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언제나 자유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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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언제나 자유로울까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2.03.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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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가족같이 지내던 같은 구역의 K 집사가 심장 계통 병으로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넉넉한 인품에 반듯한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으로 교우들의 찬사를 많이 받으신 분이다. 슬픔을 유족과 같이 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충만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목회실에 전화를 걸어 문상예배 때 기도는 내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때 우리 교회에서는 흔히 친교봉사위원회 위원장 장로가 기도를 맡아 하는데 내가 자원한 것이다. 그런 믿음과 용기가 어떻게 나왔는지 스스로 대견한 생각까지 들었다. 늘 기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나이었기에….

몇 해 전 일이다. 교우인 S집사가 부친상을 당해 교우들과 함께 빈소가 마련된 당진으로 문상 예배를 드리러 갔다. 목사님이 분명히 장로인 나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실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가는 길 차 안에서 기도의 내용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망자가 신앙인이 아닌 경우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 천안에서 당진까지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기도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이런 고민 저런 걱정하다보니 어느새 그곳에 도착했다. 모두 예배를 하러 대청에 오를 때 나는 슬그머니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용변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면하기 위해 목사님이 기도할 사람을 지명한 뒤에 들어가려는 잔꾀였다.

찬송가 한 곡이 거의 끝날 때 쯤 대청으로 갔더니, 목사님이 나를 보시고 반가운 눈길을 보내며 말씀하셨다. “찬송가 3,4절을 다시 부른 후 김기창 장로님이 우리를 대표하여 기도를 해주시겠습니다.” 어려운 순간이 닥쳤다. 돌아가신 분의 사정을 알 수 없으니, 그에 대한 기도는 하기 어려워 유족들에게 위로와 평강을 주십사 하는 내용으로 겨우 기도를 마쳤다.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기도를 하고나니, 땀으로 온 몸을 흠뻑 적시게 되었다. ‘그래. 기도는 항시 준비되어 있어야 해. 더구나 장로가 되어 가지고.’

이런 일도 있었다. 매주 화요일에 드리는 교직원 예배 시간에 대표기도를 하게 되었다. 한 주간 동안 준비한 기도의 내용을 잘 정리하여 기도문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했다. 기도 순서가 되어 단상에 올라 기도를 시작했다. 또박또박 잘 읽어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기도 도중에 기도문을 손끝으로 잘못 건드려 기도문이 단 아래로 떨어졌다. 순간 크게 당황했다. 앞이 하얗다.

그래서 급한 대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이거 큰일 났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의도적으로 더 차분한 마음으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기도를 이어나갔다. 자연히 어눌하고 중언부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배에 참석한 교직원들의 “아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흘러 나왔다. 기도문을 읽어나가는 기도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한 기도가 오히려 은혜를 끼쳤나보다. 예배 후 영성이 충만한 기도였다는 찬사도 받았다. 다행스럽게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문득 몇 해 전 하늘나라에 가신 H권사님이 떠오른다. 그분은 우리 교회에서 ‘기도의 어머니’로 불렸다. 기도가 일상이신 권사님은 머리를 앞뒤로 적당히 흔들며 그저 간절함으로 기도를 하신다. 미사여구와는 거리가 멀고, 그리 유창하지도 않다. ‘감사’가 기도의 주종을 이룬다. 나같이 욕심을 나열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더 많다. 그 분은 기도의 심연 속으로 우리를 몰고 가서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일상으로 다시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 분의 기도는 삶과 신앙을 나눌 수 없는, 뿌리 깊은 신심이 바탕이 되어 자연스럽게 나오는 기도이다. 그 권사님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평생 복된 삶을 누리셨다.

기도에는 교과서가 따로 없다. 권사님은 기도가 믿음의 소산물임을 일깨워 주셨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다. 기도의 기둥 없이 튼튼한 신앙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도는 부모와 자녀가 대화하듯 진실한 마음으로,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면 될 일이다. 이렇게 알면서도 잘 못하는 것은 기도가 믿음의 산물이라는 것을 잊고, 외식(外飾)으로 잘 하려고 하기 때문일 게다. 언제나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라는 월포드의 고백이 내 입에서 터져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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