원으로 가입한 국내 기독 사립학교는 총 415개에 이른다.
많아진 학교 수와 반대로 기독 사학들이 설립 정신을 지키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교육제도와 고질적인 입시 과몰입 풍조는 거대한 파도처럼 기독사학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풍랑 속에서도 때로는 고고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기독사학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이들이 있다. 기독교연합신문 연중기획 ‘한국교회 미래를 품다’에서는 앞으로 4주간 기독사학의 분투기를 다룬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2004년 대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3학년 강의석 군은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당시 대광고등학교는 채플 규정을 두고 있었는데, 강 군은 학생들에게 학교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채플 폐지를 주장했다. 시위는 소송전으로 번졌고, 결국 대법원 판결에서 학교 측이 패소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기독사립학교들은 대전환을 맞이하게 됐다.
1947년 고 한경직 목사가 설립한 대광고등학교는 70여 년의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700명이 넘는 목회자와 100여 명의 교수,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배출해 낸 대표적인 기독사학으로 꼽힌다. ‘강의석 군 사건’ 이후 사립학교법이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홍역을 치러야 했다.
그런 대광고등학교가 지난 2011년 자율형사립고등학교로 전환하며 학교의 설립 정신을 지키기 위한 반전에 나섰다. 특히 당시 대광고가 자사고 전환 후 자신들의 ‘채플’을 개선하기 위해 외부 기관에 연구를 의뢰한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션스쿨로서, ‘강의석 사건’의 당사자로서 뼈를 깎는 심정의 발로였을지 모른다.
대광고는 당시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소장:박상진)에 제출한 연구 의뢰서에서 “기독교학교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채널 두 가지는 성경수업과 예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학교는 지금 이 두 가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성경 수업은 종교 과목으로 편성하되 복수로 편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예배는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하고 효율성면에서 청소년인 학생들에게 적합한가의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밖으로부터 제도적인 어려움이 커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내용 면에서 좀 더 갖추어진 준비된 기독교 학교의 신앙교육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며 “밖으로 제도적인 정비와 안으로 내용 면에서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이 프로젝트를 신청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때까지 대광고의 채플은 전통적인 개신교 교회의 예배 형식을 따랐다. 그런데 학생들의 신앙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플로 인해 거부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더 나아가 선교적 기회 및 신앙성숙의 기회 모두를 상실했다는 것이 대광고의 자체 평가였다.
신학교 교수들과 이미 비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채플을 진행하고 있는 대학교 교목들이 연구팀 참여했고,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를 통해 예배의 본질을 지킴과 동시에 비기독교인 학생들도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채플의 모델을 도출했다. 이듬해부터 즉각 시행에 나섰다. 강압적인 예배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해 교사들이 통제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예배 순서에서도 비기독교인들이 거부감을 가질만한 요소들을 배제했다. 설교 시간도 길지 않고,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줄였다. 미리 채플 홍보 포스터를 제작해 학교 곳곳에 부착했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이종철 부소장은 “연구진의 제안을 100% 구현해 내지는 못했지만, 심적으로 동의하며 실제로 상당 부분을 구현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고 회고하면서 “돌이켜보면 현장의 전문가 집단인 교목실에서 외부의 조언을 그렇게 받아들여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참 감사하다. 프로젝트의 성과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대광고 교목실이 이런 부분에서 유연한 자세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신 공”이라고 평가했다.
전통의 원동력 ‘자부심’
경기도 안산의 동산고등학교 역시 ‘자사고 전환’을 통해 기독 정신을 고수하고 있다. 대광고의 대응이 ‘과감한 변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동산고는 선배들로부터 이어진 ‘아름다운 전통’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이 학교 교목실장 임출호 목사는 “교목실에서는 학생들의 신앙생활을 지원해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월요일 저녁 6시 20분에 진행되는 ‘620 금식 기도회’와 금요일 아침 7시 30분에 열리는 ‘F730 기도회’, ‘매일 밤 10시 기도회’ 등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이어나가고 있는 일종의 ‘전통’이라는 것. 이밖에도 학생들이 반별로 학교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기도회를 하고, 이 자리에 졸업생 선배들이 참여해서 후배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코로나 기간 교목실 사역이 사실상 마비됐음에도 학생들의 신앙 유산이 굳건하게 이어진 비결이다.
‘입시 실적이 좋은 학교’로 잘 알려졌지만 정작 임 목사는 “학교 내부적으로는 올해 서울대에 몇 명 보냈는지에 관심도 없다”며 “우리 학교가 자사고로 전환한 이유도 예배를 고수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동산고에서는 거의 매일 ‘예배’ 혹은 기도회가 열린다. 매일 아침 8시 반에서 9시까지 반별로 학생들 주도로 학급 경건회가 진행되는데, 반마다 경건회의 방식이 제각각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포맷을 짠다. 수요일에만 담임교사가 경건회를 인도한다. 목요일에는 전교생이 함께하는 정기 채플이 진행된다.
임 목사는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갖는 자부심이 매우 높다”며 “여기에 믿음의 교사들과 교목실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