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탄소와 헤어진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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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탄소와 헤어진 10일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2.03.10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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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프로젝트(1) 환경을 위한 탄소 금식

우리는 지금 탄소의 시대에 살고 있다. 탄소 없이는 거리의 자동차도 공장도 대부분 시동을 멈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사회를 굴리는 탄소는 지구를 갉아먹는 종양이다. 마치 이가 썩을 것을 알면서도 가는 손을 멈출 수 없는 사탕 같달까. 편리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탄소의 본 모습은 지구 생태계를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악마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지난 2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됐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우리의 즐거움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번 사순절엔 탄소를 포기하는 조그만 불편에 도전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태양처럼 내리쬐는 일상 속 탄소의 습격에서 간간이 그늘을 찾아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사순절을 맞아 치열하게 탄소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 10일간의 기록을 정리했다. 당연히, 이것은 수기이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플라스틱 배출이 840만t 증가했다는 조사가 나왔다. 사순절을 맞아 자발적 불편의 일환으로 10일간의 탄소 금식에 도전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플라스틱 배출이 840만t 증가했다는 조사가 나왔다. 사순절을 맞아 자발적 불편의 일환으로 10일간의 탄소 금식에 도전했다.

 

산소, 아니 탄소 같은 너

당장 떠오른 것은 플라스틱이었다. 그렇잖아도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플라스틱의 홍수는 코로나 사태 이후 더 기세가 등등하게 넘실댔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일평균 쓰레기 발생량은 54872t으로 전년 대비 8.8% 증가했다. 발생량과 증가폭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우선 못해도 내 끼니의 3할은 차지하던 배달음식부터 끊어야 했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야 자연히 밖에서 먹지만 문제는 집에서 식사를 해결해야할 때였다. 어머니 품을 떠나 홀로 서울에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자취생에게 배달음식 없는 삶은 꽤나 고역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도 식자재라곤 찾을 수 없었다. 퇴근 후 노곤한 몸을 이끌고 반찬 몇 개 겨우 차려둔 식탁에 앉느니 사먹는 밥이 훨씬 풍성하다며 옹고집을 부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차선책인 식당을 찾아 거리로 나섰다. 코로나 감염을 피하기 위해 대인 접촉을 줄이겠다는 같잖은 자기합리화부터 접어둬야 했다.

나와 보니 그동안의 게으름에 헛웃음이 나왔다. 식당을 가려해도 뻔한 메뉴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나마 자주 가본 식당이라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 그러니까 퇴근길 동선에 위치한 곳이 다였다. 아아, 현대사회 귀차니즘의 총체인 나라는 인간이여.

다행히 집 근처에는 햇살 같은 화양제일 골목시장이 절로 허기를 부르는 다채로운 음식들로 기자를 부르고 있었다. 살고 있는 동네인 건대입구도 나름 번화가로 이름난 터라 선택지는 차고 넘쳤다. 탄소 금식 10일간 플라스틱이란 편리함을 잃은 대신 못 다한 동네 산책에 나섰다.

그 다음 과제는 비닐과 일회용품. 편의점에 들를 때도 비닐봉투를 사양하고 몸의 일부처럼 매고 다니는 백팩에 옮겨 담았다. 아니, 애초에 편의점 이용을 가능한 줄이려 노력했다. 회사 사무실에선 환경을 위해 진작 개인 수저를 공동구매한 터라 비교적 탄소금식이 수월했다.

그동안 코로나 확산 방지라는 이유로 중단됐던 카페 안 일회용컵 사용 규제가 오는 41일부터 재개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에서 추가로 발생한 플라스틱 쓰레기 양이 840t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를 생각하면 조금 늦은 감이 있다. 특히 크리스천들에게는 사순절과 맞물려 그동안 익숙해져있던 플라스틱과 이별을 고하기에 적절한 시기일 듯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고백할 것이 있다. 당당하게 외친 배달음식 중단 선언을 100% 지키지는 못했다. 한 번은 회사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시켰을 때다. 배달되어 온 플라스틱 그릇을 보고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두 번째는 1년 만에 축구를 하겠답시고 굳은 몸에 윤활유를 발랐던 다음날이다. 그날은 정말이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불편을 뛰어넘는 기쁨

의외의 복병은 육식이었다. 집에서 밥을 차려먹지 않는 기자의 생활 패턴에서 고기를 피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웬만한 식당에서 메인 메뉴는 고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일부러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찾아갈 만큼 고기를 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떤 이는 탄소 금식을 하는데 뜬금없이 왜 육식을 줄이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고기라는 놈들이야말로 탄소 배출량을 늘리는 주범 중 하나다. 지구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의 37%가 가축으로부터 나온다. 가축들이 내뿜는 메탄가스는 온실효과에 특히나 치명적이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8%나 된다. 그야말로 가축이 지구를 축내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채식 비중이 높은 한식을 주로 찾았다. 면류도 한 끼 식사로는 제격이었다. 하지만 고비는 역시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찾아왔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몇 개월 만에 만난 친구에게 된장찌개나 먹으러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지면을 빌어 채식주의자, 특히 환경을 위해 채식을 선택한 분들에게 크나큰 존경을 표한다.

다음은 에너지 분야. 애초에 면허가 없는 터라 대중교통 이용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자니 고민이 깊었다. 대중교통을 타지 않으면? 자전거를 타거나 걸을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 이동거리가 너무 길었다. 특히 취재와 인터뷰 등 업무를 위한 이동은 시간 엄수가 중요했다. 그렇다고 개인 일정이라 한들 지하철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자전거로 가기엔 웬만한 결심과 체력으론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탄소금식을 시작하며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나만의 데드라인은 지하철 3정거장. 그 이하의 거리라면 자전거 또는 도보를, 그 이상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탄소 금식을 시행한 10일 동안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할 거리의 이동은 단 한 번뿐이었다. 덕분에 3정거장의 원칙은 10일 이후에도 이어지는 도전 과제로 남겨뒀다.

우리 일상에 탄소가 얼마나 밀접히, 그리고 깊이 침투해있는지를 여실히 깨달았던 10일이었다. 그만큼 별 생각 없던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지구를 아프게 하는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탄소와 이별을 꾀했던 10일의 모든 순간이 유쾌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불편을 뛰어넘는 보람이, 여태껏 알지 못했던 여유와 기쁨이 일상을 감쌌다. 마치 차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후의 햇살처럼. 에어컨에서는 맛볼 수 없는 숲 속의 푸른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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