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풍수설화와 MQ(도덕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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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풍수설화와 MQ(도덕지수)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2.05.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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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 산성감리교회 장로·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나라 설화 가운데 특정 장소(명당)에 건물을 짓거나 무덤을 써서 발복하는 이야기가 많다. 이른바 풍수설화다. 한국인이라면 풍수설화 한 편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머슴 살던 총각이 명당에 부모를 모시고 나서 부자가 되거나 과거에 합격했다는 설화가 있는가 하면, 남의 묘를 훔쳐 쓰는 투장, 권세를 이용해 약자의 무덤을 빼앗는 늑장 이야기도 있다. 출가한 딸이 친정아버지가 쓰려는 묘에 물을 부어 못쓰게 하고 시아버지를 모시는 이야기도 흔한데, 이는 마치 라반의 둘째딸 라헬이 친정의 드라빔을 훔쳐서 남편 야곱의 집으로 가져오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왜 우리는 명당에 집착하는 걸까? 이른바 동기감응론 때문이다. 조상의 뼈에서 나오는 기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명당에 조상을 묻어야 그 뼈가 썩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되어, 그 성성한 기운이 후손에게 전해져 발복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나 지관을 찾아가 명당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묘만 잘 쓰면 금시발복할 수도 있고 3대가 정승이 나온다고 하니, 요즘의 로또처럼 거기 매달린 것이다.

풍수설화는 하도 많아, 이 설화만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여러 있다. 집을 짓는 것은 양택풍수라 하고, 무덤을 쓰는 것은 음택풍수라 하는데, 조선시대 재판에서 가장 많은 산송(山訟)은 음택풍수를 믿어 벌어진 것이다. 이른바 명당으로 남의 묘지에 몰래 조상의 유골을 묻었다가 발각되어, 누가 주인인지 밝혀 달라고 관에 진정하기 일쑤였다. 요즘에 화장으로 바뀌면서 음택풍수는 거의 소멸 직전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명당만 잘 골라서 무덤을 쓰면 누구나 대박이 나는 이야기일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분명히 명당에다 묻었으나 복은커녕 화가 임한 이야기도 있어 흥미롭다. 유명한 지관이 부유한 집 사람의 요청을 받아, 그 아버지 매장할 산소 자리를 잡아 주며 장담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잘못되어 있더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그 부친이 살인자였기 때문이다. 악인은 절대로 명당에 묻힐 자격이 없다는 민중의 가치 판단이 들어간 것이다. 객관적으로 명당의 조건을 갖춘 자리라도 악인이 들어가는 순간, 흉당으로 바뀌어 버려, 그 자손이 복 대신 화를 받는다는, 아니 받아야 한다는 인과응보율이 거기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거나 강조된 이야기 유형이다.

그런가 하면, 풍수가 악인의 청탁을 받아 누군가를 망하게 하려고 잡아 준 곳이 사실은 좋은 명당 터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선인이 들어가는 순간 흉당이 명당으로 바뀐다는 의식이 거기 드러나 있다. 땅보다 거기 들어가는 사람의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 유형이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닌 높은 수준의 윤리 감각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다. 오늘날로 말하면 MQ, 즉 도덕지수가 높은 게 우리나라다.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같은 한자문화권이면서도 중국과 일본에 비해 윤리적으로 더 엄격했다. 왕에 대한 칭호가 잘 보여준다. 왕이라도 윤리적으로 하자가 드러날 경우 폐위시켜 호칭을 바꿨다. 연산군, 광해군이 그 경우다. 효를 지상의 가치로 여기던 조선왕조의 정서로는 더 이상 왕으로 여기지 않아 폐위 당하고 만다. 폐위와 함께 ‘군’으로 격하되어 종묘에도 들지 못하였는바, 왕을 군으로 강등해 부르는 일은, 동서양 어느 나라에도 없는 조치다. 로마의 네로, 하나라의 걸, 주나라의 주가 모두 폭군이지만 ‘군’으로 격하해 부르지 않는다. 항상 황제다.

유럽에서는 정치인들을 평가할 때 정치적인 수완만 본다. “허리 아래 일은 묻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MQ를 요구한다. 마약, 병역, 성범죄, 도박, 표절 등의 문제가 드러나는 순간 끝이다.

우리나라에서 큰 뜻을 세상에 펼치고 싶다면, 이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하물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는 신자들은 윤리적으로 더 엄격해야 존경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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