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60대 모델 '숱기없는 형'이 밝히는 "멋지게 늙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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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60대 모델 '숱기없는 형'이 밝히는 "멋지게 늙는 비결"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2.03.15 0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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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에 모델 데뷔한 정병선 목사를 만나다
“은퇴는 전환점…당신은 여전히 ‘주인공’입니다”
시니어모델로 활동 중인 정병선 목사. 정 목사는 SNS에서 #시니어모델 #작가 #독서광모델  #숱기없는형 등의 해시태그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시니어모델로 활동 중인 정병선 목사. 정 목사는 SNS에서 #시니어모델 #작가 #독서광모델 #숱기없는형 등의 해시태그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소통의 창구로 선택한 ‘모델’, 젊은이들로부터 환호받아

은퇴 앞둔 시니어들에 ‘창조적 발상’, ‘근본적 성찰’ 권유

역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60대에 은퇴한다고 해도 30년 넘는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집 안에서 TV만 보며 살아가기엔 너무나 까마득한 시간이다. 목표도 소임도 없는 삶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시니어들에게는 이것이 이미 현실이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물로 받은 인생을 어떤 의미로 살아갈 것인지 진지한 고민과 창조적 발상이 필요하다.

올해 65세인 정병선 목사(말씀샘교회)는 어쩌면 ‘창조적 발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정 목사는 2년 전 유명한 시니어 모델 김칠두 씨의 인터뷰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마침 신체 조건이 나쁘지 않았기에 용기를 냈다. 가족들과 상의 후 압구정에 있는 모델 아카데미로 향했다.

“평생 정신노동만 해온 데 대한 반성이랄까요. 한계랄까요. 막연하게 육체노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기사를 보니 시니어 모델이라는 세계가 있더군요. 모델이라는 일이 몸을 쓰고,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한 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칠두 씨를 배출한 아카데미를 찾아 문을 두드렸다. 시니어 모델 열기가 막 일어나던 때라 많은 이들이 은퇴 후를 고민하며 이곳을 찾고 있었다. 처음 겪는 경계 너머 사람들과 만남이었다. 낯설었지만 새롭고 ‘괜찮았’다.

“스무 살 때부터 교회 밖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만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졌고, 목회자 그룹의 사람들과만 어울렸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자녀들이 ‘아빠는 왜 다른 옆집 아저씨들이랑 안 어울려’ 할 정도로 삶의 영역이 철저하게 교회 중심적이었죠. 시니어 모델을 꿈꾸는 다른 이들과의 만남은 분명히 저에게 긍정적인 해석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모델이 되다

처음 해보는 모델 수업은 흥미진진했다. 60년 넘게 지켜온 걸음걸이를 모델 워킹으로 바꾸는 바꾸는 일부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일, 모든 것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런 자리에 와 있다는 자체가 재밌었다. 총 3단계 중 첫 번째 2개월 코스를 마치자 무대에 설 기회도 마련됐다. 그런데 막상 무대를 선 후에 회의감이 찾아왔다.

“무대 자체는 좋았지만, 근본적으로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끊임없이 진실을 추구해왔는데, 그런 제가 감당하기엔 쇼는 지나치게 화려했고, 과대 포장돼 있었죠. 더군다나 모델이라는 일 자체가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일이고, 소비를 조장하는 일인데, 그건 저의 기존의 세계관과는 전혀 멀었습니다.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면서 미련 없이 그만뒀습니다.”

관둔 지 2개월쯤 지났을까. 아카데미에서 연락이 왔다. SBS에서 드라마를 찍는데, 출연해보지 않겠냐는 것. 승낙할지 말지 고민하는데 아내는 ‘경험 삼아 가 보라’며 출연을 권했다. 사흘간 찍고 출연료도 받았다.

“아카데미 소개를 받아서 갔는데, 호의를 받고 모른 척할 수 없기에 다시 등록했습니다. 결국, 마지막 단계까지 다 이수를 했죠. 모델 활동 자체는 즐거웠지만, 이 과정이 다 끝난 후에도, 근본적인 세계관의 충돌은 여전했습니다. 또 한 번 선을 그었죠.”

