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잃어버린 세상 향한 예수님 마음, 십자가 통해 전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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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잃어버린 세상 향한 예수님 마음, 십자가 통해 전해지길”
  • 이진형 기자
  • 승인 2022.04.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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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연구자’ 색동교회 송병구 목사

전 세계 십자가 수집해 우리나라 최초 ‘십자가 전시회’ 열어
“부활절 맞아 고난받는 사람들 위해 기도하는 것 잊지 않길”


지난 2005년, 우리나라 최초로 ‘십자가 전시회’가 열렸다. 한 감리교 목사가 수집한 세계 각국의 십자가 500여 점이 전시된 ‘세계의 십자가展’은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 연일 보도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독일 분단선 철조망으로 만든 십자가, 폴란드 소금광산의 암염으로 만든 십자가, 콜롬비아 커피농장 노동자들이 원두로 만든 십자가, 중국 내 탈북민이 만든 33송이 백합 십자가 등 다양한 십자가의 모양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그것을 믿는 이들의 신앙과 애환을 생생하게 전해줬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도 ‘십자가 연구자’ 송병구 목사(색동교회)의 십자가 사랑은 여전하다. 아니,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지난 6일 ‘십자가, 하나님의 너른 품’ 순회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경기도 부천 약대교회에서 송 목사를 만났다. 희끗한 머리칼과 이마의 주름이 중년에 접어든 그의 나이를 짐작케 했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37년 전 처음 목회를 시작했던 청춘으로 돌아가 쉴 새 없이 하고픈 말들을 쏟아냈다.
 

십자가 전시회에서 작품 설명 중인 송병구 목사. 첫 전시회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그의 십자가 사랑은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십자가 전시회에서 작품 설명 중인 송병구 목사. 첫 전시회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그의 십자가 사랑은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십자가의 세계
“첫 전시회 당시 정말 대단했습니다. 매스컴의 조명을 한 몸에 받고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도 소개될 정도였죠. 한 기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십자가 전시회가 ‘그림이 된다’고 하더군요. 한국교회 관련 사진 자료가 죄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손들고 통성기도하는 모습이나 으리으리한 건물을 자랑하는 것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건 사람들이 보기 원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녔어요. 철저한 종교적 상징인 십자가와 그 속의 이야기들을 오히려 더 반가워하는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죠. 그 이후로 책임감을 갖고 더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수집하고 연구했습니다.”

죽음과 고통, 저주와 수치의 표상이던 십자가는 오늘날 기독교의 상징이 됐다. 로마 시대 극악한 범죄자나 반역자에게만 가해지던 잔인한 사형틀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대속과 구원의 증거가 된 것이다. 기독교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십자가도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왔다. 열 십(十)자의 단순한 형태를 기본으로 시대와 지역마다 여러 모양의 십자가를 발견할 수 있으며, 민족과 문화에 따라 폭넓은 자유와 파격을 지니기도 한다. 그 소재도 나무, 소금, 석탄, 뿌리, 가죽, 뼈, 유리, 보석, 양초, 못 등 다채롭고 기발하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십자가들이 그것을 빚어낸 사람의 믿음과 기도, 재능과 영성,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같은 것들을 품고 있다는 사실. 송 목사는 십자가를 통해 세계의 교회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십자가는 단순한 장식이나 상징물이 아닙니다. 각양각색의 십자가를 통해 거기에 담긴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지요. 가톨릭의 십자가는 고난을 강조하는 반면 정교회는 영광의 십자가를 강조해요. 예로부터 귀한 목재인 흑단으로 십자가를 만든 탄자니아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십자가에 고스란히 담았고요. 제가 가장 아름다운 십자가로 손꼽는 건 바로 에티오피아 십자가입니다. 정말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만들거든요. 한국교회는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세계 교회를 보는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십자가 전시회를 꾸준히 여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죠. 십자가의 세계는 방대합니다.”
 

경기도 부천 약대교회에서 진행 중인 ‘십자가, 하나님의 너른 품’ 순회전시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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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목사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각양각색의 십자가를 통해 세계 교회를 널리 알리고 있다.

십자가의 삶
송병구 목사가 십자가 수집을 시작한 건 30여 년 전,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복흠-지겐 한인교회에 초청받아 가면서 십자가를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독일 기독교 천 년 문화를 통해 배움을 얻고자 함이었다. 낯선 땅을 밟은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한 마을의 성탄 장터에서 첫 십자가를 만났다. 누가복음 24장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빵을 떼고 있는 예수님이 새겨진 작은 십자가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누가복음 24장은 송 목사가 독일 한인교회에 취임하던 첫날 강단에서 전했던 설교의 본문이었다.

