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장애인에게 “출근길 복잡한데 왜 나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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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장애인에게 “출근길 복잡한데 왜 나왔냐”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2.04.27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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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워진 길, 장애인 이동권을 말하다(하)

아직도 먼 길이다. 비장애인에게는 1시간이면 갈 거리를 두 배 넘는 시간을 들여 가야 하니 물리적 거리도 멀고,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이 왜 필요한지 많은 이들이 공감해주지 못하니 마음의 거리 역시 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비장애인에겐 스쳐갈 토론 주제의 하나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게 이동권 확보는 매일의 일상에서 넘어야 할 산이다.

장애인 이동권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장애인들의 의견이다. 지난 13일 한국밀알선교단을 찾아 시각장애인 김윤정, 김은비 간사, 뇌병변장애인 이석희 간사, 지체장애인 조수정 간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주에 이어 이들의 머나먼 여정을 소개한다.

 

제도보다 더 아픈 시민의식

불편한 제도와 시설만이 장애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찌르는 것은 장애인을 대하는 성숙하지 못한 시선들이다. 곱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은 기본이요, 비속어까지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다. 조수정 간사도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아무런 잘못도 없이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노트북을 들고 지하철에 올라타는데도 왜 붐비는 시간에 휠체어로 타고 난리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에나 있지 왜 기어 나와서 복잡하게 하냐는 말도 서슴없이 합니다. 저도 출근을 하는 똑같은 직장인인데도 말이죠. 때로는 대꾸를 하기도하지만 매번 부딪치는 것도 지칩니다.”

시선에 대한 주제가 던져지자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쏟아졌다. 자리에 모인 장애인 누구도 상처입지 않은 이들은 없었다. 뇌병변 장애로 인해 계속해서 몸을 뒤척일 수밖에 없는 이석희 간사는 택시 기사가 귀에다 대고 가만히 잠자코 있으라고 위협한 적도 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이동을 위해 짚고 다니는 지팡이(케인)를 차버리고 도망가는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엔 귀를 의심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편견을 제외하더라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려도 양보해주는 이는 많지 않다. 지팡이를 놓친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도 극소수다. 우리보다 일찍 지하철이 개설된 유럽은 시설 또한 낙후된 곳이 많다. 하지만 조수정 간사는 시설이 훨씬 좋은 한국에서보다 유럽에 있을 때 오히려 불편함이 없었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해보이면 어디서든 달려오는 성숙한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부모의 마음을 죽어도 알 수 없다 했던가.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손쉬운 이동그 하나를 위해 장애인들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날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도 큰 이들의 불편과 설움에 말문이 막혔다. 조수정 간사는 한 번이라도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코로나에 걸려 격리하면서 어디도 가지 못할 때 답답하셨죠. 누가 됐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하면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런 답답함을 장애인들은 매일 마주하고 있어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확보해달라는 것은 우리만을 위한 요구가 아닙니다. 장애인이 되지 않는다 해도 노년이 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약자들의 요구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교회에서 쓰는 용어에도 '장애감수성'을 고려한 주의가 필요하다.(출처:한국밀알선교단)
교회에서 쓰는 용어에도 '장애감수성'을 고려한 주의가 필요하다.(출처:한국밀알선교단)

 

교회에서 필요한 장애 감수성

예수님은 요즘 말로 장애 감수성이 충만한 분이셨다. 늘 소외된 이들, 약자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은 장애인들의 친구가 되셨다.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셨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존재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셨다. 지금 장애인들이 교회에 바라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크리스천 장애인들의 마음에 쌓인 상처 중 몇몇의 출처는 다름 아닌 교회다.

이석희 간사는 휠체어를 타고 예배에 참석했는데 여자 성도 한 분이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제 머리에 손을 얹고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라고 기도를 했다. 교역자들이 당황해서 말리니 그제서야 중단했다면서 교회에서는 장애인을 보며 치유 받아야 할 대상이라거나 치유를 원해서 교회에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애인을 그저 장애인으로만 본다면 복지 지원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성 역시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다. 때로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배려가 너무 지나쳐 부담이 될 때도 있다. 한 사람의 예배자로 교회에 나온 이들에게 갓난아기 대하듯 떠다 먹여주려고만 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조병성 목사는 교회에서 교역자들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준비 중이다.

장애인 주일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장애인일까요? 아닙니다. 장애인 주일의 주인 역시 하나님이세요. 장애인 주일은 장애인도 다른 성도와 똑같은 예배자임을 격려하는 자리에요. 장애인 주일이라고 장애인들을 세워다 1년에 한 번 이벤트를 벌일 것이 아니라 똑같은 예배자로 존중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이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지원해주신다면 훌륭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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