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순간 ‘여성 혐오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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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순간 ‘여성 혐오자’가 되어 있었다
  • 차성진 목사(글쓰기 강사)
  • 승인 2022.03.28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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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인터넷에 지금 아빠 사진이 돌아다니는데 알고 계셨어요?”

“무슨 소리야?”

“여기 보세요.”

월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아들이 나를 다급히 불렀다.

아들이 가리킨 모니터를 바라보니

‘우리 동네 한남 목사’라는 타이틀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 내 사진과 이름, 교회 주소, 전화 번호까지 적혀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한남 목사라니?”

“아... 이게 그러니까 한남이 한국 남자를 줄인 말인데요

보통은 나쁜 뜻으로 쓰이는 말이에요.”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아빠가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했다고 하네요.”

“내가?”

“이 부분인데요...”

아들이 내 사진 밑에 있던 동영상을 클릭했다.

그 동영상은 이번 주에 한 주일 설교 영상이었다.

“지난 주에 우리 교회에 왔던 나리 자매도 얼마나 귀한지요.

얼굴도 예쁘고, 얼마나 건실한 청년이던지요.”

이게 끝이었다.

“아니, 이게 왜?”

“그러니까 아빠, 이게요...”

아들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회 전화와 내 핸드폰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 설교에 대해서 항의하는 내용의 전화였다. 하나를 끊으면 또 하나가 울리고 그 하나를 끊으면 또다른 하나가 울렸다.

전화하는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격앙되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일방적으로 욕만 한 사발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기자라는 사람들에게서 취재 전화까지 오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나는 감당못할 스트레스에 죽을 지경이었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허구이지만 충분히 벌어질 수 있을 만한 일입니다.

청년들과 그들의 문화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이 청년 세대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흔히 할 수 있는 실수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세대든지 각자의 고충과 어려움은 있겠습니다만 요즘의 세대들은 그 어려움과 고충을 인터넷상에서 활발히 공유하다보니 이 세대들에게 두루 인정되고 있는 몇 가지 ‘역린’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역린을 건드렸다간 인터넷상에서 그들의 방식대로 단죄를 하기도 하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혹은 기성세대가 민감하지 않은 이슈가 젊은 세대 가운데 대두되면서 기성 세대가 일반적으로 알기 힘든 역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서두의 에피소드에 등장한 ‘외모 칭찬’입니다.

당황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아니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칭찬하는 건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거지? 일부 청년 세대들은 ‘예쁘다, 아름답다’와 같이 외모를 칭찬하는 것을 얼평(얼굴 평가)이라고 칭합니다. 아무리 좋은 평가라 하더라도, 어쨌든 그것은 내 외모를 평가하는 일이며,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자신을 던져놓았다고 이들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통 여성들이 이런 외모 지상주의에 피해를 받다보니 이런 평가를 하는 사람들 모두 여성이 받는 피해에 대한 가해자라는 주장이지요. 물론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젊은 세대들도 있습니다만 동의하는 비율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이 주장의 합리성 여부를 떠나서 청년들을 상대할 때는 이 부분을 꼭 주의해야 합니다.

기성세대분들이 느낄 당황스러움이 상상됩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단어에 대한 상식을 통째로 바꿔야 하니까요. 때론 저 역시 그 흐름에 따라가기가 어렵지만, 어쩌겠습니까. 상처 입은 강아지는 조심스럽게 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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