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보이지 않나요?…상처는 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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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나요?…상처는 별이 됩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2.01.18 01:3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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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삶-좋은목회연구소장 김민정 목사

15년간 41권의 책 펴낸 열정의 비결 ‘고난’과 ‘도전’
여성 사역자들 위한 ‘멘토’ 자청…“어깨 빌려줄게요”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몰라, 시작하면 끝까지 가라”

‘열정’이라는 단어를 의인화하면 아마도 김민정 목사(좋은목회연구소장, 우리는교회 협동목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60에 며느리까지 본 시어머니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활기가 넘친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다다다다 쏟아 낸다. 

김 목사를 처음 본 건 지난 2019년 가을이었다. 김 목사의 오랜 동역자 박광리(우리는교회 담임), 진영훈(링컨시티 한인교회 담임) 목사와 함께 펴낸 ‘모든 성도는 인대인이다!’(생명의말씀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였다. 제법 자리를 잡은 지역교회 담임 목사 두 사람 사이에서도 김 목사의 존재감은 단연 발군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목사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41권의 책을 써낸 ‘다작’ 작가(생명의말씀사 대표저자)였던 것. 펴낸 책들의 주제만 해도 ‘새가족’, 성경공부 등 사역과 관련한 내용을 비롯해 직장인을 위한 기도문, 암 환자를 위한 병상 기도문, 자살, 여성, 부교역자 등 다양했다. 김 목사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원동력이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그 길을 인도한 하나님께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좋은목회연구소장 김민정 목사. 김 목사는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매일매일 열정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좋은목회연구소장 김민정 목사. 김 목사는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매일매일 열정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사모에서 목사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그는 일찌감치 사역자의 삶을 다짐했다. 신학교에 입학했고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사역자와 만나 결혼했다. 남편을 도와 사모로서 수석 부목사처럼 사역에 매달렸다. 교회는 빠르게 부흥했다. 지금도 긴밀하게 동역하고 있는 박광리·진영훈 목사도 당시 이 교회 청년이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목회자를 배출하는 역동적인 교회를 일궜다. 

그런데 역동이 과했을까. 가정에 문제가 생겼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교회를 떠나야 했다. 남편과 헤어져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시 박사 논문 주제로 예배 컨설팅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이찬수 목사가 동역을 권유했고, 분당우리교회 행정 수석으로 일하게 됐다. 

“사람을 만나는 사역을 하고 싶다고 이찬수 목사님께 요청했어요. 그랬더니 ‘새가족’ 사역을 권하시면서 기존 신자와 새 신자 모두가 만족할만한 사역을 만들어보라고 하시더군요. 이 전까지는 ‘새 가족’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막상 맡게 되니 열정이 솟더라고요. 시중에 나온 ‘새 가족’ 관련 교재를 다 찾아봤더니 고리타분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것 가지고는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해서 교재를 만들기로 했죠. 3개월간 고민해서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게 그렇게 큰 호응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이야기로 본 새가족 성경공부’(생명의말씀사)였다. 4주짜리 프로그램에 그야말로 불이 붙었다. 특히 교회와 거리가 먼 40~50대 남성들이 교회에 정착하는 결실이 이어졌다. 이를 신기하게 본 순장들까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강의안 자체도 좋았지만 김 목사 본인은 당시 강의를 하던 자신의 절박함에 대한 은혜라고 회상했다. 

“당시만해도 신대원에서 강사였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였어요. 그런데 교회에 오면 설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여자라서요. 하물며 제가 가르치는 또래의 남자 신대원생들도 수요일엔 설교를 했지만 저는 못했습니다. 사역자는 말씀을 전할 때 가장 힘이 있습니다. 제 속에서 끓어 오르는 메시지를 전달할 유일한 자리가 새가족부 강단이었던 거죠. 과장 없이 ‘오늘 강의하고 죽겠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모든 열정을 쏟았고 성령께서 힘을 주신 것 같습니다.”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매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파트타임으로 교회 사역을 하는 동시에 학교에서 일주일에 서너 개씩 강의했다. 책도 쓰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야 두 아들과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7년에는 분당우리교회를 사임했다. 예장 합동 교단에서는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카이캄(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휴식과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여성이라는 설움

가진 모든 것을 털어서 온 미국이었다. 자유의 나라 미국은 여성 목회자에 대한 시각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사역지를 구했는데, 하나같이 담임 목사들은 ‘오케이’인데 장로들의 반대로 거절을 당했다. 

“마치 짠 것처럼 하나같이 ‘여자한테 성경을 배울 수 있겠느냐’. ‘설교를 어떻게 맡기겠느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예배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쓴 사람한테 말이죠. 제 이력서도 안 보고 그렇게 판단한다는 생각에 화도 났습니다. 그때 쓴 책이 ‘한국교회에서 여전도사로 살아남기’에요. 언제까지 환경만 탓할 수 없다. 우리가 능력을 보이자는 취지로 쓴 책이었죠. 후에 출판사에서 ‘부교역자 리더십’이라고 새롭게 내긴 했지만, 당시 저의 설움이 담긴 책입니다.”

