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열정으로 개혁주의생명신학 목회 현장에 심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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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열정으로 개혁주의생명신학 목회 현장에 심고파”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2.01.27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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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교회 설충환 목사 / 서울강남노회 노회장

법조인 꿈꾸다 만난 예수님, 목회의 길로 인도
신천지 때문에 목회 위기, 오히려 선교로 극복
“기도성령운동 중요, 후배 목회자들 돕고 싶어”
참빛교회 설충환 목사는 목회 위기를 겪을 때 선교를 통해서 사명을 확인했다. 세 번째 서울강남노회장을 맡은 모든 노회원, 특히 후배 목회자들을 섬기는 데 열정을 다하고 싶다는 꿈을 나누었다.
참빛교회 설충환 목사는 목회 위기를 겪을 때 선교를 통해서 사명을 확인했다. 세 번째 서울강남노회장을 맡은 모든 노회원, 특히 후배 목회자들을 섬기는 데 열정을 다하고 싶다는 꿈을 나누었다.

 

꿈도 많고 열정도 충만했던 전북 고창 출신의 한 시골청년이 예수를 만났다.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대를 중퇴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 말년이었던 그에게 중대장은 어느 날 세례를 권했다. 제대 후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새 비전으로 건국대 법대에 진학했고, 우연치 않게 이모 친구의 전도를 받아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참빛교회 설충환 목사는 그렇게 교회에 발을 내디뎠다. 군대에서 받은 세례의 추억이 교회로 이끌었던 듯싶다. 예수님을 만난 첫사랑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하나님께서 하셨겠지만 청년회장을 맡고는 청년부가 크게 부흥 성장을 하는 겁니다. 신앙을 갖고부터 모든 것이 감사했고 모든 일이 즐거웠어요. 열정을 갖고 청년들을 섬기면서 열매가 맺혔고, 뜨겁게 전도를 하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신길동 소재 참빛교회에서 만난 설충환 목사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예수님을 만났던 추억을 회상하면서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은혜였던 것. 충만한 은혜 가운데 세상 비전을 내려놓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저를 지켜보던 담임목사님이 ‘충환 형제는 신학공부 해야 한다’ 권유를 하시는 겁니다. 처음에는 장신대를 추천하셨는데, 입학 시기가 맞지 않아 방배동에 있다는 신학교를 추천받았어요. 백석대 신대원이었던 거죠.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구약학을 공부하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Th.M까지 공부한 후에는 유학을 가려고 했었을 정도니까요.”

설 목사는 돌연 2003년 참빛교회를 개척했다. 여러 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현장 목회의 길로 인도하셨다.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단 한명의 청년도 따라오지 못하도록 일부러 먼 곳에 개척했다. 연락처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고군분투 개척 목회의 첫 페이지가 열렸다. 돈이 없어 버려진 자재를 가져다 예배당을 꾸미고, 간이의자를 구해와 배치했다. 교인들과 버너를 가져다 밥을 지어먹어도 참 좋았다. 

“선교가 나를 살리는 것 느껴”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이 갑자기 늘어나더니 이내 한 개 층을 더 임대했고, 더 번듯한 건물로 이전하자는 논의까지 진행됐다. 그러다 참빛교회와 설충환 목사는 개척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그는 시련을 마주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란이 일어난 것이다. 주요 교인들이 담임목사와 대적하기 시작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적지 않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신천지였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신천지 명단 자료와 대조해보니까 주요 인물들이 거기에 다 있더라고요. 교인들이 대거 떠나고 헌금도 줄면서 월세를 내기도 어려웠습니다. 목회를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이죠.”

목회 위기 앞에서 설충환 목사를 붙들었던 것은 ‘선교’였다. 그는 2005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동아시아 국가로 향했다. 지금까지도 선교 사역을 멈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믿음을 갖는 것이 큰 고난이 되는 타문화권 국가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침체된 그의 신앙이 오히려 회복됐다. 위기 앞에서 현장을 찾아 나선 해외선교는 큰 위로와 일어설 힘이 되어 주었다. 

“선교가 나 자신을 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선교지에서 잡혀가는 게 낫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영적으로는 단단해지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회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더욱 확신했지요. 그래서 선교는 저의 목회사역과 함께 하는 최선의 비전입니다.”

설충환 목사는 온갖 위기를 겪으면서도 결국 목양의 자리를 지켜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넉넉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잘 자라준 자녀들이다. 급식비조차 제대로 주기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딸 설주연 양은 오히려 장학금을 받아 부모를 도왔다. 과외 한번 시켜주지 못했지만 혼자 힘으로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에서 현재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학비와 생활비도 스스로 책임지고 신앙생활도 열심이다. 

아들 설주찬 군은 아버지와 같은 목회자가 되겠다며 백석대 기독교학부에 진학했다. 설충환 목사보다 먼저 백석신학원에서 공부했던 강소연 사모와 함께 그야말로 모두가 백석 가족이다. 강소연 사모는 백석 신대원에서 다시 학업을 이어갔고, 올 4월 목사 안수를 받을 예정이다. 

한 때 위기를 겪었던 참빛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기도와 말씀 중심의 신앙을 지켜가고 있다.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 설충환 목사의 목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순항하고 있다. 

참빛교회 성도들은 코로나 패데닉을 겪는 와중에도 기도와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지켜나가고 있다.
참빛교회 성도들은 코로나 팬데닉을 겪는 와중에도 기도와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지켜나가고 있다.

“기도성령운동 뿌리내릴 것”
현재 서울강남노회 노회장으로 섬기고 있는 설충환 목사는 목회자로 부르셨던 주님의 뜻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노회장만 세 번째 역임하고 있는 그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노회 산하 교회와 교역자들을 최선을 다해 섬기고 싶은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요. 개혁주의생명신학의 기도성령운동이 절망의 시대에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성령운동이 노회와 목회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서울강남노회를 백석총회의 모델이 되는 노회로 만들고 싶은 꿈도 있다. 교회가 더 많이 세워지고, 후배 목회자를 섬기고 싶다는 열정을 안고 있다. 노회장 재임 기간에만 80여명이 안수를 받은 것도 책임을 무겁게 한다. 작년에는 노회 안에 ‘목회지원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산하 교회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기구가 만들어진 만큼 노회원들과 손을 맞잡고 코로나 위기를 이겨낼 각오다.

“십자가 하나 세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교회 달력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했던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그 때를 생각하면서 간판을 못 달고 있는 개척 교회, 사역을 하고 싶어도 물질이 부족한 교회들을 위해,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 힘껏 돕고 싶은 꿈이 제게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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