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경기 비결요? 끝까지 붙드시는 우리 하나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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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경기 비결요? 끝까지 붙드시는 우리 하나님이죠”
  • 이진형 기자
  • 승인 2022.02.22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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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김소희 선수

한국 여자 알파인 스키 사상 최고 순위 기록하며 선전
스타트 전 성경 말씀 외우고 두려움·슬럼프 기도로 극복


“이 세상이 거칠게 막아서도…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영화 국가대표 OST)

10여 년 전 동계스포츠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무모한 도전을 펼쳤던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이야기가 영화화돼 전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적이 있다. 이후로 우리나라는 평창 올림픽까지 개최하며 명실상부 동계스포츠 강국 대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쇼트트랙·피겨스케이트 등 ‘빙상’ 종목 편중이 심하고 ‘설상’이나 ‘슬라이딩’ 종목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 대표적인 설상 종목인 스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소희 선수(27, 하이원)는 열악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올림픽 무대에서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올림픽 경기를 마치고 귀국한 후 전국체전 준비를 위해 곧바로 합숙 훈련에 들어간 김소희 선수는 아직 대회의 여운이 남아있는 듯 들뜬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김소희 선수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 속에서 당당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는 비결로 말씀과 기도를 꼽았다. (사진=김소희 선수 제공)<br>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소희 선수는 열악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사진=김소희 선수 제공)

기적의 올림픽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기록을 세워서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올림픽 경기장의 설질이 평소와 달라서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적응하기 까다로웠는데 무사히 완주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지난 7일 여자 알파인 스키 대회전 경기에서 김소희 선수는 1, 2차 시기 합계 2분 07초 22를 기록해 출전 선수 82명 가운데 33위에 올랐다. 본인의 역대 최고 성적이자 한국 여자 알파인 스키 사상 최고 순위인 오재은 선수의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순위와 같은 기록이다. 출전 선수의 40%에 달하는 33명이 경기 도중 탈락할 정도로 유독 완주하지 못한 선수가 많았던 이번 올림픽에서 김소희 선수는 그동안 준비했던 실력을 마음껏 선보이며 1, 2차 레이스를 안정적으로 마쳤다. 비록 30위권 진입이라는 목표에는 조금 미치지 못했지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훌륭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김소희 선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알파인 스키 대회전 경기에서 1, 2차 시기 합계 2분 07초 22를 기록해 출전 선수 82명 가운데 33위에 올랐다. (사진=김소희 선수 제공)

소치, 평창에 이어 세 번째 도전하는 올림픽이지만 이번 대회는 김소희 선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단 한 명만 뽑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실수를 해 탈락했다가 출국을 9일 앞두고 극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된 것. 알파인 스키 종목에 추가쿼터가 생기면서 얻게 된 값진 기회였다. 운동선수에게 올림픽 출전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한다면 김 선수가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태신앙인 그는 선수 생활을 하며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신앙의 힘 덕분이라고 고백했다.

“지난 4년 동안 올림픽을 바라보고 준비했던 시간들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 상심이 정말 컸죠. 실수한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추가 선발 소식을 듣고선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음날 눈이 안 떠질 정도로 펑펑 울었어요.”

두려워하지 말라
운동선수에게 꼭 필요한 것은 잘 단련된 육체뿐만이 아니다. 고된 훈련과 잦은 부상, 성적에 대한 부담과 무한 경쟁 속에서의 압박을 견뎌낼 강인한 ‘멘탈’이 필수다. 여느 20대 청년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김소희 선수에게 세계 최고의 선수들 속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묻자 기다렸다는 듯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줄줄 외웠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은 제가 경기 스타트 전에 항상 외우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두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항상 나를 붙들고 계신다면, 그렇다면 내가 먼저 놓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큰 부상을 입고 오랜 시간 힘겹게 재활했을 때도, 스키를 그만둘 생각을 할 정도로 심각한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도 말씀과 기도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소희 선수는 열악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사진=김소희 선수 제공)
김소희 선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 속에서 당당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는 비결로 말씀과 기도를 꼽았다. (사진=김소희 선수 제공)

김소희 선수가 타고난 스키 실력과 굳건한 믿음까지 겸비할 수 있게 된 데는 외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김 선수의 외할머니는 바다수영 국가대표 출신으로 각종 스포츠 종목을 섭렵한 만능 체육인이자 강원도 평창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장진선 목사(올림픽순복음교회). 김 선수가 어린 시절 처음 스키를 접하게 된 것도 외할머니 덕분이었다.

