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 주려고 일흔에 시작한 공부, 국내 최고령 박사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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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서 남 주려고 일흔에 시작한 공부, 국내 최고령 박사 꿈꿉니다”
  • 이진형 기자
  • 승인 2022.03.08 0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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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人사이더 ㉖ ‘만 75세 만학도’ 백석평생교육신학원 상담학전공 서동원 장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후 주경야독으로 학사학위 취득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위수여식에서 우수학습자로 ‘특별상’ 
백석대학원 석사과정 진학, “소외된 노인 상담 봉사 하고파”


1947년생.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70대 백발노인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얼마 전 학위를 취득한 대학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우수 학습사례’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4년 전 처음 학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키보드와 오랜 시간 씨름하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타자 속도 450을 거뜬히 넘기는 실력에 A4 3장 분량의 원고는 식은 죽 먹기. 백석평생교육신학원 2021학년도 졸업생 우수 학습사례로 선정된 ‘만학도’ 서동원 장로(한서감리교회 은퇴장로)의 이야기다. 올해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곧바로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한다는 서 장로를 만나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만 70세에 공부를 시작해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1년 안에 모두 패스하고 4년 동안 주경야독한 그는 국내 최고령 박사까지 꿈꾼다고 했다.
 

만 75세 만학도인 서동원 장로는 주경야독으로 백석평생교육신학원을 졸업하고 백석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만 75세 만학도인 서동원 장로는 주경야독으로 백석평생교육신학원을 졸업하고 백석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배워서 남 주자
“6.25전쟁 직후 벽촌에서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몸소 겪으면서 살았습니다. 국민학교 졸업 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소작농을 하는 집안일을 도우며 자랐죠.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해 열등의식에 젖어있었기에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품고 있었지만,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살다 보니 어느덧 노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았다. 먹고 살기 위해 공부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고, 대학진학은커녕 중학교 교복을 입을 수 있는 것만도 축복이었다. 서 장로의 지난날도 마찬가지였다. 농사부터 자동차 정비, 음료수 대리점, 택시, 버스 운전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고국을 떠나 3년 동안 리비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월남 파병 때는 기습공격을 당해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고 본인도 큰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우리네 현대사를 실감 나게 다룬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이 읊조리던 대사처럼 그야말로 ‘힘든 세월에 태어나서, 거친 세상 풍파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늦은 나이에 어떻게 공부를 결심하게 됐는지 묻자 “가족이나 사회에 짐이 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우리 때는 중·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어도 일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 많았어요. 그런 거 없는 우리는 힘든 일을 주로 했죠. 무시도 많이 당하고 학벌 때문에 서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와서 공부를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그 나이에 왜 고생을 하느냐고 하더군요. 물론 저도 쉬고 싶고, 여행도 마음껏 다녀보고 싶고, 즐거움을 찾아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배워서 남 주자’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오직 나와 가족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이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이웃을 위해 나누고 베풀며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상담학전공을 선택하게 됐어요.”

직장까지 옮기며 시작한 만학도의 길
서 장로는 만 70세가 되던 지난 2017년 4월 중학교 검정고시와 8월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했다. 주상복합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짬을 내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 결과였다.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이 쏟아졌고 가족들의 자랑거리가 됐다. 용기를 얻은 그는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대학을 찾아 백석평생교육신학원에 입학했고 올해 2월, 8학기 과정을 모두 마치고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서 장로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우수학습자로 뽑혀 특별상까지 받았다. 

성실하게 학위과정을 마치고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까지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큰맘 먹고 시작한 대학공부였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학업을 위해 그는 가장 먼저 직장을 옮겼다. 오후 6시에 시작되는 강의를 듣기 위해 경비일을 그만두고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를 마친 후 부리나케 학교로 달려가 강의를 다 듣고 나면 밤 11시에나 겨우 집에 도착하는 고된 날들이 이어졌다. 많은 과제물을 안고 씨름하다 보면 새벽 2~3시.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이 버겁기도 했지만 4년 동안 결석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체력 말고도 만학도 대학생이 넘어야 할 산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처음 수강신청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죠. 고맙게도 젊은 학우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많은 도움을 줬어요. 1학년 때 교양수업을 하나도 듣지 않았는데, 졸업을 위해 필수라는 사실을 알고 걱정이 컸습니다. 그때 친절하게 안내해준 교학처 직원들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졸업을 못 할 뻔했지 뭡니까.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한 것도 있습니다. ‘독수리 타법’으로는 도저히 과제를 완성할 수 없어서 타자 연습을 위해 성경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여섯 번이나 썼더군요. 이제는 웬만한 젊은 사람들보다 타자 속도가 빨라졌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 장로 은퇴를 하기까지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온 서 장로. 그는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건강을 허락하시고 은혜를 주신 덕분”이라고 고백했다.

노인 상담 목표…이발, 기타도 배워
서 장로는 올해 3월부터 백석대학교 대학원에서 기독교상담학과 석사과정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대학원까지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상담학을 공부하다 보니 더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70대의 만학도는 배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공부를 시작한 이후 그의 삶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상담학이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분야라고 합니다. ‘사람의 모든 정신과 행동에는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내가 그동안 가족들에게 행했던 언행들, 주관적인 판단과 강요로 타인에게 상처를 줬던 것들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특히 어린시절 내가 배웠던 그대로 아주 엄격하게 대했던 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지요. 손주들에게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주말마다 손주 녀석들이 하삐(할아버지) 보러 가자고 성화에요.”
 

서 장로는 건강이 허락된다면 대학원을 마친 후 15년간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했다.

대학원은 5학기 과정으로 학업을 마치면 78세가 된다. 서 장로는 건강이 허락된다면 대학원을 마친 후 15년간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했다. 외롭고 소외된 노인들을 대상으로 정신적인 문제나 가족·자녀·죽음 같은 고민을 들어주고 안정된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봉사를 위해 이발학원에서 이용사 자격도 취득했고 기타도 배웠다. 더 깊은 배움이 필요하다면 박사과정까지도 도전할 생각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배움의 길을 가보고 싶으나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노인들을 향한 조언을 부탁하자 시편 71편 18절 말씀을 나지막이 읊었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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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혜 2022-03-10 21:19:16
우와! 대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