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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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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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2.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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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신앙의 뿌리와 열매 / 골로새서 2:6~8 / 찬송: 258장

짧은 구절이지만 신앙의 단계를 잘 소개해줍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단계, 자라나는 단계, 열매를 맺는 단계를 한 폭의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꽃꽂이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꽃이 멋있게 보이지만 뿌리가 없기 때문에 금방 시듭니다. 거목과 묘목의 차이도 뿌리에 있습니다. 거목이 풍랑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이유는 뿌리가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묘목은 뿌리가 가늘기 때문에 비바람이 불면 뽑히고 맙니다.

교회를 다니고 교회 문화에 익숙했다고 해서 신앙의 뿌리를 내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교회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봉사를 해도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경험하는 존재론적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정확하게 경험해야 합니다. 복음이 없으면 내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익숙해지는 것과 성숙은 다릅니다. 익숙해지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의식적인 활동일 뿐입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에 물을 부으면 썩게 됩니다. 성경공부를 많이 한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경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내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와 연결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오늘의 기도

진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참 신앙인이 되도록 인도하소서.

윤양표 목사 / 경성교회

 

화요일 / 영혼의 목마름 / 이사야 55:1~9 / 찬송: 309장

현대인들은 무엇인가 목말라있습니다. 가난할 때보다 부유해질 때, 못 배울 때보다 배울수록 목마릅니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이라 합니다. 풍요하면 만족하고 행복지수가 높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짐승과 다릅니다. 의·식·주 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느끼고 자유가 있어야 하고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정신이 있고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의 마음 한구석에 무엇으로도 채 울 수 없는 비어있는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공허함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영혼의 목마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문화나 경제나 지식이나 쾌락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영혼의 목마름은 하나님이 채워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은 이사야가 주전 690년경에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 목마른 자들아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초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나와 수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막혔거나 건강하지 못하면 마음에 평안이 없고 안식이 없다 그러면 자연히 인생의 모든 것들이 막힙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너와 나의 관계이전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사람은 영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회복할 때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얻으며 영혼의 목마름이 해결됩니다.

•오늘의 기도

영혼의 만족함으로 채우소서.

김만열 목사 / 청주영안교회

 

수요일 / 왜 나를 사랑하시나 / 이사야 43:1~7 / 찬송: 295장

오래된 복음성가 중에 “왜 날 사랑하나”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시를 쓴 사람은 십자가와 관련하여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에 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 고통은 내 대신 당한 고통이라는데 왜 죄 용서 받을 수 없었던 나를 위해 그 고통을 당하셨는가?

그가 깨달은 것은 그 모든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는 이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날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주가 고난 받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면 왜 날 사랑하셨나? 그 대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가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죄 가운데 죽은 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깨닫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본문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심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니 여러분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독생하신 아들까지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잊지않고 살게 하옵소서.

유영삼 목사 / 영광교회

 

목요일 / 진실하고 충성된 새 사람으로 살라 / 요한계시록 3:14 / 찬송: 597장

첫 번째는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시는 예수님을 “아멘”이시라고 호칭합니다. 아멘은 일반적으로 진실한, 확실한, 견고한 이라는 뜻으로 문장의 끝에 부기되는 경우는 “진실로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멘”이라고 호칭한 이유는 세속에 물 들어서 사는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진실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고 하십니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충성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을 죽음의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목숨 걸고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적인 순종으로 충성하신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시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천지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재창조하시며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도 새롭게 살리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시는 예수님은 진실하고 충성된 증인이시며 타락한 세상을 다시 에덴동산으로 회복시키시며 멸망당할 영혼을 천국백성으로 삼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새사람으로 진실하고 충성되게 사는 성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온재천 목사 / 광혜교회

 

금요일 / 예수님이 빛나는 보조역할 / 요한복음 1:19~28 / 찬송: 80장

사람 대부분은 두 번째 위치나 보조 역할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최고의 자리를 추구합니다. 바이올린 연주에서 ‘세컨드 피들’이라는 연주자가 있습니다. 최고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앞자리에 앉고, 그 뒤에서 그 연주가 뛰어나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입니다. 마치 대통령의 보좌관과 역할로서 제일 바이올린의 연주를 빛나게 하는 보조 역할입니다.

세례 요한은 ‘세컨드 피들’이라는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당시 요한에게 군중이 몰려와서 그의 설교를 들었고, 그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의 인기는 당시 최고였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여러 나라로부터 사람들이 올 정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등장합니다. 이때, 요한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제자들에게 예수가 누구인가를 소개합니다(요 1:35~39).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최고의 칭찬을 하였습니다(눅 7:28). 요한의 비밀은 오직 예수님만 빛나게 하는 보조역할에 충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자리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맡은 역할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직임이라면, 아무 염려 없이 섬기는 종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보조 역할 혹은 단역 배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조 역할을 순종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요한이 증거한 예수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예수님만 높이며 살고 싶습니다.

정석동 목사 / 창성교회

 

토요일 / 너 자신을 알라 / 마가복음 14:27~31 / 찬송: 369장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7절)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 하나같이 배반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찬동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29절) 베드로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0절)

베드로는 우월감과 자만심에 고백을 했지만 얼마나 자신이 연약한지, 무능력한 자인지 몰랐기 때문에 장담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 역시 자신들은 절대로 주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제자들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유혹과 환난 속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신들의 모습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던 제자였습니다. 게다가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어떤 환난과 시험을 이기고 감당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교만함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의 약함을 강하게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끝까지 동행하며 승리합시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과 세상을 이기며 살게 하소서.

서기성 목사 / 새희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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