발을 들인 것은 자유였지만 이미 시작된 흐름은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과정 이수 직전에 참가했던 모델대회에서 TOP10에 들었던 터라 계속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연락이 닿았다. 그중 ‘더뉴그레이’라는 캠페인이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아빠’들을 멋지게 꾸며주고 패션을 통해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메이크 오버’ 캠페인이었다.

“패션을 통해 노인들, 아저씨들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이었는데, 캠페인을 이끄는 젊은 친구의 생각이 참 건강하더라고요. 그 친구를 중심으로 11명의 ‘아저씨즈’라는 그룹이 결성됐고 저도 일원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캠페인의 하나로 정 목사의 SNS(https://www.instagram.com/baldguyk56/)가 개설됐고, 이를 본 패션 회사에서 섭외 요청이 이어졌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를 비롯해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 등 다양한 광고에 출연하게 됐다.

 

정 목사가 참여한 자동차 광고.
정 목사가 참여한 자동차 광고.

 

모델 자체가 목표는 아냐

정 목사는 지금도 ‘엉거주춤한 상태’라고 했다. ‘아저씨즈’ 활동도 한 번 하차했다가 지난해 재합류했다.

“제가 독하지 못한 건지, 약간의 미련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목표가 모델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모델활동은 그야말로 제가 사회와 세상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창구이자 수단입니다. 모델이라는 창구로 세상과 더 소통할 기회가 열린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정 목사의 바람처럼 모델 활동은 그와 세계, 특히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있다. 세대와 국경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정 목사의 SNS에 관심을 보인다. 찬사를 보내는 댓글이 줄을 잇고, 그의 이야기를 주목한다.

“그러고 보면 오래전 목회자가 되기로 했던 것도 ‘진리’라는 거대담론을 풀어내고 싶어서였어요. 교대를 나와서 의무 복무로 5년간 아이들을 가르쳤었죠. 그런데 아이들과는 더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청년, 성인들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진리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교사를 관두고 신대원에 들어갔고, 그길로 목회자가 됐습니다.”

정 목사는 경기도 수원에서 교회를 개척해 16년간 이끌었다. 그러다 간경화가 왔고, 교회를 사임한 뒤 7년간 꼼짝없이 투병 생활을 했다. 간이 굳으면서 혈액이 흐르지 못하고, 목 혈관이 터지는 일들이 반복됐다. 죽음에 대한 공포, 입원에 대한 공포가 늘 그를 엄습하는 가운데 첫 번째 책 ‘어느 목회자의 고백’을 썼다. 이후에도 몇 권의 책을 더 펴낼 만큼 세상과 소통하려는 그의 열망은 컸다.

 

 

은퇴 앞둔 시니어들에게

“‘은퇴 이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희열을 느끼는가, 이런 질문이 선행돼야 합니다. 대부분의 시니어가 먹고 살고, 먹여 살리기 위해 애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은퇴를 기점으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평가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이전에 살았던 것과 정반대의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기를 추천합니다. 새로운 것을 접하는 자체로 큰 에너지를 얻으실 겁니다”

정 목사는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연구소를 차려보고 싶다고도 했다. ‘라이프 리셋 연구소’라는 이름도 지었다.

“요즘 각종 매체에서도 은퇴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피상적이고 일차원적입니다. 일자리 찾는 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할 수 있다면 은퇴자들의 삶을 재조정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정 목사는 끝으로 ‘패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이 먹을수록 옷을 잘 입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내면, 정신이 달라집니다. ‘나는 은퇴자’다, ‘뒷방 신세’다 하는 패배감이나 소외감으로부터 ‘내가 주인공’이고 ‘주역’으로 당당하게 존재한다는 마음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옷을 자기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조금 더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생깁니다. 발걸음부터 당당하고 자기 존재에 대한 자신이 생깁니다. 아주 미묘한 차이이지만 중요한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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