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토양에서 일군 ‘교단 1호’ 자부심 지켜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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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토양에서 일군 ‘교단 1호’ 자부심 지켜갑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2.02.16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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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 복지기관 탐방① 장애인들 위한 42년 ‘신망애 복지재단’

초창기 낯선 장애인 사역에 ‘이단’ 취급 받기도
국내 손꼽히는 시설로 성장 3개 법인 25개 기관
다양한 상품 작업장에서 출시… 수준 높은 대우

신망애복지재단에서 일하는 장애인들.
신망애복지재단에서 일하는 장애인들.

1981년 2월 설립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장애인 복지시설로 성장해 온 신망애복지재단(대표이사:김양원 목사). 믿음과 소망, 사랑이라는 뜻의 ‘신망애’라는 이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총회에서도 1호 복지재단으로 그 존재가치가 남다르다. 

‘총회 복지기관 탐방’ 첫 번째 주인공인 신망애복지재단을 취재하기 위해 최근 본부가 위치한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을 찾았다. 겨울 산에 소복이 내린 눈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코와 입을 통해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없던 병도 절로 나을 것만 같은 기분에 젖는다. 

 

복지 선교의 모델로 성장

올해로 42주년을 맞은 어엿한 장년의 단체답게, 신망애복지재단에는 장애인 거주시설과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지역사회 재활시설, 종합사회복지관 등 지역의 복지 발전을 위한 다수의 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밖에도 전문적인 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한 복지연구 및 프로그램 개발 등 종합복지계획을 수립해 많은 복지 대상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개의 자매법인까지 포함해 총 25개 기관에 330여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600명 이상의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기관이 됐지만, 시작은 미약했다. 사역의 규모를 떠나 장애인 사역을 바라보는 인식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대표이사 김양원 목사는 “장애인복지, 사회복지를 통해 선교하겠다는 생각을 마치 이단아 보듯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시각은 교단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이야 교회의 보편적 사명으로서 사회복지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그때는 저를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교단과 동기 목사님들조차도 도와주기는커녕 못된 놈 보듯 했습니다. ‘목사 안수받아서 거지 노릇이나 할 거냐’고 힐난하는 어른들도 계셨죠. 지금 와서는 그분들이 저를 부러워하시면서 조언을 구하니 신기한 일입니다. 한국교회의 인식이 성장하고 변화한 것을 감사하면서, 그 힘든 가시밭길을 지나서 이렇게 42년 만에 모두가 인정하는 사역을 일구신 하나님께 참 감사하고, 좋은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거듭 강조해도 부족한 복지 중요성

김 목사가 초창기 주변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뚝심있게 복지 사역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말씀’이었다. 

“갈라디아서 2장 10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 속에 저희 사역의 성경적 원리가 나타납니다. 바울이 말하길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나는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하죠. 그래서 나는 이 일(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을 힘써 행한다고 나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모두 힘써 행할 일이라고 확신했죠. 또 사도행전 3장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성령 충만을 받은 뒤 중증 장애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명하며 오른손으로 잡아 일으키는 대목이 나옵니다. 내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오른손을 내밀어 잡아 일으키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행할 복지 사명입니다.”

김 목사는 우리 교단 안에서도 복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필요성이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갈수록 높아지는 교단의 위상에 걸맞은 총회 복지법인 설립을 제안했다. 특히 지난해 총회 복지법인 설립이 추진됐다가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면서 “복지 정책이 보편적 복지로 가면서 갈수록 법인 허가와 시설 허가가 까다로워지는 것이 현실이지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마인드와 의지”라고 강조했다. 

 

신망애복지재단 대표이사 김양원 목사와 조주현 사모. 조 사모는 복지재단 초창기 직원으로 왔다가 김 목사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최고의 동역자로 꼽는다.
신망애복지재단 대표이사 김양원 목사와 조주현 사모. 조 사모는 복지재단 초창기 직원으로 왔다가 김 목사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최고의 동역자로 꼽는다.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이날 다리가 불편한 김 목사를 대신해 그의 가장 듬직한 동역자이자 아내인 조주현 사모가 시설의 이곳저곳을 직접 안내했다. 중증장애인에게 상담과 치료,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참누리와 교회, 근로사업장 ‘차오름’과 보호작업장 ‘신망애이룸터’, 장애인 바리스타가 일하는 ‘153카페’까지 42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근로사업장과 보호작업장에서 생산되는 제품군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만 18세 이상의 장애인들에게 맞춤식 직무를 개발하여 적합한 공정에 배치하고 성과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차오름에서는 위생포크와 접이식 박스, 코너선반, LED조명용모듈, 커넥터바디, 접이식박스 등이 생산되고 있었다. 아직 보호와 숙달이 필요한 장애인들이 근무하는 신망애이룸터에서는 참기름과 EM그린퐁, 천연비누 등이 생산된다. 이 가운데 참기름의 경우 이윤은 크지 않지만, 오랜 기간 소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제품이어서, ‘신망애’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곳에서 작업하는 이들에게는 전국의 장애인 시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급여가 지급된다는 것. 조 사모는 “장애인 본인들뿐 아니라 부모님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며 “자녀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일을 통해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표현하신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신망애를 세우신 목적과 보람을 발견하곤 한다”고 소개했다. 

1984년 김 목사가 직접 그린 신망애 동산 투시도.
1984년 김 목사가 직접 그린 신망애 동산 투시도.

견학을 마친 후 다시 만난 김 목사가 한 장의 사진을 내민다. 1984년 김 목사가 직접 그린 ‘신망애동산투시도’였다. 이곳에는 교회와 아파트, 공장, 병원 등의 시설이 그려져 있었다. 김 목사는 “그림을 그릴 당시만 해도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맨주먹밖에 없었다”면서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뜻을 먼저 구했더니 놀랍게도 소망했던 것을 얼추 이뤄주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을 살려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었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고,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신망애복지재단은 코로나 이후 모이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들은 코로나 감염 시 치명적일 수 있는 만큼 정부의 방역지침을 철저하게 준수해 온 까닭이다. 그러나 시설 이용자와 직원들 외에 시설 밖 교인들로부터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눈물 어린 호소가 터져 나오고 있다. 김 목사는 “외부에 비닐하우스를 치는 한이 있더라도 함께 드릴 처소를 마련하는 것이 최근의 기도 제목”이라며 “방법이 마련될 수 있도록 독자들께서 함께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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