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 목회자들 성경 더 많이 읽어야”
상태바
“성경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 목회자들 성경 더 많이 읽어야”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2.04.14 13: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대담] ‘겸양의 스승’ 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

시편·잠언만 800독 이상… 평생 읽어도 태산의 티끌 불과
기도하지만 생활의 뒷받침 없고 대심판도 두려워 하지 않아
인민군 피해 산속에 숨었을 때 ‘공예배’ 소중함 절실히 느껴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할 수 없어, 그것이 부활신앙
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는 지금도 6~7시간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한다. 평생 성경 읽기에 매진한 그는 “태산의 타끌만큼 밖에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겸손히 고백했다. 우리 나이로 96세 고령인 그는 거동도 불편하고 백내장으로 시력도 약화됐지만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더 많이 읽으라는 권면도 잊지 않았다.
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는 지금도 6~7시간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한다. 평생 성경 읽기에 매진한 그는 “태산의 타끌만큼 밖에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겸손히 고백했다. 우리 나이로 96세 고령인 그는 거동도 불편하고 백내장으로 시력도 약화됐지만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더 많이 읽으라는 권면도 잊지 않았다.

1927년 평안남도 대동군 김제면에서 태어난 박희천 목사는 청년선교의 산실이자 수많은 목회자를 배출한 내수동교회 원로이다. 박희천 목사는 평양신학교와 숭실대학교를 거쳐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칼빈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975년부터 서울 내수동교회 담임으로 말씀을 전하며 1998년까지 23년 간 목회를 했고,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 28년간 교수로 봉직하면서 헬라어와 설교학, 성경해석학을 가르쳤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남서울교회 화종부 목사,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 서울백석대학교회 곽인섭 목사 등 내로라하는 내수동 출신 제자들은 지금도 박희천 목사의 목양정신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며 그를 ‘영적 스승’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2022년 부활주일을 앞두고 ‘겸양의 스승’으로 불리는 박희천 원로목사를 찾아갔다. 마포구 자택에서 만난 박 목사는 평생 읽어온 성경을 그날도 역시 읽고 있었다.
“성경이 태산이라면 나는 아직도 티끌만큼 밖에 알지 못한다”고 말한 노(老) 목사는 인터뷰 내내 “조금 건방진 말씀이지만…”이라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몸에 밴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친 96년, 그의 긴 인생을 담고 있었다. 

 

- 목사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부활신앙이 약화되고 천국에 대한 소망도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 건방진 말씀이지만은 한국교회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게 뭡니까? 십자가와 부활 아니에요? 성경에서 멀어지니까 자연히 십자가와 부활에서 멀어지는 거지요. 이런 말하면 욕을 먹겠지만 사실은 사실이에요. 성경과 자꾸 멀어져요. 

- 요새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설교를 하실 때 성경보다 세상 중심이라는 느낌을 받으시는 건가요?

거기에 대해 제가 조금 말하자면 설교라는 것이 뭡니까? 성경의 교훈을 전하는 것이 설교거든요. 제 아무리 유명한 웅변과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성경에서 어긋난 것은 하나의 강연과 연설이지 그건 설교가 아니거든요. 설교는 철학이나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설교라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성경의 내용을 전하는 건데 한국교회가 거기에서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 설교가 제대로 전달되면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겠지요? 그런데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타까운 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에요. 한국교회의 문제가 기도에 있습니다. 말하는 것이 기도인줄 아는데 기도는 생활과 하나가 돼야 하거든요. 우리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생활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에 기도하는 사람은 많은데 생활의 뒷받침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아요. 또 하나는 내세의 심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고 난 후에 심판이 있다는 걸 안다면 오늘 내 생활을 그렇게 함부로 살 수 없거든요. 내가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에 대해서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대심판 앞에 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우리가 함부로 살 수가 있겠습니까? 나부터 그렇지만 한국교회가 이런 것에 어두워진 것 같아요. 
 
-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믿음이 약화되는 현상은 코로나 이후에 더욱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평생에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인해서 예배가 중단되는 것을 처음 경험하셨을 텐데요. 어떠셨어요?

코로나 때문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그 경험이 있어요. 제가 이북에서 살던 때에 6.25전쟁이 났습니다. 그때 저는 젊었고 인민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8월 5일 경 피신을 했어요. 깊고 험한 산 속으로 들어가 석 달을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전도사 생활을 할 때입니다. 사역자였어요. 평신도가 아니었습니다. 목회를 하던 사람으로서 예배를 드릴 수 없으니까 산 속에서 날마다 하는 일이 두 가지였습니다. 오전에는 성경만 보고, 오후에는 영어공부를 했어요. 날마다 이 두 가지를 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12시까지 성경만 보았는데 제가 전도사임에도 불구하고 공예배 참석을 못하니까 신앙이 자꾸 가라앉습디다. 그때 공예배의 축복을 강하게 느꼈어요. 우리가 주일날 예배를 보는 것이 여기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공예배에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은 보통이 아닙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교회에 코로나로 예배가 중단되는 문제가 생기자 상당히 걱정했습니다. 공예배의 축복이 끊어지는 것이 제일 가슴 아팠어요. 아마 요즘 성도들은 공예배가 얼마나 귀한지 몰랐을 겁니다. 

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는 지금도 6~7시간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한다. 평생 성경 읽기에 매진한 그는 “태산의 타끌만큼 밖에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겸손히 고백했다. 우리 나이로 96세 고령인 그는 거동도 불편하고 백내장으로 시력도 약화됐지만 성경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성경을 더 많이 읽으라는 권면도 잊지 않았다.

- 목회하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내수동 출신 목사님들이 참 많으세요. 곳곳에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청년 목회 부흥의 비결이 있으신가요?