“외할머니를 따라 처음 스키장에 갔던 게 3~4살 때였어요. 스키 타는 걸 너무 좋아해서 6살 무렵 경기도에서 강원도 할머니 집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 바람에 가족들이 난리가 난 적도 있었대요. 선수가 되고 나서도 할머니는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셨어요. 고3 시절 정강이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는데, 그때가 경기력이 가장 좋았던 때였어요. 선수 생활이 끝난 것 같아 실의에 빠진 제게 할머니는 ‘괜찮아. 천천히 재활하고 훈련하면 돼. 무너지지 않는 탑을 쌓아서 다시 도전해 보자’고 격려해 주셨죠. 그 이후로도 슬럼프가 찾아오거나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소희야, 기도해 봐’라고 말씀해 주신답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책을 가까이하며 차곡차곡 쌓인 신앙 교육의 열매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빛을 발했다. 잦은 대회와 훈련 일정으로 교회에 출석하기 어려울 때도 김 선수는 혼자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나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샘솟았다. 그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경기를 무사히 마친 후에도 피니쉬 라인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드렸다.
 

김소희 선수는 올림픽 경기를 무사히 마친 후 피니쉬 라인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드렸다. (사진=김소희 선수 제공)

사명으로 걷는 길
알파인 스키는 동계올림픽을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은 종목이다. 새하얀 설원에서 눈보라를 일으키며 날카로운 회전과 엄청난 점프로 굽이치는 코스를 활주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알파인 스키 중에서도 활강과 같은 종목은 최고속도가 152km에 달할 정도로 속도감 있는 경기가 펼쳐진다. 빠른 속도와 정확한 기술, 고도의 체력과 경험 등이 요구되기 때문에 힘과 체격이 우월하고 좋은 훈련 환경을 갖춘 서양 선수들이 대부분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한국 선수들은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데다 국민들의 관심마저 적은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평창 올림픽 때는 금메달을 딴 윤성빈 선수의 스켈레톤 종목과 같은 날 경기가 열리면서 김소희 선수 출전 경기는 한군데도 중계를 하지 않았을 정도. 국내에는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스키장도 턱없이 부족하고 각종 세계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느덧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알파인 스키 선수로 자리를 잡은 김소희 선수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인기 종목 운동선수의 서러움이랄까요? 어떤 종목이든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텐데,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먼저 내놓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저희가 피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회 참가를 위해 유럽 나라들을 방문하면 엄청나게 좋은 환경이 부러울 때가 많죠. 저희는 오랜 비행시간에 지쳐있는데 유럽 선수들은 버스를 타고 오거나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스키장까지 오는 선수도 봤다니까요.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제가 가는 길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최고속도가 152km에 달할 정도인 알파인 스키는 빠른 속도와 정확한 기술, 고도의 체력과 경험이 요구된다. (사진=김소희 선수 제공)<br>
최고속도가 152km에 달할 정도인 알파인 스키는 빠른 속도와 정확한 기술, 고도의 체력과 경험이 요구된다. (사진=김소희 선수 제공)

김소희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 경기가 끝난 후에도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6시간 이상의 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국제대회와 전국체전 등 몇 번의 큰 경기를 더 치르고 나서 3월 말쯤 시즌이 끝나면 이제 다음 올림픽도 준비해야 한다. 2026년 밀라노 올림픽 목표는 20위권 진입이다. 김 선수는 어떻게 하면 알파인 스키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알파인 스키의 미래를 책임지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고민일 것이다.

“알파인 스키는 저돌적으로 타고 빠르게 내려와야 1등을 하는 스포츠입니다. 위험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 철저한 훈련이 매우 중요하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중에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저는 바람을 맞으며 스키를 타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거든요. 제가 가는 길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특히 크리스천 후배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습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누구나 힘들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헤쳐나갈 수 있는 고난만 허락하신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걸 믿고 붙들면 반드시 도와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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