미국에서 보내는 2년간 김 목사는 너무나도 설교가 하고 싶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설 강단이 없는데도 토요일마다 설교준비를 했다. 그는 “갈 곳도 없으면서 설교를 쓰는 건 참 슬픈 일”이라고 회고했다. 미국을 떠날 무렵 그의 노트북에는 100편의 설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2009년 한국에 왔는데 그때부터 설교를 어마무시하게 했어요. 일주일에 많게는 4~5번씩도 했죠. 그때부터 강단도 열리고 집회도 다니게 되고 세미나 일정도 많아졌습니다.”
신우회도 김 목사 사역의 한 축이었는데, 하루는 대학 동기의 소개로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을 만나게 됐다. 여성 리더십에 관심이 많던 김 회장이 김 목사의 사연을 듣고 관심을 보인 것. 그렇게 2011년 1월부터 성주그룹 사목으로 출근하게 됐다. 동시에 개척도 하게 됐다. 사역도 생활도 드디어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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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목사가 ‘새가족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암 환자를 위한 기도

사목으로 일하게 되자 교회에서 사례를 받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형편이 넉넉해졌다. 그 힘으로 두 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을 시켰다. 드디어 20년 가까운 고생이 끝나는가 싶었던 때, 2014년 아들이 암에 걸렸다. 혈액암이었다. 가까운 친지들은 “하나님도 너무 하신다”며 원망 투로 이야기했지만 정작 엄마인 김 목사는 화가 나지 않았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는 암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들 다행이라고 했지만 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재검사했더니 그 자리에서 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때야 안도의 숨이 나오며 ‘살았다’ 싶더군요. 진단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보통 암 검사를 한다고 하면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틀렸다”고 잘라 말했다. 검사 결과가 ‘정확하게’ 나오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 김 목사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치유의 시간’이라는 병상 기도문을 출간했다. 책에는 진단부터 치료, 수술, 호스피스 등 항암 과정에 실제적인 도움이 될만한 기도문이 담겼다. 

“올바로 진단하고 판단해서 올바르게 정확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순응하며 가야 하는데, 무조건 ‘괜찮다’는 응답만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죠. 그런 생각을 토대로 기도문을 썼는데, 암을 겪으신 분들은 저더러 암에 걸렸었느냐고 물어보셔요. 그만큼 실감이 난다는 이야기죠.”

감사하게도 김 목사의 아들은 1년 만에 완쾌했고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당시 그룹의 직원들 가운데 믿지 않는 이들도 많았는데, 그들조차 김 목사를 만나면 아들을 병간호하던 그 1년의 모습이 감동이었다고 인사를 건네온다. 

“그 사람들은 저더러 어떻게 하면 그렇게 평안할 수 있느냐고 궁금해했어요. 어떻게 웃을 수 있고 담대할 수 있느냐고요. 어쩌면 당시의 제 모습이 그들에게는 설교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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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의 유튜브 채널 ‘김민정 목사 TV’는 교회 밖 모든 사람과의 소통 창구다.

 

후배들 위해 섬기고 싶어

김 목사가 소장으로 있는 ‘좋은목회연구소’는 목회현장과 더불어 삶의 자리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함께 나누고 실질적인 목회의 조력자가 되겠다는 취지로 설립했다. 최근에는 여성 사역자들을 위한 구심점으로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다.

“많은 여성 사역자들에게 상담 요청이 들어옵니다. 대부분이 교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토로합니다. 멀쩡하게 신대원 졸업해서 목회학석사를 받은 사람에게 행정만 시키고 심방전도사로 한정시키는 것은 부당한 일이죠.”

코로나 직전부터 ‘여성 사역 커리어 코칭’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해 차츰차츰 접목하고 있다. 여성 목회자들이 교회 안에서 길을 찾을 수 없다면 교회 바깥에서라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하고 사역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게 김 목사의 바람이다.

자신처럼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혹은 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길을 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 목사 자신도 3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적게나마 수익도 발생하고 있다.

“저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그쪽엔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기 때문에 돌파구를 찾아서 콜링에 응답할 방법을 만들고 싶고, 그 길을 돕고 싶습니다.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 모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씨를 뿌려 놓으면 어떤 것은 거목이 됩니다. 당장 열매를 따 먹으려고 하지 말고 한번 시작했으면 멈추지 않는 것이 비결입니다. 막막하신 분들은 제게 도움을 청하신다면 할 수 있는 내에서 돕겠습니다. 용기 내세요. 도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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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정 2022-01-20 14:53:52
여자사역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오시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셨음에도 거기서그치지않고, 다를 여자사역자들을 돕고자하시는 그 귀한 마음에 큰 감동이됩니다 참 멋지십니다
목사님의 사역을 응원합니다~
여사역자들의 모델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은 2022-01-20 14:30:57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사역을 응원합니다~^^

최혜영 2022-01-20 14:29:09
기사보고 다시 심장이 콩딱콩딱~
두손에 주먹이 불끈불끈~~