제가 그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특별한 계획이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서 저도 놀랐습니다. 아마 8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예요. 우리 부목사가 예배당 뒤에서 세어봤더니 30대 이하 성도들의 비율이 60%라고 했어요. 나도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왜 그런지 몰랐어요. 내가 그렇게 목회를 한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언젠가 청년 담당 목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늘날 내수동교회에 청년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목사님 설교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새신자가 오면 교적부를 적는데 어떻게 내수동교회에 오게 됐는가를 꼭 물었습니다. 청년들 답변이 ‘아무개 소개로 왔습니다’ 이렇게 적었어요. 내수동교회 청년들이 자기가 좋으니까 오라고 했겠지요. 한국교회가 청년선교 방법을 많이 고민하지만 역시 설교가 중요합니다. 그걸 기억하면 좋겠어요. 

- 내수동 출신 제자들이 전국적으로 크게 목회를 하고 계세요. 제자들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저는 행정에는 무지한 사람이에요. 사람을 키우고 이런 거를 전략적으로 못합니다. 우리 교회 출신 중에 화종부 목사라고 있어요. 화 목사가 그러더군요. “목사님이 하나하나 말했다면 우리의 머리가 참모 정도로 밖에는 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전권을 맡기니까 우리 머리가 커지고 스스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내가 부교역자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지시가 없었다는 뜻이에요. 방치해뒀는데 그게 도움이 된 거죠.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우리 부교역자들이 전국에서 이렇게 크게 일을 합니다. 그건 제가 기뻐요. 

- 목회에 역점을 두신 부분은 뭔가요?

그건 성경입니다. 제가 옛날에 최원초 목사님을 만났어요. 그 분은 제 평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참 귀한 분이에요. 최원초 목사님은 성경을 파고드는 분인데 요한계시록만 만독을 했어요. 1947년 5월 말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목회할 뜻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원초 목사님이 “자네가 앞으로 목회를 할 생각이라면 우선 성경을 많이 봐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회를 하려면 성경을 많이 봐야 된다는 걸 몰랐어요.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의 인격을 존중하는 뜻에서 1947년 5월부터 이날까지 75년 동안 그 말씀을 그대로 따라 지켜왔습니다. 아마 최 목사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덜렁덜렁 목회를 해왔겠지요. 최 목사님 말씀 덕분에 제가 조금 성경에 관심을 두고 제 목회도 성경만 파고들었습니다. 그 은혜를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오늘 한국교회에 최원초 목사님처럼 후배들에게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선배가 없어요. 이게 안타깝습니다. 

- 지금도 성경을 꾸준히 읽고 계시는데, 아직도 성경이 새롭게 느껴지시나요. 

제가 성경을 좀 읽었지요. 그런데 제 경험은 그겁니다. 성경을 하나의 태산에 비유한다면 태산의 2/3을 정복했다, 3/5을 정복했다 이런 게 아니고, 큰 태산 한 모퉁이 그저 까슬까슬 손으로 긁다만 정도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성경을 볼 때 ‘이놈아, 성경에 무식한 놈’ 이렇게 느낍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평생 읽었어도 성경을 아는 정도가 태산의 한 모퉁이를 긁은 정도 밖에는 안 된다는 것, 그게 제 솔직한 고백입니다.  

- 요즘은 얼마나 읽으세요?

나이도 있고 하니까 하루에 그저 구약 다섯 장, 신약 다섯 장, 그리고 시편과 잠언을 따로 읽습니다. 시편과 잠언은 진리가 깊어요. 성경의 역사적인 부분은 잘 기억하게 되지만 교훈적인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되더군요. 구약을 순서대로 읽다가는 평생 몇 번 못 읽겠다 싶어서 1950년도부터 시편은 하루 다섯 편씩 한 달에 한 번 읽고, 잠언은 하루 한 장씩 한 달에 한 번 읽습니다. 한 70년 째 그렇게 읽고 있죠. 계산해보니까 시편과 잠언만 한 800번 읽은 것 같네요. 그래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태산의 모퉁이만큼도 못 깨달아요. 그러니 성경을 함부로 말 할 수 없습니다. 

- 내수동교회 목회하실 때는 매일 11시간 이상 성경 읽고 공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7시간 이상 하신다고요?

제가 적는 게 있습니다. 아침에 책상에 앉은 시간이 몇시다. 점심 먹으러 갈 때까지 몇 시간 공부했다. 점심 먹고 와서 저녁 먹을 때까지, 또 잘 때까지 그걸 기록했어요. 은퇴하기 전까지는 순전히 책상에 앉아 있던 시간만 11시간 반이에요. 참 그땐 좋았지요. 뭐 다른 것도 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70세를 넘기니까 7시간 반으로 줄어듭디다. 그걸 알고 나서 울었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말이야…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보니 일흔이 넘으니 한 시간 더 자야 하고, 밥 먹는 시간도 길어지고 이래저래 4시간이 깎이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예닐곱 시간밖에 못합니다. 기계가 녹이 슨 걸 어떡합니까. 전도서 12장에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라는 말씀을 지금에야 실감합니다. 

- 평생 읽은 말씀이 다 소중하지만 특별히 좋아하시는 구절이 있으신가요?

시편 22편 24절입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이 말씀이 저한테는 참 고마워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고 부르짖을 때 들으셨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저 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하면 만나주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통령도 안 만나주는 나를 만나주시고 저의 곤고를 멸시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시니 난 이게 참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 목사님, 마지막으로 부활절을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땅의 고난이 많아도 부활 후에 받을 영광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부활의 신앙이 있다면 고난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도 부활의 신앙으로 희망을 가질 때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부활의 은혜로 그런 힘을 얻길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