“처음 ‘엠마오 십자가’를 사고 나서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주며 자랑했어요.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독일어로 새겨져 있는 십자가였는데, 흔하디 흔한 입교식 기념품이었지만 천하를 가진 것처럼 기뻤죠. 제가 취임예배 때 전했던 설교 본문이 형상화된 십자가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다 그렇게 복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어요. 십자가 연구를 통해 배우고 깨달은 건 바로 ‘십자가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을 자랑하고, 십자가를 닮은 교회의 모습을 자랑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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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소금광산에서 광부들이 캔 암염으로 만든 십자가.

37년 전, 스물다섯 청년 송병구 목사는 처음 교회를 시작하면서 문수산에서 물푸레나무를 베어다가 직접 십자가를 만들었다. 반들반들하게 가공한 십자가 대신 울퉁불퉁한 십자가를 고른 일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단다. 거칠고 생채기가 나는 십자가는 2천 년 전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을 향해서 지고 가신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그의 삶도 마찬가지다. 송 목사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고난도 기꺼이 감당했다.

“감신대 학생 시절 독재정권 퇴진 시위로 구속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감옥에서 저를 두들겨 패던 형사가 ‘너 신학생이 이러면 되겠냐’는 말을 하더군요. 그 이후로 아무도 보지 않는 독방에 있으면서도 자세를 흐트러트릴 수 없었습니다. 그 감옥이 저를 진짜 목사로 만든 거죠. 십자가를 모으면서부터는 깊이 성찰하고 묵상하는 일이 많아져 ‘십자가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와 고난을 생각하며 매년 성탄 전후로 3일간 100km 정도를 혼자 걷는데, 벌써 15년째가 됐네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에만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십자가에 이르는 길은 천차만별입니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겁니다.”

1985년 문수산성교회를 시작하며 송병구 목사가 물푸레나무로 직접 만든 십자가.
1985년 문수산성교회를 시작하며 송병구 목사가 직접 만든 물푸레나무 십자가.

평화의 십자가
십자가 수집과 연구로 유명해지자 세계 곳곳에서 송 목사에게 십자가를 보내오는 일도 잦아졌다. 독일에서 마틴 뢰트거 목사가 아버지의 유품이라며 보내온 십자가도 그중 하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십자가였다. 뢰트거 목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년병으로 참전했던 아버지가 포로로 붙잡혔는데, 가슴에 지니고 있던 십자가를 본 소련 군인이 시베리아형에서 제외시켜준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외에도 송 목사의 손에 전해진 수많은 십자가들은 저마다의 놀라운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간증들 속에서 십자가를 통해 영원한 화해를 이루신 평화의 왕 예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십자가 연구자 송 목사가 목회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화해와 평화’라고 말하는 이유다.

“학생 때 가졌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정신을 37년째 목회를 통해 지켜오고 있습니다. 독일 체류 8년 중 6년을 재독한인교회협의회 통일위원장으로 일했고 1989년에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을 만들어 비전향장기수 등 양심수 지원 활동을 해왔어요.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 철조망으로 평화와 분단 극복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십자가를 만들기도 했죠. 그거 아시나요?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는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한반도는 휴전선을 중간에 그으면 영락없이 십자 모양이 되거든요. 우리는 그걸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시대를 위해, 민족을 위해 우는 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독일 동서 분단선을 가로지르던 철조망으로 제작한 십자가. 평화와 분단 극복을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독일 동서 분단선을 가로지르던 철조망으로 제작한 십자가. 평화와 분단 극복을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송 목사는 부활절을 맞이하는 한국교회 성도들을 향해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하려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뿐 아니라 고난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이야말로 십자가 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송 목사는 십자가 고난을 통과하고 마침내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하면서, 특별히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아르메니아 정교회 예배당에 가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고 아래에서 쭈그려 앉아있는 십가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키이우 교회를 보며 근심하는 모습을 표현한 거죠. 예루살렘을 향해 우셨던 예수님, 평화를 잃어버린 세상을 향해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같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에 휘말린 것은 굉장히 큰 비극입니다. 이들을 다시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 년 된 신앙밖에 없어요.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진정한 평화가 임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내 아르메이나 정교회 십자가. 예수님이 키이우 교회를 보며 근심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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