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잡이는 미신인가
상태바
돌잡이는 미신인가
  • 최운식 장로
  • 승인 2022.04.20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운식 장로/서울장위감리교회 원로장로·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보관해 둔 서류를 찾느라고 책장 서랍들을 열어 보았다. 한 서랍에 사진들을 넣어둔 비닐 봉투가 있었다. 그 안에 손자의 돌 사진들이 있었다. 아기가 온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고, 돌잡이 사진도 있었다. 돌상 앞에 앉은 손자의 천진스러운 모습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때 문득 서울에 있는 신학대학에 가서 「한국의 전통문화」 강의를 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일생의례 중 출생의례에 관해 설명하였다. 출생의례 중 지금도 행해지는 것은 돌잡이이다. 돌상에 신성의 의미를 지닌 흰무리떡과 축귀(逐鬼)·축사(逐邪)의 의미를 지닌 수수팥단자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는다. 아기가 앉을 자리 앞의 돌상에 돈·쌀·실·공책·붓·연필·활·총 등을 놓는다. 요즈음에는 컴퓨터 마우스나 악기 등을 놓기도 한다. 그리고 아기가 맨 먼저 어떤 물건을 잡는가를 보고 아기의 장래를 점친다. 이를 ‘돌잡이[시주(試周), 시아(試兒), 시수(試晬)]라고 한다. 돈이나 쌀을 잡은 아이는 부자가 되고, 실을 잡은 아이는 수명이 길다고 한다. 붓이나 연필을 잡은 아이는 학자가 되고, 활이나 총을 잡은 아이는 장군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설명하자, 한 학생이 질문을 하였다. 그는 “돌잡이는 미신 아닌가요?”라고 물은 뒤에 이것은 없어져야 할 풍습이라고 하였다.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돌잡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다른 학생들은 ‘옛날부터 해 오는 우리의 문화’라고 하였다.

문화는 같은 언어,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지역에 살면서 이루어 놓은 유형 또는 무형의 것이다. 돌잡이는 한국인이 이 땅에 살면서 형성한 문화이다. 그러므로 밑바탕에 한국인의 의식이 깔려 있지만, 종교나 신앙심이 바탕이 된 것은 아니다.

부모나 조부모는 돌을 맞는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궁금하여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돌잡이로 아이의 장래를 점쳤을 것이다. ‘점치다’는 ‘앞일을 내다보아 미리 판단하다’의 뜻이지, 길흉과 화복을 판단하기 위하여 ‘점괘를 내어 보다’는 뜻은 아니다. 돌잡이의 장래 예측이 맞는다고 하는 것은 아기를 그 방향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붓이나 연필을 잡은 아기에게는 장차 학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권총을 잡은 아기에게는 장차 장군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그 방향으로 키운다. 그러면 아이는 어른들의 말을 유념하며 자랐고, 그에 맞춰 진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할 때 사범계대학 또는 사관학교에 진학한다. 그래서 교사나 교수 또는 군인 장교가 될 것이니 돌잡이가 맞았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점괘를 내어 보거나 신앙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삼아 하는 풍습일 뿐이다. 이런 설명에 많은 학생이 이해하고 공감하였다.

그 학기 강의가 끝난 뒤에 성적을 제출하기 위해 신학대학 교무처에 들렀다. 교무처 직원은 내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가 매우 좋았다고 하면서, 40여 명의 학생들이 써낸 강의평가서를 주었다. 강의평가서를 보니, 교무처 직원의 말대로 항목별 평가와 특기사항 모두 아주 좋은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딱 한 학생이 ‘돌잡이를 미신이 아니라고 하는 교수는 신학대학에 와서 강의할 자격이 없다’라고 하였다. 강의 시간에 질문을 하였던 그 학생일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돌잡이가 전통문화가 된 경위와 의미를 설명하였건만, 이 학생은 수긍하지 않았던 것이다.

돌잡이는 미신이니 없애야 할 풍습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있는 것은 신앙의 어른들이 잘못 가르친 결과라 생각한다. 어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헛된 것을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형성된 저급한 문화라고 생각하고, 청소년들이 이런 생각을 은연중에 갖도록 가르친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은 우리의 전통문화는 그 나름의 형성 배경이 있고, 그 안에 한국인의 의식이 스며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우상이나 미신으로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인으로 신앙을 바르게 지켜 나가되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종교와 문화를 혼동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