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생명신학을 자산으로 ‘다음교회세대’를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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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생명신학을 자산으로 ‘다음교회세대’를 세웁니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04.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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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사명선언문] 청주 서원교회 김태철 목사

1978년 총회신학교 입학, 20년 후 교회 개척
“예수님의 전인적 생명을 다음교회세대에게”
김태철 목사는 ‘다음교회세대’를 세우는 것을 남은 목회의 사명을 여기면서,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김태철 목사는 ‘다음교회세대’를 세우는 것을 남은 목회의 사명을 여기면서, ‘개혁주의생명신학’을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 어렵게 서울살이 하던 온 가족은 1970년대 성남으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다. 그곳에 겨우 터를 닦고 집을 짓다가 하필이면 담벼락이 교회 지붕을 덮쳐버렸다. 작은 사고였지만 김태철 목사(청주 서원교회)에게는 큰 은혜가 되었던 사건이다. 아버지와 사과하러 갔던 그 날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목회자로 부름 받은 곳도 그 교회였다. 전도사가 시무하던 당시 교회 담임은 증경총회장 계정남 목사였다. 계 목사가 세례를 주었고, 부흥회에서 크게 은혜 받은 그에게 신학공부를 적극 추천했다. 그는 1978년 19살 나이에 총회신학교 3기로 신학을 공부했다. 

‘100만불 수출탑’ 기업경영 물러나
“서울 금오동 살 때는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연탄을 30장씩 배달한다고 어른들이 놀랬어요. 너무 가난해서 아버지는 고등학교에 보내주지 않았고 기술훈련원을 다니고는 기계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계정남 목사님께서 저에게 ‘사명자의 길’을 말씀하셔서 순종했습니다.”
목회자로 결단하고는 신앙에는 더 불이 붙었다. 청년부를 일으켜 세우고, 시간만 나면 청년들과 방석을 들고 기도원을 찾아갔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신학교에 공부했지만 지칠 줄 몰랐다. 

하지만 목회자가 된 것은 한참 뒤였다. 강도사고시를 치르면서 노회 안에서 어려운 문제가 생겼고 목사안수를 받지 못했다. 이후 그는 친형과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회사가 날로 승승장구했다. 1989년에 ‘100만불 수출탑’까지 수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땀이 나고 심장이 터지는 것 같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 차 밖으로 떨어져버렸는데, 깨어보니 병원이었습니다. 40대 돌연사증후군 증상이 모두 제가 겪는 것이었어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있는데도 애써 모른 척 하다가 더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는 남편을 아내는 적극 찬성해주었다. 기도하고 준비 한 끝에 1997년 청주 모충동에서 처음 개척했고, 2년 후 지금 교회가 있는 사직동으로 옮겨 목회를 이어갔다. 개척 목회를 하면서 사례비를 받지 못할 때 아내가 기꺼이 직업 전선에 나서 벌이를 해주었다. 목회자가 오직 복음을 전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는 지지였다.

‘다음세대’보다 ‘다음교회세대’
김태철 목사는 ‘다음세대’라는 말 대신 ‘다음교회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다음세대를 키운다고 하는데, 엄밀히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위한 사람을 세우는 것이 목회이고 교회의 역할입니다. 내가 앉았던 교회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세대를 키워야 합니다. 목회 10년차를 지나면서 복음 안에서 새롭게 지도자를 키우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3년 동안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설교했어요.”

김태철 목사의 목회철학 영향으로 서원교회는 ‘다음교회세대’를 위한 특화된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역이 ‘조국 사랑 투어’ 프로젝트다. 청소년들이 조국을 사랑해야 하고, 조국을 알기 위해 매년 2차례 주요 도시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이다. 

“조국 사랑 투어를 하면 우리 아이들이 직접 그 지역에 가서 특산물도 구매하고, 각 지역 관공서와 명소를 찾아가 공부하고 흔적도 남기도록 하는 거죠. 그렇게 쌓은 경험을 주일에 교회에서 발표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시상도 많이 합니다. 졸지 않으면 총명상, 봉사하면 부지런상 같은 상들을 자주 만들고, 어른 성도들이 상을 준비합니다. 교회 절기도 가정과 어린이를 위해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기를 세워주기 때문인지 다음교회세대도 교회 안에서 주도적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꼼꼼하게 교회 방역을 책임지는 모습을 본 담당 공무원이 이런 교회라면 점검도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원교회는 학년 구분 없이 참여하고 있는 ‘라온제나’ 학생 찬양팀이 주일예배 찬양을 인도한다. 학생들이 어른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서 주요 순서를 맡으며 섬길 기회를 얻고 있다. “예수님의 전인적 생명을 다음교회세대에 전해주는 것”을 사명으로 두고 있는 교회답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성도의 삶 속에”
김태철 목사는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주제로 작성한 ‘개혁주의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 활성화 방안연구’ 논문으로 201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목사가 논문에서 제안한 핵심은 “총회가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주도해야 지역교회로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개혁주의생명신학만을 주제로 박사과정에서 제가 처음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논문에서 제안했던 내용이 지금 우리 총회 안에서 구현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쁩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적용할 수 있는 길을 더 연구해 실천하고 싶고, 각종 데이터를 모아 총회를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김 목사는 현재 목회 과정에서도 개혁주의생명신학을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실천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을 기초로 성경을 읽고 성도들이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설교하고 있고, 특히 매일 아침 개혁주의생명신학 관점에서 묵상한 말씀 내용을 성도들에게 공유하고 권하고 있다. 

“매일 5대 솔라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 성도들에게 흘러가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깊이 있게 성경을 보고 개혁주의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과 5대 솔라 관점에서 말씀을 연구하다 보면 3~4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매일 한편의 설교를 쓴다고 봐도 됩니다.”

김 목사는 젊은 시절부터 컴퓨터 기기와 프로그램을 익숙하게 다루었고, 지금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성도들을 위해 시청각 자료를 잘 활용해 개혁주의생명신학 관점에서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는 개혁주의생명신학 확산에 깊은 관심을 갖고, 현재 총회설립45주년기념사업 준비위원회에서 국제포럼 총무로 섬기고 있다. 

서원교회는 현재 난제를 하나 안고 있다. 교회가 재개발지역에 편입되어 있어서 교회의 기본 권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김 목사와 교회에 대한 지역 내 인심이 좋은 상황이지만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권리를 잘 지키면서 주민들과 화합해 잘 완성해가려고 합니다. 목회 기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늘 생각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음교회세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제 남은 사명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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