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첫째주 가정예배
상태바
2월 첫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2.01.27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요일 / 만물의 마지막에 성도가 힘쓸 일들 / 베드로전서 4:7~11 / 찬송: 507장

사람들은 물질적인 번영에 도취되어 자기들의 영혼에 관해서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합니다. 저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미련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현대인들의 삶을 보면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지금이 말세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로 일깨워 줍니다.

우선 사람들의 정신적 타락상을 들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죄를 짓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비가 연일 내려서 강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았으면 둑이 무너지기 전에 피난 갈 준비를 해야지, 저러다가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면 낭패를 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에 보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나옵니다. 일곱 개의 편지는 하나같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구절로 끝맺습니다. 오늘 들은 바 말씀을 마음에 새기셔서 이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시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시며, 사랑으로 행하심으로 언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말세의 혼잡한 세상 속에서 언제나 주님을 따르도록 하소서, 분별력을 허락하셔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소서.

윤양표 목사 / 경성교회

 

화요일 / 성도들이 지켜야 할 삶 / 고린도후서 7:2~4 / 찬송: 516장

구원은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주는 은총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누가 대신할 수도 없으며 남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도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연합해 성장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을 통해 성도들이 지켜야 할 삶의 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 2절에 말합니다. 세상의 공동체는 대부분 이익을 목적으로 모입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 서로를 위한 희생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우선되고 형식이 됩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치 말고 해롭게 하지 말며 속여 빼앗지 말라고 말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는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한 형제인 성도들 간에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됩니다.

3절은 성도들이 서로 정죄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서로 진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이유로 형제를 정죄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 사도는 자신의 권면이 결국 형제 된 성도가 함께 살고 함께 죽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건물의 한 부분이 없으면 전체가 무너지듯 성도들도 자신만이 잘될 수 없으며 모두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섬기는 교회 공동체가 활성화 되도록.

김만열 목사 / 청주영안교회

 

수요일 / 고통 가운데 있는 자를 위로하라 / 욥기 2:11~13 / 찬송: 486장

예수님은 이런 저런 일로 인해 고통 받으며 괴로워하는 여러분을 찾아오셨고, 필요를 채워주셨고, 여러분의 간구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고통 받는 자들을 찾아가야 하며,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하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대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본문 11절은 때에 즉, 욥에게 재앙이 임했을 때에 친구 세 사람이 욥에 대한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욥을 찾아 온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욥에게 재앙이 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문하고 위로하려고 온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시간은 귀중했고, 해야 할 일도 많았을 것이고, 거리도 결코 짧지 않았지만 고통 받는 친구를 외면할 수 없어 욥을 찾아온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왜 이리 움직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순수한 동기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아파하며 기뻐해 줄 수 있는 이런 친구들이 있습니까? 이런 친구들이 있기를 바란다면 먼저 그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고, 돈을 쓰며, 함께 그 고통을 느껴보십시오. 귀한 친구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위로자이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분으로 인하여 참된 위로와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을 나의 유익이 아닌 주님의 사랑으로 돌아보게 하옵소서.

유영삼 목사 / 영광교회

 

목요일 / 기둥으로 쓰임받는 자 / 요한계시록 3:12 / 찬송: 267장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세상 죄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환난과 핍박도 인내로 승리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으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지진으로 인하여 무너지고 기둥이 부러졌을 때 성전에 머무르지 못하고 밖에 나가 천막을 치고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 이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성전이 되시고 우리를 기둥으로 삼아서 다시는 성전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2장 13절에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켜 승리한 자는 결코 천국의 바깥 어두운 데인 지옥으로 쫓겨나는 일이 없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과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을 새겨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내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 승리하여 성전 밖으로 쫓겨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의 기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영원히 거주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시련 중에도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인내하므로 성전의 기둥으로 기억되고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온재천 목사 / 광혜교회

 

금요일 /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스가랴 4:1~10 / 찬송: 183장

한국에 왔던 초기 선교사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 사역을 단 하나조차도 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고백을 뒷받침하는 본문 말씀입니다.

자신이 배운 지식과 익힌 기술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려고 노력해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인격을 함양하려고 피땀 흘려 노력해본 적이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진지한 능력과 은혜를 간과하면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신 체험이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설교나 간증을 비그리스도인에게 선포해보셨습니까?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정말로 무능함을 고백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회심을 체험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으로 성숙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영혼의 양식을 얻습니다. 응답받은 기도가 성령님의 도움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길 수 있음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내가 순종할 수 있음도 성령님의 도움이었습니다. 우리 안에서 거룩한 소원이 일어날 때마다 성령님이 일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혹은 내 육신의 장막을 벗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성령님의 도움을 기다리고 사모합니다.

•오늘의 기도

성령님의 도움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정석동 목사 / 창성교회

 

토요일 / 가장 큰 계명 / 마가복음 12:28~34 / 찬송: 302장

예수님에게 많은 자들이 찾아와 트집을 잡으려고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예수님께서 지혜롭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한 서기관이 모든 계명 중 첫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신명기(6:4~5)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라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시며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둘째도 이와 같다”고 하셨는데 첫 계명과 똑같은 무게감 있는 계명이란 뜻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흘러넘쳐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수준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31절).

율법의 여러 계명들은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서기관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이 질문을 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동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고백했습니다(33절). 예수님은 그 서기관을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다고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함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하옵소서.

서기성 목사 / 새희망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