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설교, 어려운가요?
상태바
청년 설교, 어려운가요?
  •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 승인 2022.05.16 2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성 세대는 젊은 세대를 상대하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지리적, 시대적 차이를 떠나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지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교육과 사회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 그들을 상대하는 일이 막막하고 두려워집니다. 몇몇 언론과 강연들은 이런 두려움을 자극하는 마케팅을 합니다.

마치 외계인이라도 대하는듯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와 완벽하게 다른 종류의 인간이며, 일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기에 본인들이 제공하는 자료를 통해서 저 독특한 세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로 인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간극은 실제보다 좀 더 과장되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경험을 하고 자란 두 세대 간에 차이점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겠지요. 그러나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감정과 정서들을 젊은 세대 또한 가지고 있고, 그런 보편적 상식에서 출발한다면 젊은 세대를 대하는 일이 그렇게까지 막막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런 점에서 청년 설교를 두려워하는 목회자분들에게 간단한 팁을 드리고자 합니다. 청년 세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듯, 청년 세대를 향해 설교를 하는 것을 두려워 하시는 목회자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빠르고 감각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문화 속에 살아가는 저 세대들에게 과연 설교가 통할까? 하는 두려움이지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청년들은 복음을 안 듣는다’며 이 모든 책임감을 세대 간의 갈등으로 돌려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청년들 또한 학창 시절 50분의 수업에 익숙해져 있고,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친구들은 기존 설교에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젊은 세대 또한 그들이 마주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넷플릭스와 틱톡 같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에 대한 기대가 기존 성도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설교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청년들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기보다 기존 성도들의 설교를 향한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다른 세대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해 줄 수 있는 요소는 분명 있습니다. 아주 사소하지만 설교의 전달력을 높여주는 팁. 그것은 바로 ‘스크린의 활용’입니다.

요즘처럼 눈이 즐거운 시대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화려한 영상과 디자인과 그림이 우리 주변을 늘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영상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개인이 만드는 영상에도 이제는 화려한 편집 기술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이런 청년들 앞에서 설교자만 바라 보게 한다는 것은 변함 없는 한 장면을 오래 보게 하는 것이니 청년들은 빨리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스크린의 활용입니다.

그런데 간혹 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그러므로 청년들에게 화려한 영상과 디자인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 때마다 놀라운 영상, 미디어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나치게 자극적인 미디어는 설교를 향한 집중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명확한 개연성이 없으면 혹은 미디어 이상의 전달력을 지니지 않으면 오히려 설교가 미디어에 잡아 먹힙니다. 그리고 ‘애매한 트렌드’는 오히려 촌스러울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하게 가도 괜찮습니다. 검은 배경에 간단한 단어 하나만 띄워도 족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한다고 해 봅시다. “(a) 사람들은 모두 사랑을 하고 싶어합니다. (b) 그렇지만 각자의 상처 때문에 그 사랑을 원하는 만큼 주고받지 못합니다”라고 했을 때, a자리에서는 ‘사랑’ b자리에서는 ‘상처’ 정도만 띄워줘도 충분합니다.

그러면 청중들은 기존의 ‘설교자’ 밖에 없었던 시야의 선택지에서 ‘설교자’와 ‘스크린’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지니게 됩니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두 앵글을 번갈아 선택할 수 있으니 시야의 지루함이 상당히 덜어지면서, 좀 더 설교를 오래 들을 수 있는 집중력이 생깁니다.

자유를 꿈꾸는,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청년들이 설교 청중의 자리에 나와서 앉았다는 것은, 이미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지나친 두려움으로 그들을 대하시지 말고, 지금도 충분하니, 그 상태에서 케익 위에 예쁜 체리 하나 얹는다는 생각으로 스크린 활용을 시도해보시면 어떨까요? 어쩌면 기존의 성도분들도 그 시도를 환영할지도 모릅니다.

차성진 목사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