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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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 승인 2022.04.11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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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에서 4년차 직원이 29,000명의 임직원에게 메일을 발송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메일의 내용은 최근 지급한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직책이 높다는 이유로 왜 성과급을 많이 가져가는 것이냐’, ‘성과급을 산출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물은 것이죠.

기성세대들에겐 충격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와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자신의 불만을 쉽게 말해선 안된다’라는 두 가지 통념을 한 번에 박살 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젊은 세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주의’를 잘 보여주는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은 개인의 위치, 직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정이고 정의이다’는 외침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는 합리적입니다.

실제로 역사 가운데 정의를 향한 노력들은 ‘능력주의’에 초점을 맞춘 경우들이 많습니다. 고려 시대에 등장한 ‘과거 제도’도 그 예 중 하나입니다. ‘골품제’, ‘음서 제도’와 같이 날 때부터 주어진 요소들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을 기준으로 뽑는 과거 제도는 정의를 향한 사회의 노력 중 하나라 볼 수 있을 겁니다.

현대에 있는 보편적 복지나 상속세 또한 그 취지가 능력주의를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개개인이 타고난 요소에 영향을 받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능력주의를 절대시했을 때 생기는 사회적 문제도 있습니다. 그것은 ‘능력 있는 자’를 지나치게 추앙하고 ‘능력 없는 자’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이지요.

‘지잡대’라는 용어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지방에 있는 잡 대학교’의 줄임말인 지잡대는 “학창시절 좋지 않은 성적을 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인격, 노력이 폄하되어도 할 말 없다”는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그 외에도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지역 계급론(부동산 공시지가에 따라 지역의 급을 나누는 것)’과 같은 여러 계급론들은 “능력으로 구성된 계급 구조는 정당하다”는 가치관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을 위시해서 능력주의를 절대적 공정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타인보다 좋은 결과물을 냈을 때 그 보상을 독식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하는 질문이지요. 어떤 개인의 성과에는 결코 개인의 노력만 관여할 순 없습니다. 그 사람의 타고난 성향, 재능, 어린 시절의 환경, 사회적 기반 등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능력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성공 안에는 타인의 손길 또한 스며들어 있기에 이것을 기억하며 반드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죠.

때문에 젊은 세대가 외치는 ‘능력주의’에 대해선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들의 능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 앞에선 당연히 능력주의를 지지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공감해야겠지만, 승자 독식주의나, 패자들의 절대적 굴종을 요구하는 능력주의에 대해선

경계의 목소리와 함께 그들이 누렸던 사회적 환경을 강조하며 겸손한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기도하지 않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해도 마땅해’와 같은 신앙 능력주의를 볼 때도 있습니다. 물론 스스로의 신앙을 독려하기 위해 이런 가치관이 동원될 때는 문제가 없겠으나 타인을 정죄하고 구분 짓기 위한 목소리라면 반드시 경계해야겠지요. 어느 성도의 삶을 현재, 교회에서의 모습만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그 사람의 삶의 맥락과 입체적인 모습을 보고 포용적 태도를 지니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성진 목사
차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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